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의 운동만 보고도 지구의 공전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던 시대까지 근 5천년간 그 어떤 누구도 그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누군가 알아냈어도 보통 그렇듯이 그냥 스쳐흘러가는 생각처럼 되었을 수도 있고, 그런걸 깨달았어도 유명해지지 않고 그냥 묻혔을 수도 있다. 당시에도 현대처럼 유명해져야 깨달음도 알려지는 부당한 원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단 생존과 직결이 되지 않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고, 당시 주류이고 지배자인 교황청이 천동설을 정설이라 주장하여 아무도 반기를 못들고 의심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금성의 운동 궤적을 생각하고 데이터화 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을 보고도 추론하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사과가 떨어져도 이유를 몰랐던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조사에 의하면 인간들의 90% 이상은 인지왜곡이 있다고 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온전히 대상을 보지 못하고 속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렇게 그들이 잘못생각하고 느낀 것에 대한 후폭풍과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다 많은 인간이 그런다. 그런 것이 곧 사회문제이다.)
특히 '유사성의 오류' 로 자기가 겪은 '착한' 느낌대로 판단하므로 오판하여 앝보는 것이다. (실상은 다를 수 있는데) 그러니 다른 행동하면 "재수없다." 거나 '뭔가 이상하니까' 기침하지. 그들이 잘못한건데 내가 고민하고 앉아있다.
이것이 '아 저들이 잘못생각한거니까... 내가 맞고,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아야지...' 그러고 산다고 고쳐지고 그들이 다시봐주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다시보는 일도 있는데 첫인상에 좌우되고 끝까지 가져가는 일도 많다. 인간이란 상당히 불합리한 존재이다.
자존감이니 뭐니 하면서 남눈의식말고 자기 뜻대로 살으라는 조언이 많다. 그런데 그것의 문제는 나도 해봤지만, 그렇게 사는데 시비를 걸거나 불이익을 주거나 지들 멋대로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냥 '신경끄고 무시' 하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이 안되었다. 그러기에 고민이 생긴 것이고 이런 부당한 현실(곧 타인)을 바꾸거나 내가 바뀌어야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망가는 안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너무 답답해서 내가 못견뎌...)
그런데 나는 그들의 눈과 말이 틀렸기에 그들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좀 손해가 있더라도(시간이란 귀중한 것을 잃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 시간에 그들의 룰로 혐오할바에얀 그냥 진격하기로 하였다.) 옳은 나를 인정하고 나대로 살며 세상을 바꾸려한다.
나는 그냥 행복하고 싶었다. 인간이 살날도 길지 않은데, 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조용히 아무런 문제없이, 사회적 분란없이 평온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어차피 한정된 시간속에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그렇게 살았다. 더구나 그간 시간을 낭비한 경향이 있어 그러한 삶이 더 간절했다. 나는 햇빛쐬고 일상으로 행복했다. 난 바깥 공기만 맡아도 행복한 것이다. 사소한 것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고 돈은 많지 않지만 그렇게 일상을 채워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살도록 날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마치 잘난 사람을 가만 안내버려두고 따라서 올려주듯 못난 사람을 핍박하고 끌어내렸다.
사람을 평가 대상으로만 보고(우주도 인간을 그렇게 보고, 우주가 상황적 조건에 의해 '진심' 이 나도록 만들어졌으나 한국이 더 심하다. 가끔 조건에 따른 반응을 초월한 진심이 있기는 있으나 이들 얘기는 아니다.), 전혀 나라는 사람을 인간대 인간으로 배려하지 않고, 차별하고 냉대하고 불이익을 주고 괜히 시비걸고 욕하고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니들은 행복했니? 이기적으로 남은 피해주고 자기는 즐거워? 한사람씩 다들 그래서 나라가 이런거다.)
누굴 찔러야 살인범이 아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사람의 행복할 시간을 망치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살인이고 범죄이다. (내가 당했으니 고대로 백배 사회에 돌려준다. 그것들이 행복하면 안되는데 행복하고 있다...)
남 의식안하고 사는데 존나 남의식하고 갈구고 시비거는 벌레들이 있다. 특히 길거리에서. (남녀노소 안가림.) 지네가 존나 남의식하고 쓰레기같이 사는데 나는 안그러고 사니, 그런 지같은 병신상태를 내게도 강요하고, 배제될지 모르는 사회적 불안을 약자인 나로 타겟을 찝어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 공격함으로써 자기는 안그런다고 착각하며 불안을 해소한다. 나를 좀 허술하다고 '싸움에 진 개' 취급을 하면서...
