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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슨의 낙관주의에 대한 데이빗 베나타의 도전장
게시물ID : phil_171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ŜatasVin
추천 : 0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17 15:47:35
David Benatar, "The Optimism Delusion", Think, 2008, 19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God Delusion>에서, 유신론의 그름을 드러내면서 그 자신의 망상을 드러냈다. 즉, 낙천주의의 나쁜 사례를 보여주었다. 낙천주의는 상황을 실제 있는 대로보다 더 낫다고 (또는 실제 있었던, 있을 것보다 더 낫다고) 믿는 망상적 신념(delusional belief)이다. 낙천주의는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여기서 유관한 것은, 인간성과 인간 조건에 관한 낙천주의다. (optimism about humanity and the human condition) 그것은 유신론보다 훨씬 더 널리 퍼진 망상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유신론자건 무신론자건 가리지 않고- 묶는다. 도킨스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중 어느 누구라도 존재하게 될 어마어마하게 작은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그는 우리 각자가 태어나서 얼마나 운이 좋은가 하고 놀란다. 그는 우리의 삶의 일초라도 낭비하는 것은 애초에 삶을 결코 제공받지 못한 태어나지 못한 수조 명의 이들에게 냉담한 모욕이 된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우리는 죽을 운명이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태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죽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태어나지 않은 유령들’은 ‘아라비아의 모래알의 수를 넘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킨스의 견해를 공유하기는 한다. 즉, 그들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혼란에 빠진 생각이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만일 그 대안이 더 나빴을 경우에만 행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안은 전혀 나쁘지 않다. 사실 (20) 그것은 존재하는 것보다 낫다.

​비록 존재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삶의 기쁨을 경험해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한 좋음들을 박탈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아무도 없었더라면 어느 누구도 좋음을 박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존재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존재가 전제조건이 되는 무수히 많은 해악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낙천주의자는,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지를 잊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도킨스 교수는 우리가 ‘우리 종의 삶을 위해 거의 완벽한 행성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지구가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고 또 물과 음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행성이 삶을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짚은 점에서는 옳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에 가까운all but perfect’ 것이라는 소리는 엉터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의 시대에 너무 덥게 살았거나 너무 춥게 살았다. 살지 못할 정도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락하기에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게 살았다. 자연 재해와 감염 질병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나 행성이 우리의 아픔 때문에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우리 자신의 신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실패를 안겨준 것이다. 인간 자신이 저지른 악에 당한 수백만의 희생자들이 있다.

​우리 행성의 더 운이 좋은 거주민들은 불편, 불안, 고통, 실망, 두려움, 슬픔, 죽음 그리고 그밖의 많은 것들을 겪는다. 이 해악들 모두는, 만일 그것을 겪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피해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이득을 얻는다는 신념은, 그렇다면, 극도로 해로운 망상이다. 왜냐하면 그 망상은 괴로움을 겪는 추가적인 세대를 창조하는 것을 북돋우기 때문이다.

깊이 망상에 빠진 이들은, 삶이란 내가 주장한 나쁨 근처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좋다고 한다. 그러한 이의제기자들은 신뢰할만 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질이 나쁜가를 과소평가하도록 이끄는 인간 심리의 잘 탐구된 특성들이 있다.

​이 심리적 특성 중에 주요한 것이 ‘낙천주의 편향pollyannaism'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천주의에 대한 이런 끌림을 갖는다고 연구결과는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더 자주 회상하며, 사태가 얼마나 잘 흘러갈 것인가를 과대평가하고, 그들의 삶이 평균 이상의 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을.

도킨스는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외심에 가득찬 놀라움의 감정에 대해서 미친듯 기뻐하며(rapturously) 말한다. 그러나 이 종교적 경외감에 상응하는 세속 판본은 삶의 의미있음에 대한 보증자(guarantor)가 전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신 없는 세계가 의미 있다는 증명이 될 수 없다.

​우주와 인간 삶이, 유신론자가 통상 이야기하는 신이 부여한 그런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고 해서, 그 공허함이 어떤 세속적인 대안으로 채워짐에 틀림 없다는 함의를 수반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우리의 삶이 아무런 목적도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 결론을 피하기 위하여(to ward off) 도킨스 교수는,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만큼 의미 있고 또 경이롭다는 흔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의미만이 우리 삶이 요구하는 유일한 의미라는 가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참이라면, 종교적 삶이 망상에 토대를 두었을 때 조차도 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망상에 근거한 삶 역시 사람들이 그렇게 의미 있고 경이롭게 만들고자 선택한 이상 그만큼 의미 있고 경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삶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의 계획에 부합하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종류의 망상이다. 그것이 그 자신이 세운 계획에 부합하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것은 사실 다른 종류의 망상이다. 즉, 자신의 계획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도킨스가 철학적 염세주의와 진지하게 대결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서 세속적 낙천주의의 성가를 설교하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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