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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
게시물ID : phil_172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방위특급전사
추천 : 3
조회수 : 228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12/05 12: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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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에 대해 댓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나 책에 보면 부분적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과정이나 이유에 대해 나온 글을 볼 기회가 있어서 간혹 고민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본격적인 공산주의 몰락의 이유에 대해 쓴 것을 요약한 것은 보지 못하여 여러군데서 본 자료와 제 뇌피셜을 더하여 이참에 정리해 보자 하는 느낌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그런데 쓰고 보니까 정리가 안된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애써서 쓴 만큼 그냥 지우기는 아까워서 올려 봅니다.

 

 

공산주의는 산업혁명이라는 혁명적인 발전이 인류에게 과거에 없었던 풍족함을 선물하였지만 그 달콤한 열매에서 노동자가 철저히 소외되는 결과에 반발해서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 전에는 농사를 지으며 특별한 재난이 없다면 굶지 않았을 사람들이 도시로 내몰리면서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나게 된것이죠.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크나큰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오히려 노동자의 삶은 과거보다 더 열악해 진겁니다. 도대체 왜 이런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원인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는 노동에서 나옴에도 불구하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그 잉여가치를 착취하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생산수단을 공유화 혹은 국유화 하여 그 착취의 사슬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 혁명의 시작은 가장 발전한 서구 국가에서 자본주의의 염증이 터지면서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죠.

 
하지만 1989년 동유럽 혁명과 1991년 소련 붕괴,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방과 자본주의화를 거치며 약 70년 만에 공산주의는 그야말로 화려한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냉전의 절정기라서 과연 몇년 후에 공산주의가 붕괴될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 까요? 사실 공산주의는 망하기 전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서유럽도 60년대 좌익화 되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프리카, 남미에서도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이 막기도 했으며,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거의 공산화 되었죠. 80년대는 공산주의의 승리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급속한 드라마와 같은 변화에 대한 진단이 있어왔습니다. 보통 많이 주장되어 지는 것은 공산주의에 내재되어있는 비효율성(인센티브 같은 동기의 부재), 인간의 이기심(공산주의는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모토가 있는데 인간의 이기심을 꽤나 무시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으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혹은 마르크스의 예측으로 인하여 자본주의 세계가 공산주의의 장점만을 잘 소화하여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유발 하라리의 경우에는 중앙집권적 데이터 처리과정(일원화된 소비에트의 정책결정)이 데이터를 분산하여 여러 곳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자본주의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결과라고 진단합니다. 두가지(공산주의의 내재되어있는 취약성, 자본주의의 우수함) 모두 맞는 진단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급속한 몰락을 설명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2차 대전 후의 유럽 역사를 간략히 보면 전후 피폐해진 유럽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재건을 합니다. 그 와중에 미국의 금융지원 프로그램 마셜플랜이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한 것도 있고, 모두 부서진 생산설비를 더 효율적인 생산설비로 복구하면서 발전하는 것도 있겠죠. 또한 비용만 나가고 효용이 점점 없어져가는 식민지를 정리하면서 더 재정이 건실해 지는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서유럽 자본주의 진영에서도 빠른 속도로 국가를 재건하지만 그 몇년의 시간은 하루가 일년같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연금, 건강보험 같은 사회 복지에 대한 요구도가 올라가고,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필요성이 강화되면서 또한 전후 복구에 따른 노동력이 중요시 되면서 각국 정부는 공산주의 냄새가 나는 사회보장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풍족한 60년대를 거치면서 전쟁을 직접 겪지는 못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좌경화 시위가 벌어지고 물질 문명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사회가 점점 좌경화 되죠. 특히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이 상징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격동의 그리고 풍요로운 60년대를 거치면서 영국의 경우 1940년대 GDP 대비 4%에 불과하던 사회보장비용이 1980년대 11%가 될정도로 늘게 됩니다. 자본주의 특유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 것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진영에 더 큰 시련이 닥칩니다. 1973년과 1978년에 벌어진 오일쇼크로 비대해진 사회복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1980년대 대처리즘이라고 불리우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다시 대두되면서 쌓여가는 비효율성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되어 자본주의가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된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적 발전을 보는 전형인 것 같기도 합니다.
 
