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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참파의 역사.txt
게시물ID : history_172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뭐이어드래?
추천 : 15
조회수 : 188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7/22 01: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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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는 베트남 남부에서 A.D 2C부터 무려 19C까지 존속했던 국가입니다. 물론 19C까지 계속해서 존속했던건 아니고 사실상 참파라는 나라가 무너진 때는 15세기 무렵으로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진(陳) 왕조의 침공으로 수도가 함락당하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사태 이후로 사실상 참파는 명맥만 유지하며 베트남 역대 왕조들에게 삥을 뜯기는 속국 내지 조공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참파의 역사는 B.C 100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 남부 베트남에서 태동한 사후인 문화에서 시작합니다. 고대 베트남의 문화는 크게 북부의 동선 문화, 남부의 사후인 문화로 나눌 수 있는데 북부의 동선 문화가 우리가 흔히 베트남 하면 떠올리는 베트남 문화의 모체가 되었고 사후인 문화는 남방의 말레이계 사람들, 즉 참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사후인 문화는 서기 2C까지 이어졌고 사실상 참파의 모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단순 문화 형성 수준에만 머물러 있던 참족이 비로소 건국을 하는 시기는 서기 192년으로, 당시 베트남 중북부에 군을 설치하여 통치하던 후한(後漢)의 지배에 반발하여 구련이란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후한을 몰아내고 임읍(林邑)을 세운 것을 참파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인 서기 137년에도 한차례 반란이 있었고 후한의 관리들을 죽이고 군을 공격하는 일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건 그닥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따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참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임읍이 건국되었고 임읍은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며 계속해서 팽창하여 영토를 넓히며 발전합니다. 이웃한 캄보디아의 부남국 쪽으로도 진출하기도 했지만 주로 베트남 북부를 장악한 중국과 마찰을 빚으며 북상하였고 4세기 무렵에는 중국의 동진(東晉)을 들쑤시며 한바탕 치고 받는 등 패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서기 400년 경인 제2왕조(참파는 총 14개의 왕조가 있었습니다) 시기에 바드라바르만 1세라는 왕이 즉위하면서 참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도냄새 물씬 풍기는 바드라바르만 1세의 이름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바드라바르만 1세 시대를 계기로 참파는 중국보다는 인도문화를 적극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드라바르만 본인부터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힌두교의 신들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고 이때부터 힌두교 사원들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참파는 아래 사진마냥 야시시한 옷을 입고 압살라 댄스를 추며 훓뚫송을 부르는 완벽한 힌두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문인지 참파는 베트남보다는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웃의 캄보디아와 더 가깝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지금이야 다 같은 베트남인이지만 저 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베트남의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이질적인 동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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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참파는 중국이나 이웃한 캄보디아의 부남이나 진랍 등과 치고박으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강력한 통일 제국 수(隨)가 등장하게 됨에 따라 더는 덤벼들지는 못하고 되려 수나라가 그동안 깝죽댔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벌인 대규모 침공으로 호되게 당하고 내부의 혼란으로 정변이 일어나는 등 잠시 침체기를 겪긴 하지만 그래도 10세기 경 베트남 북부에서 중국 당(唐)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워진 여(黎) 왕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나름 동남아를 주름잡는 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북부의 여 왕조의 등장으로 베트남 역대 왕조들과의 질긴 악연이 시작됩니다. 사실 악연이라고 부르기도 뭐한게 이때부터 참파가 거의 일방적으로 베트남에게 두들겨 맞는지라.. 10세기 초에 여 왕조의 침공으로 수도가 함락당하고 남쪽으로 도주, 여 왕조의 뒤를 이은 이(李) 왕조의 남진으로 역시 수도가 털리고 왕이 전사, 수만의 백성들이 포로 잡혀 압송당하는 등 계속해서 베트남에 밀려 위축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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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머리의 크메르군에게 당하는 참파군.
 
그러나 베트남에게만 당한 것이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12세기 무렵에는 우리에겐 앙코르 와트로도 유명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에게도 밀렸고 이후 14세기에 다시 시작된 베트남 진(陳) 왕조의 침공, 덤으로 몽골에게도 당해 10C~14C 이 시기는 참파의 암흑기라 봐도 무방합니다.
 
단, 이 시기에서 예외로 한때나마 참파가 쨍하고 해뜬 날이 있었으니 바로 포 비나수오르(한자로는 제봉아)라는 왕의 치세기인데요. 이때 참파는 베트남 진(陳) 왕조가 내부의 혼란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압박하여 그동안 상실한 영토들을 대다수 수복하고 진 왕조의 황제 예종(睿宗)을 살해, 수도 승룡(현재의 하노이)를 습격하는 등 전례없는 선전을 거두며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포 비나수오르의 죽음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다시 쇠락기로 접어들긴 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 포 비나수오르는 그동안 베트남에게 두들겨 맞기만 했던 참파가 베트남을 몇 방 제대로 먹였다는 의의에서 참파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왕입니다.
 
계속되는 베트남의 남진으로 위축되어가던 참파가 사실상 멸망에 이르게 되는 계기는 15세기 베트남판 세종대왕이라고도 불리우는 후(後) 여(黎) 왕조의 황제 성종(成宗)의 참파원정으로, 이젠 익숙해질 정도로 이때 참파는 또 수도가 함락당하고 왕과 백성들이 모조리 포로로 잡혀 끌려가게 되어 제 14왕조를 마지막으로 참파는 사실상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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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성종의 남진 이후의 참파 (초록색)
 
저때 이후로 참파는 재기불능의 상태로 전락하여 베트남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이후로 참파는 위 지도에도 표기된 판두랑가(panduranga), 카우타라(kauthara) 등의 도시들을 거점으로 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베트남의 지배 하에 인정된 제한적 자치와 독립이었지만 말입니다. 이후 17세기에 중국의 명나라가 멸망하고 명의 유민들 일부가 참파로 흘러들어와 융화되어 살게 됨에 따라 그동안 힌두교 냄새 물씬 풍기던 참파도 서서히 베트남 북부처럼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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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경에 베트남이 남쪽의 완(阮)씨, 북쪽의 정(鄭)씨로 나뉘어 내란을 겪는 와중에도 위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참파(초록색 영역)는 꾸준히 판두랑가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고 남쪽의 완씨 가문 세력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당연히 실패로 돌아가고 되려 전쟁의 여파로 전염병이 돌아 거점지 판두랑가만 쑥대밭이 되는 결과만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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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세기에 들어서서 남부의 완씨가문이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베트남을 통일,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완(阮) 왕조를 건국하자 참파는 완 왕조의 태조 가륭제(嘉隆帝)의 특별배려로 판두랑가에서의 제한적 자치권을 다시금 인정받습니다만 이후 가륭제의 뒤를 이은 명명제(明命帝)가 그마저도 빼앗아 버려 1832년, 참파는 정말 완전히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물론 참파의 후예인 참족은 현재 일개 소수민족으로서 살고 있고요.
 
 
 
 
기회가 되면 참파에 관한 글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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