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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도산성의 겨울(제1장 심계천하 下)
게시물ID : history_17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10
조회수 : 41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7/25 08:57:49
부족한 제글을 읽어주신분들
추천이랑 댓글 달아준분들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올립니당^^ 
혹시 처음부터 못보신분은 아래를 클릭
 
프롤로그
http://todayhumor.com/?history_17262
 
제1장 심계천하 上
http://todayhumor.com/?history_1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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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은 공을 나누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경리 양호가 그리 상찬한 이순신이라면 더더욱 말이지요.”
 
 
“지금 접반사의 말인 즉실 명군이 청정은 원한다는 것이오?”
 
“강태공이라면 누구나 대어를 낚기를 원하지요. 이미 직산에서 한번 왜적을 꺾어본 명군입니다. 그러니 더 큰 군공이 탐이 나겠지요. 게다가 이역만리의 명 조정 또한 명군수뇌부에게 날마다 전공닦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상인출신의 행장보다는 풍신수길이 아끼는 골수 강경파 무장인 청정을 굴복시키는 것이 더 본새가 나겠지요.”
 
“바다와 인접한 서생포도 아니고 뭍에 있는 왜성이라면 조선 수군의 전폭적인 협조를 바랄 수 없소이다. 육지의 조·명연합군의 힘만으로 감당이 되겠소이까? 상대는 청정의 정예군이니…….”
 
“도원수께서 제 사견을 물으신다면 소인은 행장이든 청정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왜적은 다 같은 왜적놈들이지 경중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대신들과 명군 그리고 영상과 독대한 주상전하의 심중을 고려해보면 도원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통제사를 믿을 수 없기에 청정을 치길 원하는 게지요.”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임금과 대신들은 그를 무군지죄를 지은 죄인이라 믿을 수 없다 했다. 명군은 명군대로 왜군에 대한 이순신의 불같은 호전성과 비리를 비호할 줄 모르는 그 강직함에 그를 꺼려했다. 다만 길가의 민초들만이 통제사의 충심을 알고 묵묵히 따를 뿐이었다.

이덕형의 말이 끝나자 방안은 일순 정적이 흘렀다. 김 첨지는 가시방석과 같은 이 회합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기 시작했다.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이라.”
 
사랑방내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영상대감이 외쳤다. 살이 굴고 성긴 큰 나무빗인 ‘얼레빗’이 왜군이라면, 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 ‘참빗’을 명군에 비유한 말이다. 이는 명군에 의한 가혹한 수탈이 왜구보다 심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것이었다. 이 농 같지 않은 농은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 명군이 지나간 곳마다 유행처럼 번지며 현실이 되어갔다.

처음부터 명군이 이런 약탈자의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명의 경략 송응창은 조선으로 출병하는 군사들에게 이른바 ‘군령30조’를 내려 군율로써 조선의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였다.(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제5조에는 ‘민간의 수목 한그루라도 감히 손대는 자는 목을 벤다. ‘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와 더불어 제6조는 ’조선의 부녀자를 강간하는 자는 목을 벤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명 대 왜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어 명군의 주둔하는 기간이 늘어가자, 지엄한 군율 따위는 개나 줘버린 명군장수들과 병졸들의 행패는 극에 달했다. 일국의 지존인 선조는 명군 지휘부를 만난 자리에서 먼저 절을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중간 부장들에게까지도 굴욕적인 선배를 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황제의 칙서를 전하러온 명국의 행인벼슬에 있던 사헌 이란 자는 자신이 북쪽에 앉고 선조를 남쪽에 앉게 하여 마치 자신이 황제가 된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한나라의 군왕이 이런 취급을 받았으니, 조정 중신들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일례로 군량조달을 맡고 있던 명나라 흠차경리 애유신은 양곡 수송이 원활치 않다는 꼬투리를 잡아 호조판서 민여경, 검찰사 김응남, 의주부윤 황진 등을 체포하여 곤장을 때렸다. 조선의 집정대신이 명의 일개 관리에게 매를 맞는 것이 당시 조선의 현실이었다.
임금과 신하의 경우에는 한순간의 치욕이나 수모로 여길 수도 있었으나, 민초들은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명군이 진주하는 곳의 백성들은 명군의 배를 불리기 위해 왜란 동안 어렵게 모은 곡식들을 강제로 수탈당했다. 또한 주민들은 그들을 위해 양곡을 지고 나랐다. 명군의 진지와 목책을 쌓는 가혹한 노역은 덤이었다.