나말고 남의식 안하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시비가 왜 굳이 나였나. 사실 그게 눈길가고 만만해서 본능대로 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니라 벌레였던 것이다.
"왜 시비거냐?" 잘사는 사람을... 온라인에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범죄자들은 자기들의 합리화로 그냥 "니가 만만하니까 그렇지." "띠꺼워서." "그냥 싫어." "그냥 기분나빠." "진짜 없어보인다." 그런 식으로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런 식으로 당하면 보통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겉보기엔 그냥 일반인이고, 사실 인두껍을 쓴 악마 혹은 쓰레기인데 그런 벌레 새끼들의 왜곡된 마음에서 나온 짓거리들을 찐따처럼 존중하는 것이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 자기를 고치려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래서? 그런데 사실 까보면 그 결점이 작은데 그걸 보는 것들의 눈깔이 삐어서 침소봉대하여 지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말투나 어조 하나하나를 일반인들은 크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게 일반인들이 정보처리하는 스펙트럼이 좁다. 그래서 이전에 그런 일반인 기준에 맞춰서 처세하려고 힘든 적이 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무시하고, 똥씹은 표정을 한다거나 기침을 하고 침을 뱉는다는건 그들 기준에서 인격모멸 수준의 제일 큰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고. 자기가 당하면 천지개벽하듯이 분개하지만 남에게 할 때는 감정이입이 차단되는 듯 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못생겼는데 잘생긴척하는 느낌이나 약한데 쎈 그런 띠꺼운 부조화의 느낌이 있을 수는 있다. 생긴 것과 인상이 뭔가 안어울릴 수도 있고, 잘생기려다 하자 심하게 그럴 수 있고. 아예 약하고 빻아보일 수 있고. 그리고 다른 일반인보다 그런게 강할 수 있고.
그런데 문제는 마치 물이 반이나 남았네, 반밖에 안남았어 같은 상황에 대한 해석과 같이,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그때 보이는 것을 보고, 진상 피하는 생존상 봐야하는 것을 보고, 이성을 찾거나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본능 등의 이유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다른건 무시하는 형태로 주관적으로 인지왜곡을 한다는 것에 있고, 바꾸고 싶지도 않고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생김새를 가지고 내탓을 한다는 문제가 있다. 마치 기형아로 태어났는데 넌 왜 기형아냐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도 고민이 심하고 노력하여 많이 나아졌을 수도 있는데 그런 사정도 모르면서 겉만보고 왜곡된 인지로 몹쓸 짓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사실 잘못과 책임은 생각없이 겉만보고 욕하는 예의없는 사람에게 있는데.)
물론 그들 눈엔 내가 잘못했다 생각할 수 있다. "생긴게 잘못했어." "니가 있는게 잘못이야." 이딴 식으로. 논리보단 (부당한 진화에 의한 유전적 선호 + 사회 미디어나 다른 사람 선호의 영향도 받아)자기의 왜곡된 감정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잘못안한 연예인도 악플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꼭 내가 잘못했다고 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악플은 도마에 오른, 자기 눈에 거슬리거나 질투나는 만만한 약자를 대상으로 트집을 잡아 평소 자기의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방식의 잔인한 손가락 살인이다. 기사는 부추길뿐 사실 본질은 인간의 본성과 놓여있는 상황적인 처지이다.) 더구나 그렇게 따지면 자기들은 무기징역 아니겠는가. 이기적인 욕구나 자기 이상형을 지키기위해 남을 혐오하는 케이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그들의 눈에 보여지는 것만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그들의 마음에 안든 '죄' 를 기어이 억지로 내게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뭐든 진짜 속내를 덮는 명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정말 하나도 없는데. 아무말도 안했는데. 오히려 어울리려했고 친절하게 잘해줬는데... 예수도 이렇게 죽었지. '볼품없이 태어나 설쳤다' 고. 그들의 눈에 '미움을 산 죄' 를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누명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남들처럼 인생을 가볍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지우고 시비걸고 공격한건 '심각한 일' 이였다. 그들은 침뱉고 꼬라보고 눈총주고 배척하고 흘끗보고 기침하고 그 "심각한 가해" 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있었다. 그게 그들의 '일상' 의 일부였다.
