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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네로 버닝 롬의 막대기가 꽉 차자 때 묻은 시디롬에서
빨간 아우라가 풀풀 풍기는 시디 한 장이 튀어나온다.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다음 공시디를 넣은 후 버튼을 누르자
시디를 먹은 컴퓨터는 다시금 힘차게 돌기 시작한다.
다시금 13분의 자유시간이 생긴 노인은 다 구워진 시디에 정성스레 붓질을 한다.
'
赤
魔
後
裸
'
'적마후라' 붉은 마귀의 벗은 뒷몸이라는 얘기다. 화룡점정을 찍듯 인장까지 찍은
후에야 찬물을 들이키며 의자에 앉는다.
이 짓도 어언 3년째
팔리는게 예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노인의 소일거리로는 이만한게 없다.
국가보조금이니 연금이니 하던 것들은 반찬값도 채 되질 않았고
이 단칸집 월세라도 내고 보일러에 기름이라도 채우기 위해 폐지도 주으며
공공근로도 해봤지만 되려 병만 얻어 약값으로 다 나가버렸다.
그래도 젊은 시절 나름 잘나가는 프로그래머 였고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을 따라 야동이 대중화되기 전까진 말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자기전에 야동을 보고 딸딸이를 친 후 잠드는게 똥싸고 손씻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각박한 세상 속에 유일한 유희였고 주말이면 서너번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젠가 결혼하면 야동도 끊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말이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흐르고 아직 마흔이 되기 전 어느날
다 쓴 고추가 죽어버렸다.
용하다는 비뇨기과를 다 찾아다니고 점장이까지 찾아가 한겨울에 지리산 계곡물에
얼음을 뚫고 담가도 보았지만 미동도 없었다. 의학적으로 완전한 불구선고를 받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도끼로 찍은 후 보름을 울었나 보다.
결혼을 위해 모은 재산이 술과 도박으로 한 달 만에 다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남은 평생을 빚에 쫓겨다니고 알콜로 남은 신체마저 혹사시키다 보니
원하지도 않은 노인이 되어있었고 죽을날만 기다리며 연명하던 중 고물을 주으러
들어간 농가 창고에서 40년 전 컴퓨터 한 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만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고 구토가 나와 이 산골에 칩거했지만 오랜만에 보니
옛생각도 나고 뭔가 쓸모가 있을것 같아 구루마에 담아 집으로 끌고 왔다.
신기하게도 CMOS화면이 뜨길래 며칠간 고물을 주워 모으고 노인ID카드로 무선인터넷까지
할당받아 수십년 만에 다시 웹에 접속하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도메인 주소를 몇 개 쳐봤지만 다 망했나보다.
인생을 망친 이 요망한 악마의 물건을 다시 내다버리려고 전원선을 뽑으려는 순간
모니터 구석의 작은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김정은 마지막편 삽니다.'
순간 노인의 눈이 크게 떠지며 배너를 클릭한다.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화질 한국야동의 신호탄을 올린 그녀가 아닌가!
내용을 보니 오늘 내일 하는 영감이 죽기 전 인생을 정리하다 마지막 소원을 비는
모양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죽기 전에 못 본 야동이 생각나더냐...
다시금 이 요물을 태워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마당으로 들어 옮기는데
본체 안에 뭔가 덜그럭거려 열어보니 빈 공간에 50장들이 시디케이스가 가득 차있다.
그 위에 선명하게 매직으로 써있는 글씨
'AMA10'
그 자리에 한참을 굳은듯이 서있다가 다시 컴퓨터를 들고 뛰어들어가 확인하니
새초롬한 40년 전 작은 김정은이 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배위에서 널을 뛰고 있고
첫사랑을 재회한 듯 노인의 굵은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부터 노인의 일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수요가 많았고 음란물 중독으로 인해 대한민국 남성의 고자율이
50%에 육박하자 국가차원에서 음란물을 제재하는 상황에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은
CD라는 매체는 역사속 밀주거래보다 더 긴밀하게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철칙 하나
야동시디업은 고객과의 신뢰다. 공시디나 뻑난시디는 팔지 않는다.
