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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장왕(王) 태조 이성계
게시물ID : history_171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애비28호
추천 : 16
조회수 : 1966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7/17 22:06:19
(제목이 너무 딱딱해서 바꿨어요^^:)
 
태조 1년(1392 임신) 12월
태조 임금이 양광도 안렴사(楊廣道按廉使) 조박(趙璞)과 경상도 안렴사 심효생(沈孝生)이,
백성으로서 상복(喪服)을 입은 사람이 절에 가서 부처에게 공양(供養)함을 금지한다는 말을 듣고,
이색(李穡)은 세상에서 큰 유학자인데 이도 또한 부처를 숭상하였지 않음? 그런데 저 자식들은 무슨 글을 읽었길래 부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이와 같은가?”하고는 어이 없어 하심.
 
 
태조 1년(1392 임신) 12월
태조 임금이 조선의 수도를 옮기자고 그러는 동안 많은 관리들이 원래 고려의 수도인 개경땅이 좋은 땅이라고 수도 이전을 거부함.
이에 태조 임금이 ​고려 왕조의 종묘와 사당인 인희전(仁熙殿)적경원(積慶園)을 확 뭉개 버렸다고 함.
말 안들으면 다 뭉게 버림.
태조 1년(1392 임신) 윤12월
​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정총(鄭摠)에게 명하여 《대장경(大藏經)》을 새로 찍어 내고 그 서문을 지어 올리라고 함.
성리학자인 ​정총이 불만을 표하며,
“전하께서 어찌 불사(佛事)에 정성껏 하십니까? 청하옵건대, 믿지 마옵소서.”
태조 임금이 또 이색(李穡)을 들먹이며,
이색(李穡)은 유학(儒學)의 종사(宗師)가 되었는데도 불교를 믿었으니, 만약 믿을 것이 못된다면 이색이 어찌 이를 믿었겠는가?”
정총, 이색은 세상에서 학식이 높은 선비가 되었는데도 남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진실로 이것 때문입니다.”
태조 임금 “그렇다면 네가 이색보다 더 잘났다는 말이냐? 입 다물어라.” 쿨가이 태조 임금이심.
태조 임금의 학문에 대한 기준은 '이색(李穡)만큼 아는 사람"과 '이색보다 못한 사람' 두가지 기준이었나 봄.
 
 
태조 2년(1393 계유) 1월
태조 임금이 간만에 사냥 나가심. 한참을 돌아 다니시다가 그만 한강(漢江) 가에서 몸살이 나심.
무려 4일 동안을 머물렀다고 함. 그런데 그동안 경호원들이 주변의 인가(人家)에 가서 밥 내놔라, 니네 딸 많이 예쁘네~♥ 등등
일부 군사들이 민폐를 끼치고 다녔나 봄.
태조 임금이 그 군사들을 붙잡아서 동네 한복판에서 피해자들 다 구경 하라 그러고 신나게 벗겨 놓고 곤장 때리심.
"오호~ 이 놈 궁둥이가 찰지구나~^^"
 
 
태조 2년(1393 계유) 3월
잠잠하던 남해안에 왜구들이 다시 개지랄을 떨고 다니기 시작했나 봄.
예전 같으면 태조 임금 본인이 출전해서 쪽바리 생퀴들 화살 한대에 꼬꾸러트리는 건데...
​아무튼 삼도 절제사(三道節制使)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 전 문하 평리(門下評理) 박위(朴葳), 최운해(崔雲海)양광도(楊廣道)에 보내고,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남은(南誾)·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이지란(李之蘭)경상도에 보내고, 태종 임금과 전 전주 절제사(全州節制使) 진을서(陳乙瑞)전라도에 보내어 왜구(倭寇)를 막으라고 하시면서 끝으로 두 주먹을 움켜 쥐시며 한마디 하심.“니네들 나가서 왜구 못 때려 잡으면 두번 다시 나 볼 생각 말어라.”
 