처음엔 그런 '인간 벌레' 들 때문에 그냥 인간관계 포기해버리고 내식대로 그냥 살려고 하였다. 그들의 유치한 본능이 아닌 나의 이성과 사상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세와 태도에도 이런 것들은 심기가 거슬렸는지 "띠껍다." 는 식으로 치부했다. 분명히 그들이 틀렸지만 현실의 사회적, 물리적 약자이고 지극히 작은 개인이라서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할 힘이 없었다.
그냥 그런 벌레들을 만난게 "재수가 없었다." 고 치부하기엔 그런 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또 주변에 쉽게 전염시켜서 내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냥 넘길래야 넘길 수가 없는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 것이었고 결국 인생의 중요한 문제인 진학과 직업에도 지장이 생기고 남들 다하고 누리는 행복조차 박살을 내자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나자신도 이런 부당한 인간관계를 거부하며 사회를 바꿀 생각을 했다. 문제는 사회였고 사람들의 마음이였던 것이다. 나를 부당한 룰의 세상에 맞추지 말고, 세상을 다같이 살기좋게 변화시켜라. '조커' 라는 영화를 보면 이러한 것이 잘 나와있다.
어릴때 학교에서부터 양아치들이 만만하고 거슬리고 공부잘한다고 시비를 걸어서 싸워야했고, 집에선 이유없이 트집을 잡아 아동학대를 당했다. 아마도 (얼굴도 잘 안보고 거의 남과 다름없던 상황이였으니) 아동학대의 원인과 사회에서 인상만 보고 냉대했던 심리가 동기적으로 같았던 것 같다. 사회에서 날 고깝게 보며 함부로 했던 이유가 아동학대의 이유도 되었던 것이다. 즉 "그냥 보기 싫다." 자기 안맞는 등의 이유로 "싫다." 는 식의 자기도 이유를 모르는 감정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했을 수도 있고.
거기다가 덧붙여 만만하고 저항할 힘없는 어린 놈이 자기가 벌어온 밥을 먹고 집에서 자고 있으니 열이 받은 것이다. 그리고 평소 직장생활 스트레스와 승진과 같은 사회적 불안감을 꼬투리잡아(그냥은 못패니까) 폭발시켜 내가 희생되고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박살을 내었던 것이다. 아비라는 역할을 망각한 아동학대 범죄자가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냥 "없어보인다." "비호감이다." "성격나빠보인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차별했고, 냉대했고, 따돌리기까지 하였다. 실제로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꺼내기도 전에 그렇게 차별하고 선을 긋고 그들의 모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선한척하는 교회에서도 당한 일이다.
차라리 말로 하면 쉽게 알아먹는데 쉽게 증명이 힘든 비언어적인 사회 신호, 즉 인사무시하기, 거부하는 표정, 꼬라보기, 눈총, 찌푸리기, 침뱉기, 가래침뱉기(영역표시와 우월감 표시는 싸이코패스의 특징이다. 이런짓은 싸이코패스가 많다.), 무리에 끼워주지 않기 같은 것들이 배척과 적대감의 사회적 신호들인데 이런 것들로 비열하게 해버리면 뭐라 꼬집어서 개념화하기도 힘들고 분명 피해는 있는데 입증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자칫하면 '피해의식' 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왕따, 배척같은 행위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피해는 존재하니까 그런 식으로 간접적 증명도 가능하다고 하겠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묻지마 조차도 그렇다. 어떤 사람이 피해상황이 있으면 그에 대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도 존재한다. 가해자를 욕해야지 피해자를 탓하지 말길 바란다.
흔히 사람들은 잘난 놈, 못난 놈 가르고 속으로 무시한다. 남눈을 의식하고 남을 꼬라보고 흘끗보고 흘겨보며 기침하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품평하기도 한다. 이것은 남녀가 없다. 겪어보니까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뭘로 무시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 무시하는건 똑같다. 없으면 없는대로 트집잡고 폭발시킨다. 남자도 여자를 평가하고 여자도 남자를 평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그런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친목을 지향하고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노는' 인간들이 심하다. 그냥 일반인이 찡그린다면 이것들은 대놓고 기침을 콜록콜록 떠나가라하고 가래침도 뱉는다. '인간말종' 이란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다.)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라면, 둔감한게 아니라면 누구나 시선이나 말, 행동 또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대접과 대우, 지급되는 급여로 알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고치라고 주장하는 파업도 많고, 자신에게 저지른 부당한 갑질에 대한 폭로도 있고, 미투운동도 그 맥락이며, 심지어 당사자한테 그래야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식으로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묻지마 살인이나 길거리 시비 폭행 사건까지 모두 이러한 뿌리깊은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사회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더 쎄고, 강하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함부로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도 이래서 발생하고, 학교폭력도 마찬가지이며,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도 그렇고 심지어 국가간의 전쟁도 그렇다.
