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마지로의 자세로 임관한 일본군 -> 공산주의자 -> 대한민국 군인 -> 독재자
우리 민족 역사에서 이렇게나 상반된 세력에 계속해서 몸 담아가며 오직 출세를 위해서 일관된 삶을 살아간 인물이 또 있었나? 라는 질문에 대답해보고자 한다.
박정희는 일본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비유도 아니며 그렇다고 조롱이나 멸시의 의미도 아니다.
박정희의 사고방식은 100%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인들 보다 더 일본인스러웠다는 것을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박정희 출세 지향주의자였다.
그것은 그의 행적을 보면 누구나 쉽게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일제강점기 시절 입신양면 [박정희 입장에서는 일국일성의 주인 정도 되었을까?]에 뜻을 품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서 시작하여 출세를 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시대적 그 당시 우리의 선조였던 조선은 일제에 의해서 멸망한 상태였고 조선인들이 피지배민족이라는 멍울은 그대로 선조들의 부덕으로 인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가 우리 선조들을 롤모델로 삼았을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세계는 강대국들이 군비경쟁을 하면서 힘이 곧 법이었던 시대였다.
인간 박정희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일본 전국시대의 확장판으로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전국시대에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일국일성의 주인[다이묘]이 되고자 했던 낭인 정도로 해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본 전국시대를 보자. 일본 전국시대 또한 힘이 곧 법이었던 시대로서 배신,암투,암살 등등 오직 이긴자가 법이요. 강한자가 진리였던 시대였다. 강자는 무엇을 해도 되고 약자는 무슨 짓을 당해도 반항할 수 없는 시대. 주인이 힘이 없으면 부하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예'이고 필요하다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의'였던 시대.
이 전국시대의 무사 특히 신분이 낮은 자들 입장에서는 배신은 당연한 것이지 적어도 부끄러운 짓은 아니었다. 전쟁에 진다면 자연스럽게 적이었던 자의 깃발 아래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허용되던 시대였다. 그런 전국시대의 무사들을 박정희는 출세하기 위한 롤모델로 삼은 것이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을 중용햇던 오다 노부나가를 척살한 미츠히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마자 천하를 강탈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이는 박정희에게 있어서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 정도였을 뿐일 것이다.
전국시대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말이 있는데
부처의 거짓말은 방편이라 하고, 사무라이의 거짓말은 지략이라 하는데, 사민 백성들이 가련할 따름이다[미츠히데]
라는 말이다. 박정희에게도 거짓말은 거저 지략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우리나라 국민들만 가련해졌다.
이처럼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변절과 일본민족에게 있어서 변절은 그 온도 차이가 상당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변절이란 민족에 대한 배반이였지만 일본민족에게 있어서 변절이란 그저 섬기는 주인의 바뀐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그리고 해방 후에 한국인들은 몇번이고 변절한 박정희를 간악한 자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박정희 스스로는 당연한 선택이지 적어도 못할 짓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섬기는 주인을 바꾸어가면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자기 자신을 대견했으면 했지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통치 분위기에서도 박정희는 우리 민족과는 전혀 달랐다.
영웅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리가 있지만(사실 남자는 다 여자를 좋아한다) 적어도 조선시대의 왕이나 선비들은 여자를 늘리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역사 드라마를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전국시대에 여자 좋아하기로 소문이 났던 도요토미는 일개 성(우리나라의 '도'쯤 될까?)을 점령하면서 첩을 열두명을 들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여자를 좋아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아들이 없자 무분별하게(정말로!) 여자를 안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있던지 자신의 부하의 딸이나 부인도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데로 손가는 데로 여자를 안았고 또 그것이 허용이 되었다.
어느쪽을 박정희가 본 받았는지는 박정희를 아는 자들은 모두 알리라.
박정희에게 있어서 자신은 '대통령'도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왕'도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다이묘'였던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신의 영지였던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