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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과 객관에 대하여
게시물ID : phil_171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奇香
추천 : 3
조회수 : 64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03/01 22:13:45
   주관은 자기의 삶을 위하여 객관은 소통을 위하여 의미가 있다.
   주관과 객관이 상통하면 자기의 뜻을 피력하면서도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편함이 있고 주관과 객관이 소원하면(거리가 멀면) 자기의 뜻을 피력하는데 불편함이 있다. 
 
   주관과 객관이 상이할 때 주관을 어떻게 피력할까 하는 것은 상황의 이해와 방법적 기술을 요한다.

   먼저 이해할 부분이 있다.
   객관은 세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첫째, 자연적 이치로서 인과율이다. 
   둘째, 사실이나 진실이다.
   셋째, 관념적 통설이다.
   자연적 이치는 검증을 필요로 하며, 사실이나 진실은 증거를 필요로 하며, 관념적 통설은 통념화로서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중 주관을 객관화함에 가장 어려운 것은 통념에 관한 것이다.
   때론 주관이 객관 보다 더 치밀하거나 진보된 내용을 가지더라도 인정을 받지못하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관을 객관화 하려는 것은 소통을 위해서 이기 때문에,  이 과정은 성취감과 멸시감을 동반하게 된다.
   자의식을 가진 존재의 존재의미는 주관에 있기에 주관을 인정받으면 존재의미가 고양되고 주관을 부정받으면 존재의미가 퇴락한다. 그래서 통념과 다른 주관을 가진 자는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불행하다. 통념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선도적 지위에 있을 수도 있고 자기만의 망상에 갖혀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관을 피력하는 것은 운동선수가 자기의 기량을 펼치고  채점을 기다리거나, 가수가 신곡을 발표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평가나 반응을 기다리는 수준에서 주관을 피력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않고  자기주관을 평가나 반응과 무관하게 전개해나가면 객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다. 그러나 그것도 자유이다. 단, 짜증이나 혐오를 야기하지 않는 정도가 필요하다. 그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소통이 아닌 자기도취로 인한 타자 억압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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