이렇게 큰 파장을 발생시키고 개인의 행복감마저 깎아먹는 이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소하다.' 생각할 수 있는 '무시, 멸시' 라는 감정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사람들은 아주 극히 일부만 모든 자를 긍정적으로 보고, 대다수는 속으로 자기가 보기 불쾌하다고 보는 사회적 약자에게 불편한 심기를 가지며, 아주 일부는 그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 말, 행동을 통하여 피해를 입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쓰나미는 가장 취약한 자들에게 바다속 폐플라스틱처럼 썩지앉고 가라앉아 묻지마 살인같은 범죄를 일으킨다.
그리고 대다수는 고때만 냄비처럼 끓다가 나몰라라 자기 일을 하고 살고 있다. 먹고 살만하고 그것이 개인이 바꾸기엔 힘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자기 마음아래로 가라앉히고, 마음밖으로 내치며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사회의 추운데서 지옥을 겪으며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이 남들이 하는 기본적인 것도 못하며 늙어죽는다.
반대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타고난 형질을 바탕으로 0.1~3초 내에 내리는 자기 기준의 부당한 판단으로 (근시안으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세뇌되면서 만들어지는 당장 필요한 쾌락 충족에 급급해하는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태의 오류투성이의 뇌로 : 더 웃긴건 남자가 좋아하는 이미지, 여자가 선호하는 느낌 등은 후천적 처세의 별다른 이변이 없는한 유전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음. 당사자는 사실 봉변당하는 건데 이런 차별과 소외에 떠밀려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이런 부당한 사회 때문에 그런 줄 모르고, 또 부당한 그들 다수가 모임으로 인한 쪽수에서 생성된 그들의 손과 권력에 의해 처벌되는 황당함까지 일어남...) 호감을 가지게 되는 사회적 태풍은, 그 반대편에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집집마다 놓여 반강제적으로 보는 막강한 영향력의 TV와 안 미치는 곳이 없는 인터넷 자본을 통해) 연예인, 정치인같은 사회적 리더를 만들고 떠밀어 앉혀 놓는다. 그래서 승리같은 막강한 힘을 가진 반사회적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권력과 힘, 돈이 가는 만큼 사회적 약자에겐 가혹한 칼바람이 든다. 당장 목숨줄이 달린 현실적인 돈문제에 비하면 마음의 상처는 차라리 애교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앞만 보고 그들의 그런 처지를 보고 또 비웃고 조롱하고 욕하고 침뱉는다.
이러한 일들은 한 개인의 힘으로 거부하거나 맞서지 못하고, 국가라는 곳의 구성원들, 그들 자신들이 이득과 각종 불이익(사회적 불호 포함)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그렇게 떠미는데 억지로 원치 않아도 정신차려보니 그자리에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룰대로 살기를 거부하면 노숙자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릴때 취약하고 정신차려보면 이미 상당히 나이먹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서 손도 못쓰는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런 쪽에 무지하고 운이 없어 사람을 잘못만나 가정이 파탄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모르고 당해서 피해자가 되고 그 잔인한 상황을 나몰라라 방치한다.
인간들은 왜 그럴까? 그건 사실 자본주의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모든 나라들이 겪는 문제이다. 자본주의란 개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조건, 능력과 운을 전혀 배려치않고 무식하게, 마치 짐승들과 같이 "무한 경쟁하고 약육강식해라." 라고 인간들을 정글에 던져놓은 상태와 같다. 거기서 인간들이 생각할 것은 오로지 생존이다. 그것을 위해 인성교육도 필요성이 적어지고 사람답게 살 것은 뒤로 내팽개쳐둘 수 밖에 없다.
