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수사(黃海水使) 박문수(朴文秀)가 아뢰기를,
“당선(唐船)이 어채(漁採)하는 것을 이롭게 여겨 여름이 되면 오지 않는 해가 없는데 이를 인하여 연해의 백성들과 물건을 교역(交易)하는 등 그들이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습관이 더욱 조장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추포(追捕)하기 위해 온갖 계책을 다 썼지만 힘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지금에 있어 최상의 계책은 비선(飛船)을 많이 만들어 밤낮으로 바다 위에 띄워 놓고 당선의 어채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제일이기 때문에 먼저 비선 20척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만 본영(本營)의 재력으로는 실로 착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영의 유고전(留庫錢)과 병영의 별비전(別備錢) 각 2백 민(緡), 상정미(詳定米) 50곡(斛)을 특별히 획급해 주도록 허락하면 제때에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좌의정 송인명이 그 말을 따를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은 간과(干戈)가 극렬한 가운데에서도 능히 전선(戰般)을 만들었었는데 옹진(瓮津)이 아무리 피폐되었다고 해도 돈 4백 냥을 마련하지 못하여 이런 청을 한단 말인가? 수신(帥臣)은 추고하고 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게 하라.”
몇 줄 요약
- 조선 영해에서 청나라 어선들의 불법 어로를 하기(중국의 불법어로는 전통?!)에 박문수가 함선을 뽑을 계획을 세움
- 그런데 돈이 모자라서 조정에 SOS를 침
- 박문수의 SOS를 본 영조의 대답 <충무공은 겁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알아서 전선 잘 뽑았는데. 님은 그깟 돈 부족하다고 그걸 못한다는게 말이 됨? 님이 알아서 잘 마련하세요>
- 박문수 : ....
알 수 있는 사실
- 중국의 불법어로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구했음
-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너무나도 뛰어난 사람때문에 영원히 고통받는 충무공 사후 신하들 ..
※ 출처 : 영조 59권, 20년(1744 갑자 / 청 건륭(乾隆) 9년) 2월 27일(을해)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