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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끈질긴 뒷끝 -1-
게시물ID : history_172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wangGaeTo
추천 : 11
조회수 : 128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7/24 20:24:05
조선 성종은 이른바 훈구대신들에 의해서
 
유교적 왕도정치를 하게끔 사육되다시피한 왕입니다.
 
정작 세조는 굉장히 힘빨 좋은 왕이었지만
 
그 밑으로는 정난공신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죠.
 
무튼
 
성종도 중반쯤 넘어가니 이제 슬슬 사사건건 태클 거는 애들이 좀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근데 대놓고 개길만한 힘은 없으니 이상하게 뒷끝이 한번 작렬합니다.
 
창경궁에 통명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보통은 왕대비의 처소로 사용되던 곳이죠.
 
여기에 연못이 있었는데
 
성종이 이 연못에서 넘치는 물이 빠지게하는 수로를 하나 만듭니다.
 
그러자 실록에 기록되길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강관(侍講官) 정성근(鄭誠謹)이 아뢰기를,
“요사이 들으니, 못[池塘]에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水桶)을 구리를 녹여 만든다 하니, 신은 생각건대,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주(紂)   상저(象箸)  를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배(玉杯)를 만들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작은 물건이지만, 그 조짐이 장차 우려됩니다.”
 
 
왕한테 유교를 가르치던 시강관 정성근이라는 신하가
 
"왕은 사치 하지 말라는데, 왜 구리로 녹여서 수통을 만듬? 니 진짜 막나갈겨?"
 
 
라고 태클은 건거죠.
 
물론
 
성종에게는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통명전(通明殿) 앞에 샘물이 있어서 뜰로 넘치기 때문에, 이것을 끌어서 못으로 들이고자 하여 동철(銅鐵)을 가지고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견고해서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말하느냐?”
 
 
즉, 튼튼한걸로 한번 돈들이려고 그런건데 넌씨눈 그것도 안보냐? 라는 말이죠
 
여기서 넘어갈 신하들이 아니죠.
 
장령 박안부라는 신하가
 
“신이 일찍이 이 일을 듣지 못하였으나, 지금 정성근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원컨대 채납(採納)하소서.”
 
즉, 난 그런말 못들어봤음. 이라면서 정성근 편을 들기 시작합니다.
 
왕이 슬슬 빡치는 그림이 그려지죠?
 
왕이 대답합니다.
 
“이것은 은미(隱微)한 일이 아니고, 그것을 만드는 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어째서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고 하느냐?”
 
그 큰 공사를 왜 니는 몰라? 라는 뜻이죠
 
그러자 박안부가 또 따집니다.
 
“신은 실로 듣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들었다면, 신은 비록 불초(不肖)하지만, 부원(府員)이 한 사람뿐이 아닌데, 어찌 계달(啓達)하는 자가 없었겠습니까? 이것은 비록 작은 일이나, 그 조짐이 반드시 사치(奢侈)한 데에 이를 것입니다. 하물며 이것을 사필(史筆)에 쓰고 만세(萬世)에 전할 것이니, 후세(後世)에 기롱(譏弄)함이 없겠습니까?”
 
딱보니 몰래한거고, 니가 지금 사치할 조짐이 보인다. 실록에 써서 두고두고 욕먹을래?
 
뭐 이런 말이죠.
 
왕이 한번 더 따집니다.
 
“사관(史官)은 마땅히 본 바를 직서(直書)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사치를 좋아함이 아니다.”
 
그러자 정성근이 다시 말합니다.
 
“옛날에 이르기를, ‘검소한 덕을 삼가서 영원한 계책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사치하지 않다고 하여 소홀히 한다면, 후사왕(後嗣王)16251) 이 반드시 본받아 사치할 것입니다.”
 
지금 그거 만들면 니 아들 손자가 그거보고 따라해서 안됨
 
이란 말입니다.  꿈깨라는 거죠..
 
왕이 다시 말하길
 
“나무는 썩기 쉽고 돌은 공력(功力)이 더욱 많이 들기 때문에, 동(銅)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구리가 제일 튼튼하고 만들기 쉬워서 한건데 왜 이해를 못함이라고 항변합니다
 
여기에 가만히 있던 김응기가 나섭니다.
 
《대전(大典)》 안에 ‘판결[決折]한 당상(堂上)과 방장(房掌)   이 체대(遞代)된 뒤에 오결(誤決)을 정소(呈訴)하여, 3년이 경과한 것은 청리(聽理)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외방(外方)의 수령(守令)들이 《대전》의 본의(本意)를 살피지 아니하고, ‘당상과 방장이라’고 말한 것을 경관(京官)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외방(外方)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외방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비록 3년이 경과하였더라도 아울러 청리하도록 허락하므로 이로 인해 송자(訟者)가 더욱 번성(繁盛)합니다. 청컨대 중외(中外)가 한결같이 《대전》에 따르게 하소서.”
 
 
이 말을 의역하자면
 
"법에 쓰여있기를, 지방관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된 뒤에 새로운 사람이 지난 소송의 잘못돈 점을 다시 살펴서, 3년이 지난 것은 새롭게 다루지 않고 그냥 둔다고 나와있는데, 이걸 지방관리들이 서울관리만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3년이 지나서 오래지난 소송을 다시 하게하면,
소송이 엄청 많아지지 않느냐, 서울이나 지방이나, 위나 아래나 법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
 
이고
 
속뜻은
 
"왕이 사치하면 밑에가 다 사치하고 풍조가 잘못된다. 그러니 접어라"
 
라는 말이고요,.
 
결국 왕은
 
《대전》의 법을 어찌 중외에서 달리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 뜻을 여러 도(道)에 하유(下諭)하라.”
 
법이 어찌 위아래가 있냐, 니들 말이 맞다고 결국 물러나게 됩니다.
 
 
 
결국 우리 식구가 사는 집에 수통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 성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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