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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2.한반도의 신석기시대(ver 0.1)
게시물ID : history_173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량수
추천 : 18
조회수 : 161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7/26 06:13:40

ㅡㅡ;;; 신석기에 대해 정리하면서도 시작되는 문제는 역시 연대에 대한 것이네요.


한반도에서 신석기가 언제 시작되었느냐에 대한 문제는 고등학교 교과서와 한국사통론 사이에 차이가 좀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한국사통론이 1996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것입니다. 참고하고 있는 오래된 국사교과서가 7차교육과정용이라 2002년에 제작된 것인데, 2010년에 새로 도입된 다른 국사교과서와 똑같은 시간을 지칭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1996년과 2002년사이에 한국 고대사의 연구 실적의 영향인줄 알았지만... 유심히 살펴보니 그 문제는 아닌 듯 하더군요. ㅜㅜ


고등학교 교과서들은 약 기원전 8000년전 쯤에 신석기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한국사통론에서는 약 기원전 6000년전 쯤으로 잡고 있습니다. 무려 2000년이라는 시간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중석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중석기까지 나눠 다루기엔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신석기 안에 중석기를 넣어버린 것이죠. 


왜 이러느냐면, 일반적으로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의 변화되는 시간을 중석기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시작된 신석기는 8000년 전이라고 봐도 뭐라 할 수 없고 6000년 전이라고 봐도 딱히 뭐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닿습니다. ㅡㅡ;; 애초에 신석기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유물들이 나온 시기라 중석기라고 부르는 것이니까요.


앞서 정리한 구석기 글에서 구석기 후반에 돌을 갈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드는 것은 신석기의 주요 특징입니다. 나중에 새 버전으로 바꿀때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수정해야겠습니다. ㅜㅜ




고등학교 교과서 기준으로 약 기원전 8000년에 시작된 한국의 신석기는 약 기원전 1000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이유는 기원전 1000년 쯤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어 있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대로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는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도구를 어떻게 만드느냐 입니다. 구석기는 돌을 던져서 떨어져 나온 돌들을 가지고 필요한 도구로 사용했다면, 신석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갈아서 쓰게 되었죠. 갈아서 도구를 만들면, 좀 더 날카롭고 정교한 도구들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한가지 더! 신석기시대는 빙하기가 끝난 시점이라 해수면의 상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석기가 활발하던 시기엔 지금과 같은 한반도의 모습을 갖춰지게 되었죠. 빙하기가 끝났다는 것은 기후도 바뀐다는 뜻이지요. 빙하기로 인한 변화는 전 지구적인 변화기도 했습니다.



신석기인들에게 정교한 무기가 생겼다는 것은 그들의 사냥이 효율적으로 나아졌다는 뜻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돌 이외의 도구를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기존에 사용되던 화살이나 돌창이 더 예리해 진 것은 당연한 것이구요. 정교해진 돌들을 이용해 그물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옷도 만들어 입게 되지요. 실을 만들기 위해 가락바퀴를 사용했고, 뼈바늘을 가지고 옷도 짓게 된 것입니다.



신석기시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토기입니다. 토기는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불로 구어서 만들지요. 당시 사람들 기준에서는 엄청난 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작업 방식 같은 단순한 반복만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니까요. 또한 토기 사용은 구석기시대보다 생활 터전 이동이 줄었다고  볼 수 있죠.


한반도를 대표하는 토기는 바로 빗살무늬토기 입니다. 가장 많이 발굴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빗살무늬토기 이전 시기의 토기로는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 토기에 장식(?)을 덧대서 만드는 덧무늬토기 등이 있었습니다.  



토기 유물이 뒷받침 하는 것은 바로 농경 생활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 부분이지만, 신석기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는 초기와 중기까지는 사실상 농경보다는 채집과 사냥에 의존한 생활이었지요. 때문에 신석기 초기와 중기의 유적들의 대다수는 큰 강이나 바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석기 후기 쯤 도달하면 농경 생활의 비중이 꽤 높아집니다. 그 시간만큼 농경에 대한 기술력이 상승했을테고, 그로인해 생활 방식이 달라진 것이지요.


이렇게 농경사회가 되었다는 근거로 나오는 유물들이 돌로 만든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반달돌칼 등입니다. 당시 재배되던 곡물은 수수, 기장, 조, 피 등의 잡곡들이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생활하던 집의 경우도 막집이나 동굴이 아닌 움막을 지어서 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로 잡혀가게 됩니다. 움막은 보통 성인4명이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넓이의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화덕이 움막 안에 있었고 화덕과 입구쪽에는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저장 구덩이를 만들어서 생활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구석기인들에 비해 모여 생활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구석기인들과 비슷하게 핏줄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는 부족이 만들어졌습니다. 집단의 규모가 조금 커졌어도 신석기 시대까지는 족장이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평등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에게 종교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애니미즘(Animism)과 사람이 죽어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남는다며 이 둘을 이어주는 존재인 주술사가 존재했던 샤머니즘(Shamanism), 씨족의 기원과 연계된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Totemism)등이 있었다고 유추합니다. 이렇게 유추하는 이유는 신석기시대 이후 남아있던 전설이나 대대로 이어진 풍습 등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단순한 치장용인지 신앙을 위한 것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장신구도 존재했습니다. 신석기 유적지에서 목걸이나 팔찌 같은 것 뿐만 아니라 큰 조개 껍데기에 세개의 구멍을 뚫은 가면도 발견되었지요.



이상이 신석기에 대한 요약 및 설명입니다. ^^;;;


참고로 한 책은


2010년 검정을 통과한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10년 검정을 통과한 비상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02년 제작된 고등학교 국사

1996년 제작된 한국사통론 4판


이렇게 입니다.



점점 양이 많아지네요. ㅜㅜ 괜히 한국사통론까지 본다고 넣은 것 같기도 하고... 고등학교 교과서들만 가지고 하면 양이 많지 않아서 편한데 말입니다. 게다가 요즘 한국사는 근현대사를 통합시키는 바람에 꽤 많이 압축이 되어 있더군요. ^^;; 사진 자료는 0.2 버전에서 넣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글만 요약 정리하는데도 꽤 걸리는데 사진까지 찾아 넣는 것은... ㅜㅜ

부족하거나 보총해야 되거나 혹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제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올리고 있습니다. 링크된 글은 위 내용과 똑같습니다.

http://myahiko.tistory.com/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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