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는 왜 매그니토와 마지막까지 같은 편에 서지 않았을까? 자비에는 매그니토와 같은 역경을 겪지 않아서 너무 순진했던걸까? 하지만 그건 자비에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자비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 사람이 경험했던 과거와 현재의 일들을 똑같이 느낄 수 있다. 매그니토의 처참했던 어린시절을 여과없이 경험하고, 모든 인간들의 더러운 마음을 매일같이 읽어내는 자비에에게 순진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매그니토에게는 없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아니 보통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복수 만이 있었고,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친구인 자비에가 깃든 케빈의 머리에 동전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복수라는 하나의 목적에만 집착하는 매그니토에게 오히려, 순진하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자비에는 왜 매그니토와 함께 가지 않았을까? 자비에는 알았던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겪었던 것을 함께 겪어보면서,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매그니토가 겪은 상처들이 사람에 의한 것이지만, 그 상처또한 사람만이 해결 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매그니토에게는 상처 밖에 없었다. 매그니토에게는 병만 있었다면, 자비에에게는 병과 약이 함께 있었다. 악은 순진했고, 선은 현명했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이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기 전, 무엇이 선과 악의 차이를 갈라 놓았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힘은 아니었다. 힘은 매그니토에게 있었지만 자비에에게는 없었다. 자비에에게는 있고, 매그니토에게는 없는 것. 나는 이것을 공감력이라고 하고 싶다. 다른사람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는 능력. 자비에에게는 이것이 풍부했고, 매그니토에게는 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세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존경하고 선하다고 칭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력이 풍부하다. 그들은 부유한 도심속에 살면서도 아프리카 어린소녀의 고통을 공감 할 수 있었고, 지도자 층에 있으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공감 할 수 있었다. 악한 사람에게는 이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이코패스가 그 극단적인 예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 할 수 없기에 서슴없이 흉기를 들이댄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조차 개개인의 성향에 돌리는 다원화 사회에서 선과 악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이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분명한 선과 악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선과 악이 갈라지는 곳, 그곳에는 공감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