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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앙군은 집에서 출퇴근 했다
게시물ID : history_171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0/7
조회수 : 110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7/19 11:47:16
조선 전기 중앙군의 장교 운용, 지휘, 편제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했다. 조선 전기 중앙군의 또다른 문제는 병영 운용 시스템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 전기 중앙군은 “방위”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일반 병사들(정병)이 병영에서 생활하지 않고 민간인 주택에 세를 얻어 살았던 것. 갑사 같은 직업군인은 개인 거주지에서 출퇴근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지방 출신의 강제 징집병들이 중앙군 복무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후 개인 거주지에서 출퇴근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단순히 병영에서 생활하지 않고 사가(私家)에서 생활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부대가 약체화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하지만 조선 전기 군대의 훈련과 근무시스템까지 고려해보면 문제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군대의 진법훈련 (대열, 강무)은 자주 실시되지 않았다. 이건 거의 연단위의 훈련이다. 국왕을 경호하고 궁궐을 경비하는 시위 임무는 비교적 자주 번차가 돌아왔겠지만 이건 전투력 향상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일종의 점호나 소집점검에 해당하는 점고는 진법훈련보다는 실시 회수가 빈번했겠지만 조선 후기의 점고 빈도를 생각해보면 조선 전기에도 매일 실시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전기 중앙군 정병이 병영에서 생활하지 않았다는 것은 시위 임무를 제외하고 실제 병사들이 병영에 출근하는 날짜가 한 번 근무차수에 채 열흘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다시 말해 개인훈련은 물론이고 부대의 단결과 전투력 유지를 위한 훈련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멈춘다면 문제는 작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조선 전기 중앙군의 일반 병사들은 “수방사 근무를 명받았으나 매일 출근하지는 않는 방위” + “무단 탈영병” + “동원훈련도 아닌 동원소집점검만 받는 예비군”+ “동원소집점검조차 대리출석시키는 예비군”+ “동원훈련 소집되서 사역만 열나게 하는 예비군”의 기괴한 결합체였다. 


실록에서 근거 기록을 검토해 보자 

-갑사들이 하번일때는 한없이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자기의 무기와 장비마져 팔아 치우는 사례가 있다. 다시 근무 차례가 되면 서로 장비를 빌리면서 돈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 

해설: 일반 군인들 뿐만 아니라 특수부대도 망가졌다는 이야기다. 이건 세종때의 일이다. 그나마 잘돌아갔다는 세종시대에도?? 

-군사들이 서울에 머무는 것을 꺼려하여 번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조의 허락이 없는데도 집으로 돌아갔다. 여러 달을 한가로이 놀다가, 교체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가 겨우 10여일을 지나면 가버렸다. 

해설: 무단 탈영이 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 세조때 기록이다. 역시 처음부터 중앙군이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정병들이 근무를 할 때도 점고를 받고 바로 돌려 보내거나 실제 근무를 해도 15일이 지나면 돌려 보내므로 실제 시위하는 군사들은 갑사 뿐이었다. 

해설: 조선 중앙군 일반 병사들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소집점검만 받는 예비군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 역시 성종 때다. 중앙군이 확립된 시점부터 말짱황의 조짐. 

-정병들은 모두 무명 17~18필을 받고 대리근무를 하며 실제 번을 서는 자가 없다. 

해설: 그나마 제대로 근무를 서는 군사들도 대리근무가 보편화됐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조선의 모든 문물과 제도가 완비됐다는 성종 때의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앙군이 문란해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임금이 말하길) 군사로서 입직하는 것은 오로지 시위하기 때문인데 (중략)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그들의 집에 있게 함이 마땅하다. 

해설: 국왕 경호를 위한 시위 임무가 없으면 방위들은 출근 안해도 된다는 국왕의 지시. 예종이므로 역시 이른 시기다. 훈련을 위해 출근하는 것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찍부터 중앙군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 

-세조께서는 지방의 군사가 개인 집에 임시로 거처하게 되면 아침 저녁의 땔감 비용이 엄청남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사방에 군병영을 세워 군사로 하여금 살게 했다. 

해설: 병영을 만들긴 했지만 군사상 필요성 때문이 아니고 개인별 난방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발상. 

- 근무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군사를 한양 사람들이 개인 집에 유인하고서 재물을 요구하니, 그 폐단이 셀 수 없이 많다. 

해설: 지방 출신 군사들이 서울 깍쟁이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개인 집에 먹고자면서 월세를 내면서 생활한다는 이야기. 현역들이 방위가 된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선왕 때에 군병영을 네 곳에 설치하여 군사들의 살 장소를 만들어서 그 폐단을 제거했지만, 기후가 추울 때는 병사들의 편리를 들어 주어야 할 것이고 강제로 병영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설: 병영이 난방이 제대로 안되서 춥고 괴로우니 개인 집에서 살면서 필요할 때만 출퇴근하기를 원하는 군사들의 소원을 들어 주자는 엄청난 이야기. 

-군사들이 사사로이 사는 데 편하여 군병영에 있지 아니합니다. 