정작 인생의 행복은 '사람답게 사는 것' 에서 나오는데, 자본주의를 함으로써, 더구나 한국이란 환경의 특수한 점들과 맞물려서(한국은 악플대선플의 비율이 9:1이다. 악플 9개에 선플 1개가 달린다. 일본은 4:1이고 네덜란드는 1:9이다. 한국인이 더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며 더 삶에 불만족하고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더 사람을 계급화 시키고, 줄세우고, 평가하고 차별하며, 자신들의 왜곡되고 획일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난도질 하고 있다.
어떻게 미디어에 나오는 획일화된 사람들, 길거리에서 보았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고 한 사람의 외양을 정육점 고기처럼 평가하고 판단하여 호불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자기는 좀 된다 생각한다. 때론 아닌 것들도 그따구로 행동한다. 상대보단 낫다고 착각하고, 자기는 그럴 권한이 있다고 착각한다. 권한이 없어도 그런다. 마치 악플쓸때 처럼. 또 자기가 더 우월하다 자위하기 위해. 뇌가 없는, 내로남불의 벌레들이다.) 인간들은 저마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사람을 사람으로 안보는 괴물이 하나씩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들어맞는 자들이 자기와 친해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이 되어버린다. 외모가 잘나서, 매력이 있어서, 가진게 많아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잘놀아서 등 인간만큼이나 이유가 많으나 그 방향은 한곳을 보고 있다. 그런데 맞춰서 또 끼면 뭐하겠는가. 애써 맞추어봤자 애초에 그딴 식으로 금그어놓고 사람 차별하는 쓰레기들의 부정적인 방향이 또 다른 것을 긁어부스럼하여 차별하겠지. 애초에 시선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뭐든 획일화 되는 것이 한국의 특성이다. 얼마나 차별과 왕따가 심하면 남의 시선에 맞추어 자기를 진심으로 변화시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그래서 다들 그러니까, 그런 사회환경에 젖어들어 자기도 알게모르게 그러고 있다. 역시 나도 어릴때부터 사회분위기에 젖어 반응하다가 어느새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제성을 바로 잡게 되었다.
'어릴때부터' 라는 것이 무서운게 뇌가 자본주의와 서열화에 맞추어 자라난다는 것이다. 시냅스가 그렇게 형성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길러지게 된다. 불합리한 제도임에도 그것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채 자라난다.
그렇게 한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쪽으로 눈이 돌아가면 모든게 불만이 생긴다. 만족이 없게 된다. 그래서 한국이 행복지수가 세계 꼴찌인 것이다. 정작 행복은 조건에 상관없이 개개인을 사람으로 인정하며, 자기도 사람으로 대접받고 온정을 나누며 '사람답게' 모두가 어우러지는데서 발생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생활' 을 받쳐주는데 기본적으로 돈이 든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는 '돈' 을 벌기 위해서 상당히 불합리한 방식을 쓴다. 개개인이 타고난 외모가 다르고 재주가 다른데 거의 전적으로 '운' 에 좌우되는 요소를 가지고 한꺼번에 부를 몰아주기도 하고, 박탈하여 거지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라는 환경에서 발휘되는 사람들의 눈과 뇌가 만들어내는 일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서울 아파트값일 것이다. 18 평의 아파트가 30 억이 넘어간다는 것은 분명히 기형적인 일이다. 합리적 이성으로 볼때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반대로 집이 없이 세들어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부자가 되고 가난한 것은 절대 그 사람의 도덕성, 노력, 성실성과는 관계가 없다. 거의, 하나도 없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희박하다. 만약에 된다면 TV방송에 나올 정도로 전국 5천만 국민 중에서 손가락에 꼽는다.
그 사람이 가난한 것은 단지 운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기득권적인 제도가 원하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고, 적절한 환경을 만나지 못하여 그것이 실력으로 개발되고 발휘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좋은 직장을 통과할 관문이 되는 기본 조건인 서울대 입학생의 60% 의 주소지가 강남구 대치동이다. 서울대생은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육에 돈을 쓸 수 있는 부모를 만날 운에 좌우된다는 뜻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당연히 죄가 아니니까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날 무능력하다고 욕하는 니들의 기존 잘못된 시스템에 개돼지처럼 젖어들고 세뇌된 니들의 뇌와 눈깔이 잘못된거지, 내가 잘못된게 아니야. 니들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고쳐서 새롭고 다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일부만의 세상이 아니라.)
니들이 지금 잘났다고 잘난척하지 마라고. 니들이 잘난게 아니라 사회가 잘못되어 니들을 떠받들고 있는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