 
태조 4년(1395 을해) 3월
태조 임금이 간만에 피로도 풀겸 평주(平州)의 온천(溫川)에 놀러 가실려고 함.
간관(諫官) 한상환(韓尙桓) 등이,
“신 등은 전하께서 장차 온천에 거둥하려 하신다는 말을 들었사온데, 병을 고치려고 하시는 것이오니 중지하시기를 바랄 수는 없사오나, 신 등은 생각하옵건대, 온천이 신도(新都)에서 3백여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황무한 들판에서 연(輦)을 멈추어야 하오니, 병을 고치는 방법에도 좋지 못할까 하오며, 더구나 농사철이 한창이온데, 거둥하시는 곳마다 아무리 간략하게 한다 하더라도 어찌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소서.”정도로 아주 구구절절 반대를 함.
태조 임금이 짜증을 내시며,
“야이 생퀴들 웃기네? 민폐는 걱정 되는데 내 병은 걱정하지 않냐? 열라 섭섭 하군”결국 성질 내시며 온천으로 떠나심.
 
태조 6년(1397 정축) 1월
대사헌 민여익(閔汝翼)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조견(趙狷)과 한성 윤(漢城尹) 신효창(申孝昌)을 어떤 일로 탄핵을 함.
​그런데 조견의 형이 바로 조준(趙浚) 대감임. 대사헌 민여익의 입장에서는 그냥 탄핵 해서는 안될것 같아서 몰래 조준을 만나서
"이거 임금님의 뜻인데 조견을 탄핵 좀 해야 겠어요. 내가 탄핵하면 조준 대감께서는 모른척 하시면 됩니다." 라고 구라를 침.
믿었던 임금에게 좀 섭섭했던 조준이 이 이야기를 태조 임금에게 전하자 태조 임금이 없는 이야기라 하여 노발대발함.
​더군다나 조견은 조준과 함께 개국 공신임.
태조 임금이 민여익을 불러 놓고,
“네가 헌관이 되어 죄가 있는 자를 탄핵하면 되었지, 하필 말[辭]을 핑계할 것은 무엇이냐? 또 조견은 공신이라 경솔히 탄핵하는 것은 불가하다.”하고는 민여익을 옥에 가두고 처벌 하려고 함.
그때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임금에게,
“님. 민여익도 공신임."
태조 임금이 가만 생각해 보니 ​둘다 공신임. 아 괜히 공신을 너무 많이 찍어내서 누가 공신인지도 잘 모르겠음.ㅠㅠ
그래서 둘다 집으로 돌아가 쉬어라고 그러고 얼마 안 되어 못이긴채 하고는 모두 용서하여 풀어주었다고 함.
태조 6년(1397 정축) 5월      
사헌부 감찰(監察) 김효렴(金孝廉)풍저창(豊儲倉) 정기점검 중 창고 관리인이 뭔가 실수가 보여 창고 관리인의 하급 직원을 매질 하였다고 함. 김효렴이 매질을 하며 하급 직원에게 
“그대는 왜 그대의 관원을 가르쳐 주지 못했는가?”하며 관리인 들으라고 소리 높여 면박을 줌.
그 이야기를 들은 창고 관리인 박상문(朴尙文)이 감찰에게,
“그러면 감찰(監察) 너님도 사헌부의 하급 직원에게 가르침을 받는 모양이지? ^^
말문이 막혀버린 감찰이 사헌부에 가서 관리인을 탄핵함.​
그 이야기를 들은 태조 임금이 이걸 누구 손을 들어 줘야 할지 고민이 됨.
그러다가 저번에 민여익과 조견의 사건이 떠오르신듯.
“야. 거기 둘다 파직!”이런건 엄청 빨리 습득 하시는 듯.
(원래 양반들끼리, 또 계급 차이가 나는 관리들 사이라도 절대로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금지되어 있음.)​
 
