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주 안씨에 대해 두서 없이 몇 자 적어 놓았는데 뜬금 없는(?) 조회수가 좀 되더라구요.^^
아마도 관심들이 좀 있으신가 해서 어저께 창원 황씨 후손 분이 글 올리신거 보고 간략하게 또 몇 줄 끄적여 봅니다^^*)
창원 황씨(昌原黃氏)
창원 황씨 중에 기록이 잘 남아 있는 몇 몇 할배들을 간략하게 모아봅니다.
1. 가장 두드러지는 분은,
청주 한씨(淸州韓氏) 문정공파 19세 손 한준겸(韓浚謙, 1557~1627)과 혼인 하신 창원 황씨(女) 할매가 있습니다.
이 할매가 무려 2남 11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의 한 분이 바로 인조(仁祖) 임금의 왕비인 인렬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입니다.
종친 되시겠습니다.^^
2. 개국 공신(開國功臣) 황거정(黃居正)
조선 개국 당시 개국 공신 3등에 책록 되셨고 좌명 공신(佐命功臣) 3등에도 오르셨던 분입니다.
다만, 정도전이 살아 있을때 이숭인(李崇仁), 이종학(李種學) 등을 임금의 허락 없이 죽였다는 이유로 태종 11년(1411년)
관직을 빼앗기고 서인(庶人)으로 강등 되었답니다. 물론 몇 해지나서 복권 되긴 했지요.
개국 초기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셨던 할배입니다.
세조 ~ 성종 시절 무인으로 이름을 날린 할배입니다.
세조 때 발생한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하기 위해 도총사(都摠使)인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의 휘하 장수로 참전 하였습니다.
참전 당시 계급은 군관(軍官)이라고만 나오는데 아마 5품 정도의 벼슬이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출전 후 두달 정도 지난 시점, 어느 정도 전세가 관군에게 유리해졌을때 황사윤 할배가 세조 임금에게 전과 보고를 위해 한양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세조 임금이 전투 결과에 대해 약간의 불만이 있으셨는데 황사윤 할배가 아주 조리 있게 답변을 잘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조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서 즉시 황사윤 할배에게 무려 당상관(堂上官, 정3품)을 임명하고 이어서 내탕(內帑, 임금 개인의 보물창고)의 궁검(弓劍)을 내어서 황사윤 할배에게 스스로 골라 잡아 차고 가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