철칙 둘
외상거래는 절대 금한다. 인간은 딸치기 전과 후가 다르다.
철칙 셋
직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것은 야동시디가 세상에 나온후 지금까지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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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저.. 부탁이 있는데 100장만 직거래 하면 안될까요?'
눈이 번쩍 띄이는 제안이다. 100장이면 이 겨울 내내 보일러 때고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러고보니 쌀도 떨어져가고 공시디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철칙은 철칙이다.
'안됩니다. 직거래는 하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선생님 제발...'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아니 안된다지 않....'
'선생님 따블!!! 따블로 드릴께요!!! 제가 내일 원양어선을 탑니다. 제발!'
'어쩔 수 없군요... 내 특별히 시간내 보리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시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철칙의 신념을 따블에 팔아넘겼다.
뭐 어떠랴 야동굽는 노인의 신념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느냔 말이다.
풀로 구으면 21시간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거 서둘러야겠는걸
꼬박 밤을 새우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몇 년만의 상경인지...
옛기억을 더듬어 헤메는데 영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젊은이를 잡고
길을 물으니 갑자기 하늘을 보며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고 펜을 들어
내가 들고 있던 종이에 대고 있자 순식간에 지도와 글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구나... 하고 겨우 남산타워에 도착해 보따리를 내려놓고
땀을 닦고 있으니 여기만은 변한게 없는것 같다.
젊은시절 처음 소개팅 장소가 여기였다. 난 시키는대로 하얀바지에 하얀티를 입고
서 있었고 밤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철조망을 부여잡고 신을 원망했었다.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나 돌아보니 청년 하나가 서있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보따리를 풀며 '오셨구려'하는데 갑자기 양 옆에서 두 명이 더
불쑥 튀어나오더니 '종로경찰서입니다.'라며 두 팔을 뻗어 다가온다.
어디서 그런 반사신경이 나왔는지, 힘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빈공간으로 몸을
날리며 앞서 달려드는 경찰을 어깨로 힘껏 부딪혀 넘어뜨리고 돌담 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행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당황한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기력을 다해 돌담 위로 올라서 사방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영감님! 거기 갈데 없어요! 앞에 벼랑이에요 벼랑! 내려와요!'
천천히 다가오는 경찰들의 실루엣이 아물아물 거리는데 뒤를 보니 아랫쪽이 온통
뿌옇게 녹색이다. 보아하니 2~3미터 정도 되는 높이인듯 잘하면 안다칠 수도 있겠다.
주저할 것 없이 사뿐 몸을 날리는 순간 시야를 한꺼풀 벗겨낸 것 처럼 선명해지며
저 녹색숲까지의 거리가 2~3미터가 아니라 2~30미터 아래임을 깨달았다.
이게 끝이구나
차가운 바람이 볼에 점점 빠르게 느껴진다.
순간 몸이 둥실 떠오르며 저멀리 환한 빛이 퍼져 나오더니 벌거벗은 여인의 실루엣이
나타나 메아리처럼 울림 있는 소리로 말한다.
'저는 당신의 수호신 동정녀 아오이에요. 아오이 소라.. 내 손을 잡아요 가련한 사람'
손을 뻗어 그녀에게 향하지만 닿을듯 말듯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손끝을 늘리려는듯 모든 힘을 짜내보지만 1센티도 채 되지 않는 차이는
결국 좁혀지지 않은 채
그녀는 슬픔을 가득 담은 얼굴로 천천히 투명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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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님! 방금 이 사람 손가락 움직였는데요?'
'사후경직이란 거야...'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채 뒤틀린 노인의 몸뚱이는 비닐자루에 담겨져 들것에 실리고
남산타워 앞 팔각정 벤치에는
주인 잃은 펼쳐진 보따리만 덩그러니 바람에 파르르르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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