나는 싸구려 음식을 먹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못 켜고 아무리 추워도 난방을 못 때고 얇은 이불을 겹겹이 겹쳐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 겨울을 나야 했음에도 나는 가난한 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해서 이 가난이 안좋은 상태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항상 돈이 없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 이런 말을 달고 살았음에도. 내가 가난하다는 걸 몰랐다. 앞으로 더 나아질 선택권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언제부턴가 가난하다는 내 상태를 지우고 내 멋대로 행동했다. 아마도 계속 반복되는 이 지독한 가난에 내가 너무 지쳐버린 것 같다. 너무 지쳐서 그냥 이 현실을 잊어버리고 숨만 쉬기로 작정한 인간같다. 날이 한번 더 밝으면 나는 더 늙어갈 뿐이라는 레미제라블 속 노래가 왜 이렇게 가슴에 박히는지 모르겠다.
한 때는 가난한 게 나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시절을 다 딛고 일어선 나의 무용담을 장식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단단한 인간인지 시험해보는 거라고. 중요한 건 돈 그자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끌어들이는 한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사람을 버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에게 없는 건 돈 외에도 많으니.
아마도 내가 너무 잠을 못자서 그런 거 같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게 많은데 그것들은 무시하고 내가 없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쓰니까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끝없는 수렁으로 나를 더 밀어넣는 느낌. 내가 가졌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한치 앞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잠시 좌절한 것 뿐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