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본인이 고2되던 1989년도 어느 늦은 가을 토요일 오후. 수원에서 유학하던 그때 집에가기위해 시외버스를 탓는데, 뒤에 줄서있던 내 또래 예쁘장한 여학생이 통로 반대편 좌석에 뒤이어 앉게되었다. 그러려니하고 내 신형 '아하' 카세트 이어폰 귀에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그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또래 남학생들이 다 그러하듯 요즘말로 시크하게 살짝 미소지어주고 책가방 속 일주일치 빨래감 속에 예의상 밖혀있던 성문기본영어 꺼내려던 찰라, 그 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옆자리 비었으면 앉아도될까요?" 이렇게 적극적인 여학생이 다 있다니, 당황한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 여전히 시크하게 옆 창가자리로 이동했다. 물론 심장의 떨림소리가 그녀에게 들릴까 조바심 난 채로.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어야하나 하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얼마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그 적극적인 여학생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창가 자리에 앉는걸 좋아해서..자리좀 바뀌주시면 안될까요?" 그랬다. 창가자리를 좋아하던 그 여학생은 유일하게 내 옆자리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아무렇지않게 말을 걸었던것이다. 혼자 착각했다는 쪽팔림과 당황속에 아무말 못하고 옆자리로 옳긴다음 도착할때까지 카세트 속 take on me 만 계속 들으면서 자는 척 해야했다.
Ps. 위에나온 '아하'라는것은 삼성 '마이마이' 에 대항해 금성전자에서 야심차게 출시했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