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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썼다시피 전 인문학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철학게시판 전글들을 보고 있으니 철학이 전혀 필요없는 학문이 아니냐는 글이 좀 보여서 한번 제 생각을 써봅니다.
대충 글 읽어보면 철학의 문제는 답이 없는 학문이며, 생각만하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학문이고 검증이 되지도 않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지적으로 요약되는 듯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단지 관념에 치중하여 인간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단지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것으로 집중요약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런데 과연 철학은 그저 말뿐인 학문인가? 또한 관념적인 학문이라는 것이 정말 쓸데없는 궤변만 늘어가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데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먼저 저는 철학은 제 나름대로 두가지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존재란 무엇인가? 둘째는 무엇이 선(good)이고 옳은 것(right)인가?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선한 것인가라는 것은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갈음할 수 있겠네요. 정의에 대한 고찰은 본인과 타자의 권리 해석으로 부터 나오니 첫번째 질문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기본이 되어야 정의에 대한 입장이 서겠죠. 그러므로 철학은 존재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종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저의 의견이고 전 수없이 말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미천합니다.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생각해 볼게 우리 인류는 그 어느 시기보다 풍요롭고, 오래 삽니다. 당연히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의한 것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인간의 수명이 의학의 발전에 기인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의학의 발전만이 인간의 수명에 기여했을까라는 질문에는 꾝 그렇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의학에서도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통계적으로 봤을때 가장 인류의 수명을 많이 늘렸겠죠. 주산기, 영아기 사망률은 그야말로 통계적으로 한 사람당 수십년 이상의 수명을 늘려주니까요. 암치료 역시 최소 십수년의 수명을 늘려주겠죠. 각종 외과 역시 수명을 늘려줍니다. 하지만 의학에서도 소아청소년과(그 중에서도 신생아중환자학)와 산과 의사들의 기여도가 가장 드라마틱 할 겁니다.
하지만 리 골드먼의 진화의 배신에 따르면 수렵, 채집시기의 구석기인의 경우 대략 15~25퍼센트의 사람들은 폭력에 의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사고가 아니라 살해를 말하는 것이죠. 그 수치가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더 올라갑니다. 왜냐면 수렵, 채집인은 만약 다른 부족과 문제가 생기면 이주하면 됩니다. 싸워서 백퍼센트 이길 자신 없으면 혹은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거라면 피하는 거죠. 하지만 신석기인은 모든 삶의 터전이 장소에 구애되기 때문에 이주가 불가능합니다. 죽더라도 싸우다 죽으니까요. 이러한 높은 폭력에 의한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집니다. 영화 devil`s advocate에 나오는 명대사처럼 20세기는 폭력의 시대였죠. 하지만 여러번의 큰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겪어도 아무리 높게 잡아도 폭력에 의한 사망률은 1퍼센트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 떨어지겠죠. 그렇다면 의학 이외에 사회의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준 또 다른 요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인류는 폭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까요? 국가때문에? 혹은 법 때문에? 모두 정확한 답은 아닐겁니다. 법이 있던 시기에도 폭력은 만연했고, 국가가 있더라도 폭력은 만연하며 심지어 지금도 소말리아나 콩고, 남미 몇 국가에서는 폭력이 난무할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권위있는 국가와 합리적인 법에 의한 폭력의 독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제 뇌피셜입니다.)
그리고 권위있는 국가는 그 기반이 철학으로 부터 나오고, 합리적인 법도 철학적인 논쟁 끝에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로마제국, 중국의 제국, 봉건제 국가, 절대왕정국가, 공화국 모두 그 시대의 철학자, 신학자, 경제학자 등이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의식적, 학문적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대를 앞서가는 시대정신이 인간세상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하다 수용되고 이런 반복을 통해 인본주의가 확립되고, 더 합리적인 법과 정통성을 가진 권위를 갖는 국가가 탄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안정과 잉여노동의 출현으로 과학이 발전하고 지금의 풍요로운 세상이 된것이죠. 결국 철학에 의한 법과 국가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도, 서울대병원도 없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의 책을 보면 그들은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이지만 또한 철학자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철학의 효용성은 존재하느냐? 지금 게시물 중에 이미 많은 과학과 사회의 발전으로 앞으로 철학은 그저 뜬구름 잡는 학문이 될거라고 전망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두가지 측면에서 효용성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새로운 세상의 출현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이것이 최고로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 역시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빈부의 격차, 자본의 집중(마르크스가 이미 예견한 것들)도 있을 것이고, 민주주의 정치체제 또한 다수의 횡포(최근 브렉시트 사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적 선동에 이끌림, 특유의 비효율성(민주정치의 생명은 절차라고 봅니다)등으로 인하여 다른 체제가 발명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ai의 발전과 it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빅브라더의 세상으로 이끌기도 하겠지만 진짜 직접민주주의 사회로 이끌 수도 있겠죠. 세상은 항상 변합니다. 그러므로 철학의 역할은 지금 민주주의 자본주의에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ai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소외입니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잠식함으로 인하여 인간소외과 벌어질지 아닐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본소득 보장을 실험하기도 하죠. 역할이 없어진 인간이 소비만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아니면 잉여로워지는 인구를 조절해야할지, 적극적으로 소극적으로 할지, 여러가지 대안이 필요하겠죠. 역시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이 한자리 차지해야 할것입니다. 또한 유발 하라리였나 마이클 샌델이었나 기억은 안나지만 ai의 발전에 따른 철학의 용도가 있죠. 예를 들면 무인주행차량이 갑자기 뛰어든 사람을 만났을때 안에 탄 승객을 보호해야 하는가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는가, 또 사람 수에 따라 달라질 것인가? 아니면 마주오는 무고한 차량의 운전자가 우선인가? 과학, 의학, 경제, 정치가 ai에 자리를 내주더라도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결국 인간의 철학에게 자리를 유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철학과가 미래에 가장 각광받는 학과가 될거라는 전망도 있죠.
요새 코로나 사태로 일이 적어져서 철학게시판을 보면서 이것 저것 배웁니다. 그러다가 답답함이 생겨서 모자란 식견이나마 조용한 게시판에 한자리 채워주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모두 힘내시고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내 마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