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류의 출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기원부터 이야기가 책마다 엇갈리네요. ㅜㅜ 왜 시작부터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위키백과에는 인류의 시작을 240만 년 전과 230만 년 전 사이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7차 교육과정에서는 인류의 출현을 350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사이로 잡고 있습니다.
2010년에 검증받은 천재교육의 한국사에서는 이 시기를 무려 500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사이로 잡고 있었구요.
한국사통론의 경우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 한국사에 있어서 썩 중요하지는 않은 부분이라 그냥 넘겨도 상관없지만 왠지 자꾸 신경 쓰이더군요. ㅡㅡ;;
한반도에서 구석기인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 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를 좀 하자면, 1960년대 초 까지 한국에선 구석기 흔적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1963년에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처음 발견되고 1964년엔 공주 석장리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하더니 상원의 검은모루동굴이며, 청청암동굴, 연천의 전곡리와 단양의 금굴에서도 유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원래는 일제 강점 시기에도 구석기 유적이 발견이 되었지만, 1933년 함경북도 동광진(현재 은성군 강안리)에서 일본 정부가 당시 일본에서는 구석기 유적이 나오지 않아서 일본인 학자들이 신석기 유적과 같이 발견되었다는 핑계로 구석기 유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석기는 보통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뉩니다.
이는 돌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의 석기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때를 전기라고 말하고 점점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바뀌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깨어진 돌을 사용하다가 돌을 용도에 맞게 깨는 작업을 통해 다듬게 됩니다. 그러다 후기쯤 되면 돌을 갈기 시작합니다. 석기가 다양해지다보니 용도에 걸맞는 석기는 그 용도로만 사용하게 되고 다양한 석기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이렇게 만들어져 다양해진 석기 중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 등을 사냥할 때 쓰게 되었고, 긁개와 밀개 등은 음식물을 만드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구요. 먹잇감들의 이동에 따라 같이 이동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들은 가족을 중심으로한 무리로 생활을 했습니다. 채집과 사냥이 생활의 주된 방식이다보니 경험이 많고 유능한 사람이 무리의 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식량이 넉넉치 않아 지배자 형태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거지역은 동굴 말고 강가에 막집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막집 유적에는 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담을 둘러친 흔적이 나타나는데요. 불을 피웠던 흔적도 있다고 합니다. 보통 3~4명 정도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크게 지은 막집은 10명 정도가 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구석기 후기 유적에선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나 돌 등에 고래나 멧돼지, 사슴, 새 등을 그리거나 만든 흔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보통은 이 작업물들이 사냥꺼리가 풍부해지도록 기원하는 기원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빙하기가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구석기인들은 큰 동물 사냥 말고 작은 동물 사냥이 늘어나게 되죠. 기온이 따뜻해져서 작은 동물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잡기위해 활과 창 작살 등의 사냥 무기가 발달하게 되었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톱도 사용하게 됩니다.
일단 구석기에 대한 간단 설명(?) 혹은 자료 축약은 이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한 책은
2010년 검정을 통과한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10년 검정을 통과한 비상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02년 제작된 고등학교 국사
1996년 제작된 한국사통론 4판
이렇게 입니다.
원래는 구석기와 신석기를 묶어서 하려고 했는데, 생가보다 읽어둬야 할 것들이 많아서 따로 하게 되었습니다. ㅜㅜ 부족하거나 보총해야 되거나 혹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