해설: 지방 출신 군사들이 개인 집에 월세 사는게 편하다고 병영에 있지 않으려 하지 않는다는 보고. 성종대에 처음으로 문제의식을 느낌. 그 전에는 문제 의식도 없었음. 그러나 그 이후 기록에도 방위들은 쭉~ 계속된다. 

-군사가 군병영에 늘 입번하지는 않고 또 인마(人馬)도 없으니, 급한 일이 있으면 어찌하겠습니까?”하니 “군사가 병영에 입번하지 않고 반드시 개인 집에 있으려는 것은 군장을 잃지 않고 또 음식이 편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병영에 입번하도록 독촉하고 매양 징속하면 억울한 일이 많을 것입니다.” 라고 반박했다.

해설: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병영에서 생활하면 군장도 잃어버리고 짬밥도 맛없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자기 월세방에서 생활하도록 허용하자는 놀라운 여유. 이게 중종 때다. 

-군병영을 설치한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인데, 근일에는 모두 민간 집에 붙어만 있으니, 만약 변고라도 있게 된다면 도읍을 지키는 병사로서 누가 능히 장비를 갖추어 종군할 수 있겠습니까 

해설: 군인이 집에만 붙어 있으면 비정상인 것은 당연하다. 오랜만에 다시 개념인 출현! 

-좌우 군병영이 있는데 병조(兵曹)에서 침해하여 징수하는 것이 제한이 없으므로 군인들이 모두 입접(入接)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해설: 병영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서 생활하면 귀찮게 하므로 아무도 병영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방위는~쭉 계속된다. 

-병조와 도총부의 관원은 보병을 나누어 구사(일종의 심부름꾼)로 삼는 것이 보통인데, 사실은 데리고 다니지 않고 댓가만을 받았다. 전에는 혹 데리고 다니면서 댓가를 거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풍기가 이미 해이해져서 비록 청렴한 자라도 댓가받는 것만은 그만두지 않았다. 

해설: 기병을 제외한 보병 정병은 애당초 노예처럼 노동부대로 운용했다는 이야기에 그나마 돈받고 대리 근무시켰다는 이야기 

-부역을 대신하고 있는 자가 과연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병조의 서리들이 하고 있는 짓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점고하면 이곳에 와서 점고 받고 저곳에서 점고하면 저곳으로 달려가 점고 받습니다. 

해설: 대리근무가 많은데 그나마 1대1 대리근무도 아니고 여러 명의 대리근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대多 대리근무가 가능한 이유는 위에도 설명했듯이 조선시대 중앙군이 매일 병영으로 출근하는 시스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연결된 직업적 대리 근무자 출현! 

-자기가 직접 번을 서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아전들의 침학과 독촉이 너무 심하므로 할 수 없이 농지와 집을 팔아 번서는 댓가로 쓰고 있습니다. 

해설: 현역으로 복무하고 싶다는데도 돈내고 대리근무하라고 병무담당 직원들이 독촉했다는 이야기. 

-신이 듣건대 여수(旅帥)들이 약속하기를 "군병영에 들어가 붙어 있는 자가 있거든 벌주자“고 모의했습니다 

해설: 무보수 중대장들이 모여서 방위들 중에서 출근하는 놈이 있으면 한따까리를 했다는 이야기. 출근 안하는 놈이 아니라 출근하는 넘을 조졌다는 점이 포인트다. 

-신이 또 듣건데 여수들이 약속하기를 “살찌고 튼튼한 말을 끌고 와서 점고(點考)받는 자가 있거든 벌주자.’하였다 합니다. 

해설: 역시 우리의 중대장들이  점호때 장비가 좋은 병사들은 처벌했다는 이야기다. 점호 받을때 혼자 총기 수입을 너무 잘하거나 모포 각을 너무 잘잡으면 동료 전우들이 게으른 것 처럼 보이기 마련.

-군사들이 모두 군병영에 있도록 함은 의외의 일에 대비하려는 것인데 지난번에 비록 엄격히 군병영에 있도록 하였지만 모두 병영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었고 지금은 병조가 매우 엄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군사들이 빠짐 없이 들어가 있는데, 다만 군병영은 좁고 인원은 많아 열기가 훈증하므로 병들어 죽는 자가 자못 많으니, 신의 생각에는 의원을 정해 보내 구호함이 합당하겠습니다. 

해설: 방위들을 군기 잡고 다시 현역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안하던 짓을 하면 동티나기 마련이다. 역시나 전염병이 돌아서 줄줄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이게 중종 때다. 조금만 있으면 임진왜란 터진다. 임란 터졌을 때 조선 중앙군이 별 전투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당연하다.



* 조선 중앙군 정병에 대한 세줄 요약 

조선군 중앙군은 방위다. 

방위인데 도시락이 없다 (밥은 하숙집에서) 

고로 조선군 중앙군은 약했다.  




>출처는 번동아제님의 조선시대 중앙군은 집에서 출퇴근 했다 입니다.


>가독성을 사유로 글자의 강조 색상을 일괄적으로 적색으로 통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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