 
태조 6년(1397 정축) 6월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 하기를 수군 만호(水軍萬戶) 최원충(崔原忠)이 왜선 한 척을 온전하게 포획 했다고 함.
당시 조선의 군인이 왜구의 배를 포획 했다면 잘하면 1계급 특진, 못해도 엄청난 상품이 지급되는 최상위 레어템임.​
아무튼 최원충이 왜적의 배와 빼앗은 군기와 의갑(衣甲)을 임금에게 전리품으로 보냈는데,
수십년간 전장을 누빈 태조 임금이
“최원충이 배를 송두리채 잡았다면서 어째 포로는 하나도 없냐? 이거 뭔가 냄새난다. 조사해봐라
그날로 바로 조사를 하러 관리가 출발 했는데,
조사 결과 왜나라에서 온 사신을 최원충이 붙잡아서 모조리 죽여버리고는 해적이라고 거짓 보고를 한 사건이었음. 
최원충 및 공모자 등 6명의 목이 달아 났다고 함.​
태조 7년(1398년 무인) 4월.
간관(諫官) 들이 임금에게,
"여섯 아일(衙日) 마다 조회 시간에 좀 나와서 조회 좀 받고 또 조회 끝나면 신하들이 한마디씩 하는거 좀 듣고 그러쇼.
왜 요즘은 자꾸 조회 빼먹고 그러심?"
태조 할배가 멋쩍게 변명을 하시는데,
“말한 바가 옳다. 그러나 조금 병(病)이 있고 천기(天氣)가 아직 차서 조회를 보지 못하였다. 장차 청(請)한 것과 같이 하겠다. ”
이에 예조(禮曹)에 명령하였다.
“이제부터 매양 조회하는 아일(衙日)에 전서(典書) 이하가 뜰에 들어와서 반열(班列)을 정한 연후에야, 내가 나가서 조회를 보겠다. 내가 먼저 나가서 너네들 기다릴려니까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냐 되잖냐. 나 5분만 좀 더 잘란다...”
 
 
태조 7년(1398 무인) 윤5월
태조 임금이 계속 조회를 빼먹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이지(李至)가 상소를 올려서 조회 좀 참석하라고 잔소리 엄청함.
​태조 임금이 썩 불쾌한 표정으로,
"알았다. 알았다고!!! 그래, 내가 병이 있어서 못나간다니까 계속 그러네... 알았어 이제부터 병이 있어도 조회 나갈께!!!
나가서 쓰러저도 조회 나갈께. 됐냐?!!!. 그리고 너 상소 내용에 그냥 사실을 똑바로 할 말만 하면 되지 뭘 은근히 비꼬는 표현 같은게 있는데... 너 조심 해라. 내가 지켜 본다"
태조 7년(1398 무인) 윤5월
한양의 도성 신축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임.
그런데 날도 더워지고 농사가 한창인 철이라 신하들이 신축 공사에 동원한 백성들을 돌려 보내자고 함.
임금이 "야 이제 이거 다 되가는데 이거 마저 하고 보내면 안돼냐?​ 얼마 안남았어!"
그러자 신하들이 "안됨"이라고 단호박도 아닌데 단호하게 거절함.
태조 임금이 어쩔수 없이 신하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을 다 돌려 보내라고 명하심.
며칠후 태조 임금이 산책 나오셨다가 아직 공사를 하던 백성들의 모습을 봄.
​태조 임금이 "어? 이거 하도 돌려 보내라고 졸라서 다 돌려 보내라고 했는데 아직 공사하는 백성은 뭐냐?"
신하들이 "거 아직 중요한 몇 군데 남은데가 있어서 몇 사람 일 좀 더 시킬라고요..."
그러자 태조 임금이 "야 내가 이거 마저 조금만 더하면 된다니까 안된다고 지랄들 할때는 언제고 이건 지금 무슨 시츄에이션?"
"이럴꺼면 처음부터 조금만 더 시키고 돌려 보내자고 하는게 맞지 않음? 지금 나 가지고 장난?"
짜증 엄청 나신 태조 임금이 뒤도 안돌아 보시고는 돌아서서 궁궐로 가버렸음.
모든 신하들이 전부 임금에게 몇차례 사과를 하고서야 화가 조금 풀리셨다고 함.​
 
 
정종 2년(1400 경진) 1월 28일
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 당시 이방간(李芳幹) 패거리가 태종 임금 죽이러 간다고 몰려 가는 길에 하필이면
태조 임금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됨.
태조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짜증 대폭발 하여 뛰쳐나와 진군하는 군사들을 보고,
“네가 정안(靖安,태종)과 아비가 다르냐? 어미가 다르냐? 야이 소 같은 새끼야!”라고 자식에게 훈훈하게 욕 시전 하셧다고 함.
(요즘으로 치자면 "님 부모님 출타중이심?" 뭐 그정도 되지 않나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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