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화가 나 있는 내 친구가 있다.
내가 볼 때마다 그는 항상 성질이 나 있었다.
너의 7번 척추와 3번 척추가 만나게 해주고 싶다며
내 척추끼리의 친목을 걱정해주며
호모 사피엔스처럼 널 슬기롭게 구타해주고 싶다며
너의 후두부가 운동장 바닥의 온기를 느끼게 도와주겠다고
늘상 나에게 인사말을 걸어왔다.
맹자가 성선설을 만들 때 이런 친구가 있었다면
본인이 그릇된 생각을 했었구나 성화설로 수정했을 것이 틀림없다.
함께 강촌으로 놀러 갔을 때도 강을 건너가자고 제안을 하니
네가 건널 강은 요단강 뿐이라고 화를 냈다.
술 먹고 뻗어 잘 때도 이를 바득바득 가는 모습을 보면
당최 무슨 사연으로 저렇게 내재된 성질이 많을까 우려스러웠다.
어짜피 저런 컨셉으로 간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지만
특히 나에게 거대한 화를 아낌없이 표출하는 걸 보니 뭔가 있지
않을까 다른 친구들이 추측하기 시작했다.
"네가 쟤 노트북 빌려 가서 야동 지워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것보단 그 노트북 야동 폴더가 여자애들한테 다 까발려졌자나.
그것 때문에 아니야?"
"네가 쟤가 한 과제를 고대로 베껴서 냈는데 니가 A받고 쟤가 B+
받았자나 거기에 앙금을 두고 있는거 아니야?"
"쟤가 라면 끓일때 안먹는다고 했다가 한입만 해서 다 처먹어서
그런거 아니야?"
"쟤 머리 감는데 샴푸 장난으로 계속 풀어서 그런거 아니야?"
"교수님이 불렀다고 구라쳐서 갔다가 한시간 동안 설교 들어서
그런거 아냐?"
너의 웃는 낯짝을 지구 표면에 찍어서 남겨놓자고 했던
그의 말들이 아직도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증언으로 진정성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얼마나 소개팅에 신경을 써줬냐. 한번 굳으면 망치로
깨야 깨질 것 같은 초강력 젤로 올백 스타일링도 해주고"
"그러게 체인 달린 찢어진 청바지도 빌려줬자나. 체인이 얼마나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면 고물상에 팔면 엿을 넉넉히 세 말은
받았을걸?"
"독수리 박힌 청자켓도 빌려줬자나 너! 그 독수리 진짜 금방이라도
푸드덕 날아갈 것 같았지!"
"그래 지금은 녹슬어서 파상풍을 조심해야되지만 그땐 금박으로
번쩍거렸던 버클도 빌려줬잖아. 어찌나 빛나던지 무슨 챔피언이
등장하는줄 알았지! 그 버클에 있던 독수리와 등짝의 독수리 수미
쌍관이네! 청청 깔맞춤까지!"
이렇게까지 해준 나에게 화를 내다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