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결국 구리 수통이 물건너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돌보다 쉽고 나무보다 튼튼한 나의 구리수통은 갔습니다.
.............
죄송합니다.
무튼
앞선 일부터 한 2주 정도가 지난 시점입니다.
통명전(
通明殿) 앞의 못에 설치한 구리로 만든 수통(水筩)을 철거하고 돌로써 대치하였다
네, 돌로 새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돌을 운반할 때에 동쪽 담장 두 곳과 난간(欄干)을 헐고"
담벼락까지 허물었죠.
이거 일이 참 커졌네요.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뒤끝 작렬합니다
실록에 기록된 걸 그대로 옮겨오면
구리로 만든 수통을 승정원(承政院)에 내리며 전교하기를,
“이것이 정성근(鄭誠謹)이 말한 사치(奢侈)한 물건이니, 승지(承旨)들은 이것을 보라. 지금 만약 깨뜨려버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내가 후일(後日)에 쓸 것이라고 할 것이니, 곧 부러뜨려 부수어버리도록 하라.”
그 구리수통을 신하들 앞에 두고
"야, 니들이 원한대로 까부셨다. 됬냐? 이게 사치냐? 사치야??"
라고 항변하면서
"니들 내가 이거 챙겨두면 나중에 써먹는 다고 또 따질거지??"
라면서
"니들이 원하는데로 이거 가져가서 부셔버려."
라고 꼬장을 부립니다...
고작 수통 하나로 한 십년은 늙었을 성종의 이야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