“명군의 혹정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요만, 문제는 해가 갈수록 조선말을 쓰는 명군이 늘어난다는 것이오.”
 
발언이 끝난 영의정은 차를 들이키며 김첨지 쪽을 살펴보았다. 김 첨지는 내색하지 않았다.

조선말 쓰는 명군. 즉 조선인 부역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죄를 짓거나 행실이 불량한자 또는 기근에 시달리는 자들이 명군에 투탁하여 그들의 방자노릇을 자처했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명군 이였으니, 명군복장을 한 이들이 어설픈 중국말을 쓰며 부녀자를 겁탈해도 누구하나 나서서 제지하는 자가 없었다. 이러한 얼치기 명나라 병사들은 전란이 길어질수록 그 수가 증가하니 조선 조정에서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훗날, 류성룡의 염려대로 정유재란이 끝나고 철군하는 명군을 따라 자라온 고향산천을 버리고 머나먼 중원으로 길을 잡는 자들이 생겨났다. 조선의 강토는 처음에는 임금이 외면하고 나중에는 백성이 등을 돌리는 불모지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께서 이르시길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나중이라 하였소이다. 왜적과 명군에 의해 민심이 이반하는 이때, 적의 첨단이자 예봉인 청정을 꺾는다면 왜적은 지리멸렬해질 것이며 민심은 성상과 조정으로 돌아올 것이오. 이후 패주하여 전의를 상실한 왜군 잔당들을 소탕하는 것은 조선군만의 힘으로도 충분하외다. 더 이상 이 나라 백성들이 조선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명군의 개가 되거나 왜놈들의 칼날에 무참히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도원수를 바라보는 서애대감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영상은 다시 입술을 때었다.
 
“통제사를 전라좌수사에 천거한 자가 바로 나요. 내가 어찌 여해의 진심을 모를 수가 있겠소. 다만, 사세가 이러하니 이번일은 도원수께서 한수 물러 주시오. 내 이번 일만 잘 풀린다면 통제사와의 수륙협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해드리리다.”
 
간곡한 영상대감의 발언에 도원수는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영상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내 더는 재론하지 않겠소.”
 
험악했던 분위기가 봄날에 눈 녹듯이 사그라지자, 영의정은 김 첨지를 향해 말했다.
 
“김 첨지. 이거 본이 아니게 험한 꼴을 보이게 되었네 그려. 양해해 주시게나.”
 
“중신들께서 나라를 위해 이리 애를 쓰시니, 무지한 소인도 감동했나이다.”
 
“이쯤 되면 자네를 부른 연유를 알겠지?”
 
직설적인 접반사가 단도직입적으로 김 첨지에게 따져 물었다.
 
“적정을 살펴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자네는 가등청정의 우선봉장 이였으니, 누구보다 청정에 대해 잘 알 것이니. 아니 그런가? 정3품 첨주중추부사 김충선.”
 
그랬다. 김충선 그것이 청년의 이름이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조선을 침탈해 왔던 사야가가 자진하여 조선에 항복하고 선조에게 성을 하사받아 사성 김해 김씨 시조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일정한 직무 없는 당상관을 우대하는 중추부의 첨지부사 벼슬을 지내고 있었다.
사실 이날 회합의 구도를 보더라도 자신이 맡은 역할은 확연해 보였다. 영상이 주군의 뜻을 대변하고 도원수가 조선군의 군략을 대표하며 접반사가 명나라와 명군의 입장을 보여준다면, 이에 대응하는 자신은 졸지에 왜군의 대리가 된 것이다.
 
“자네가 따르는 경상우병사가 좌천되었으니, 김 첨지가 항왜들을 총괄하게 되었네. 그려.”
 
영상대감이 김충선을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김충선은 전 경상우도병마절도사의 얘기가 나오자 잠시 잠깐 당혹스런 안색이 역력했으나. 곧 평안을 되찾았다.
 
“믿고 쓸자가 있는가?”
 
이번에는 권율이 김충선에게 물었다. 젊은 대감은 즉시 답을 하였다.
 
“여대장과 그 수하를 보내겠습니다.”
 
김 첨지는 도원수에게 그리 대답하고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접반사의 의중을 살폈다. 
 
“그자라면, 주상전하의 신임이 각별하니 좋겠지요.”
 
좌중에 정적이 흐르고 차가 한 순배 더 돌았다. 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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