공산주의는 이와는 반대의 길을 갑니다. 베를린 봉쇄 실패로 낭패를 보고 천조국의 위엄에 공포를 느끼며 철의 장막을 치고, 1960년대 자유화의 물결에 프라하의 봄, 너지 임레 숙청, 고물카 실각 등 힘으로 동유럽을 눌러버리면서 동유럽 국민들의 불만을 적립합니다. 그러면서 오일쇼크로 당시 가장 석유 생산량이 높았던 나라 중 하나인 소련은 석유 수출만으로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해지면서 한 때 세계경제의 20~30퍼센트를 차지하던 소련 중공업이 경쟁력을 놓치게 됩니다. 결국 석유에 의존하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유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건실하지 못한 국가가 되면서 화를 자초하죠. 오히려 기회가 위기로 바뀐듯 합니다. 때마침 80년대 저유가 기조에 서구 자본주의 국가는 풍요를 맞이 하지만 소련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공산주의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집니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베트남에서 미국이 그랬듯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이 되어 빼도박도 못하는 전쟁이 되어 안그래도 어려운 소련의 경제를 갉아먹고, 심지어는 이기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잔혹성(피아 구별이 안되는 게릴라전, 어린이들까지 타겟으로 싸울정도로) 때문에 대부분 군인이 차출되었던 우크라이나, 벨로루시의 여론도 것잡을 수 없이 나빠집니다. 1985년 야심차게 집권한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는 의도와는 다르게 소련 정부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소련 국민들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풍요를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구마구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된듯 합니다. 거기에 체르노빌이라는 국가적인 재앙은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리면서 소련의 동유럽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하여,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모든 동유럽 국가가 도미노처럼 자유화를 하게 되면서 결국 공산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냉전시기에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 정치인들의 말에 따르면 소련 GNP의 약 12%를 국방비로 쓴다고 하여 그 전 미국에서 예상하던 규모의 두배라는 것을 알고 곧 경제가 무너질것이라 예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CIA에서는 그 두배인 25%까지 예상했지만 무너진 후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30%였다고 합니다. 한 국가의 총생산량의 30%를 국방비에 썼던겁니다. 아무래도 미국과의 냉전에 가랑이 찢어진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는 사이 중국에서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이후 천안문 사태를 힘으로 제압하지만 결국 자유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어 데탕트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지금 형식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공산주의 국가를 표명하지만 세상 어느 나라보다 더 자본주의 병에 걸려 허우적거린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죠. 공산주의는 끝났습니다.
 
 
정리해 보면 1. 공산주의 내재적 문제, 2. 자본주의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자세, 3. 각종 불운, 4. 미국과의 과도한 체제경쟁 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문제는 독재의 폐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 직관적으로 딱 와 닿을 텐데요, 앞에 열거한 모든 문제가 공산주의라서 발생한 문제는 내재적 한계 말고는 없는 듯 합니다. 중국은 그야말로 모든 부조리의 시작과 끝은 중국 공산당이었습니다. 주원래가 멱살캐리 하기는 하였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마오의 똥이었으며 그나마 국가가 유지된 것이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소련의 경우도 애초에 베를린 봉쇄가 실패할 경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 의견을 스탈린이 받아들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베를린 봉쇄 실패가 없었다면, 천조국의 위엄을 몸소 느끼지 않았다면 스탈린이 그렇게 편집증 적으로 철의 장막을 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동유럽 국가의 불만을 적립했을까 싶습니다. 또한 비밀주의 권위주의가 없었으면 체르노빌의 참사가 더 부드럽게 넘어가진 않았을까, 국민들의 여론을 적극 수용하는 정부였으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과연 빠졌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결국 공산주의의 한계에 의해 결국 망했을지 몰라도 독재가 아니었다면 닫힌 정부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공산주의가 독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차피 아무 차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독재국가는 이러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론적으로 공산주의의 경제적인 내재적 문제와 공산주의의 정치적 문제인 독재의 폐해가 급속한 몰락을 가져왔으며 공산주의의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독재정치 체제의 한계역시 명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정치 체제는 잘 모르지만 독재 정부가 있다고 해도 망함과 망하지 않음이 큰 울림을 줄것 같지는 않고, 싱가폴은 독재이기도 하지만 교도민주주의라고 하는 아예 닫힌 사회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제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고 독재국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 될지 상당히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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