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부당한 진화심리로 어떤 사람을 배척하고 눈총주고 혐오하고 무너뜨리는 사회적 신호를 주어 집밖에서도 행복감을 다운시키고, 결국에 집안에 몰아넣어 다른 일반적인 사람은 다 누리는 햇빛, 공기(분위기)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그 인간의 뇌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가족까지 피해를 입고.
과거는 그랬고, 현재도 그렇게 피해를 주어 행복감을 갉아먹고 있다. 자기가 당해서 기분 더러우면 남도 그럴 것을 알텐데. 알아서 그럴 수도 있고. 지가 당한걸 푸는 걸 수도 있고. 나는 그것때문에 외출까지 꺼렸었는데... 아직도 그런다. 인간 벌레 새끼들이. 년들이.
가족이 있든 말든 인상 찌푸리며 표정으로 악플을 쓰고 가고, 불쾌하다는 듯이 기침하고 가래침을 뱉는 쓰레기들도 있다. 물론 뭐 실제적으로 날 때리진 못한다. 그냥 옆에서 위협하고 주변 사람들 상처입게 할 뿐이다.
그것을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즉각적으로 보복하고 처리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쾌감이나 웃음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같이 있는 사람에게도 응어리 안남고 속시원하게 날리고 처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감정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희안해서 그렇게 처리한건 두고두고 응어리로 안남고, 오히려 스릴과 속시원함에 기분 좋았던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으로부터 "우리가 당하지 않았다." 고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함께 있으니까, 또 CCTV나 블박, 자연감시와 촬영 등 사회적인 문제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신경끄고 개가 짖었니하고 머릿속에서 그냥 놓아버리고 날려버리는 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나중에 또 생각나고 날 괴롭힌다. 함께 있던 사람들도 그렇게 기억되고 마음에 남을 수 있다. (물론 그것까지 본능적으로 계산하여 못된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습관처럼 했을 수도 있겠다. 전에 자기에게 있어 최고의 모욕이라 생각하고 다 끌어모아서 하는 새끼도 있었거든.) 물론 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안잊혀지고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은 인간 뇌의 메커니즘상 그렇게 즉각 보복하고 처리하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더라는 것이다.
예수도 말로는 왼뺨을 대라고 했지만 정작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아버지의 뜻이라 믿었던 체포때나 얌전했고 그 이전에는 바리새인과 싸우고 장사하던 비둘기 날리고 즉각적으로 보복을 했다. 그럼에도 모자라서 나중에 그 한짓에 대한 심판, 즉 댓가를 묻는다고 했고. 성경 전반에서 그 한 짓거리, 죄에 대해 보응하신다고 그런 식으로 저주하고 기대한 것이 줄줄이 흐른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고 진화되어 이렇게 생겨먹어서, 그게 최선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하는 자가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자가, 힘이 있는 자가. 하기전엔 누구나 마음속에서만 끓고 존재하는 상대적인 것인데, 어떤 식으로든 그게 힘이되고 심적으로라도 타격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행위가 될때부터 힘을 발휘한다. 그전엔 당하는 새끼들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힘을 발휘하여 현실적으로 복수하고 그것에 몰입하여 매진하고 타격을 끼쳐야 한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이번생 포기할 정도로. 그러면 더욱 좋다.
그리고 먹고사는 것까지 해결이 되는 전략이면 더더욱 좋겠지. 법에 저촉이 안되고. "차도살인" 하여. 예로부터 뱀은 남의 손을 빌려 꺼내는 것이라 했다.
인간의 구조기준상 산채로 사슴을 잡아먹는 사자보다도 더 비열하고 잔인한데,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가 인간이 그런 구조가 되고 상태가 된 인과와 법칙 때문이라 할지라도, 현재 인간의 생존과 청산을 위해 잘잘못을 따져서 사람으로 처리할 지니라. 그것이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