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서울대 경쟁력 119위와 국민 사기극
게시물ID : sisa_218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머씨발
추천 : 12/2
조회수 : 39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5/15 12:36:39


2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대학을 만들고 싶은가? 

2004년 11월 5일 더 타임스 고등교육부록(www.thes.co.uk)에 따르면 한국대학은 서울대 등 3개 대학만이 200위권 안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119위이며 KAIST(한국과학기술원)이 160위, 포항공대가 163위에 올랐다. 2004년 10월 12일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하면 중국 상하이 자오퉁(上海交通) 대학에서 매긴 세계 대학의 순위에 의하면 한국에서 최고라는 서울대는 고작 153위다. 매년 이런 식의 비슷한 기사들이 나오고 기나긴 가뭄에 콩 나듯 서울대가 어떤 분야에서 35위라는 괄목할만한 평가도 들려 오지만 거의 매년 한국의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는 세계에서 100위권 밖에 있다.

한데 이 순위를 가지고 대한민국에서는 언론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국민 사기극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전교조를 위시한 소위 의식 있는 교사들은 교육부의 입시위주의 정책 때문에 창의력 있는 교육이 안되고 있다고 성토한다.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일선 학교 선생님들의 창의적 지도 교육 부재를 비난하고 동시에 공교육의 붕괴를 가져온 원인이 사교육이므로 이들을 규제하는 근거로 재빠르게 이용한다. 돈 많은 학부모들은 학부모들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도 이런 지경인데 기타 대학은 일러 무엇하리오? "하면서 이렇게 수준도 낮은 대한민국의 대학교에 내 자식을 맡기기보다는 비싼 외화를 들여서라도 외국의 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도록 조기 유학을 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모셔 놓았다가 불쑥 꺼내 놓기도 한다. 심지어 산업체에서는 세계 100위권에나 겨우 들어가는 학교 졸업생들을 가져다 어디다가 쓰느냐는 식의 푸념까지 난무한다. 이렇게 누구든지 이 순위발표를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휘두르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목적을 위해 가히 "금(金)나와라 뚝딱! 은(銀) 나와라 뚝딱!"이다. 

여하튼 이 요란스런 국민 사기극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이 모든 원인이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이며 창의력을 말살하는 주입식 교육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이런 평가를 접하게 될 때마다 혼자 어이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지만 심지어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자질론까지 들먹이면서 급기야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하는 호재로 써먹기도 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이다. 
이런 상황의 전개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너무나도 한심하고 무책임하며 비겁한 행태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 인기가요의 순위발표에도 한 주간 음반판매량이나 인터넷 다운로드 숫자 같은 기준들이 있다. 하면 먼저 대학의 순위를 매긴 기준들을 조금만 살펴 보라. 전 세계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들은 주로 다음과 같다. 그 대학 도서관에 있는 장서(藏書)의 숫자, 교수 1인당 학생의 숫자, 전체 대학생 중에서 장학금의 수혜를 받는 학생들의 비율, 재정 자립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런 것이 그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창의력이나 질적인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들인가? 그렇다면 "나는 강남 타워 팰리스에 사는 학생이고 자본이 풍부한 집안에 살기 때문에 가난한 지역에 사는 여타 학생들보다 질적으로 우수하고 창의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사실 이런 기준으로 매겨진 대한민국 제 1의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가 세계 랭킹이 153 위 또는 119위라는 것은 한국의 정권 담당자였던 역대 대통령이나 국가 예산을 배정할 정치인들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관심이나 능력이 세계 지도자들 중에서 겨우 153위 또는 119위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더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이런 기준으로 우수한 등급을 받으려고 개선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책 당국자들의 예산 지원으로 쉽게 해결하면 달성되는 사안들에 불과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랭킹이 소위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까지 흘러갔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국립 서울대의 세계 랭킹이 119 위라면 그것이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육성책과 지원이 세계 119위에 불과하다는 바로미터이지 어떻게 그것이 학생들의 창의성에 귀착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중국의 베이징 대, 칭화대(淸華大)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은 1998년 5월 베이징대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주창된 ‘985 공정’에 따라 칭화대·베이징대 등 10개 최우수 대학을 집중 육성했기 때문이지 그 대학의 학생들의 창의성 운운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필자가 중국에 직접 가서 들은 바로는 중국의 칭화대는 한국의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도(道) 단위에서도 겨우 한 명 정도만이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가히 살인적이라 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창의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양적인 기준들 이외에도 질적인 기준의 척도로 중요시되는 해당 대학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평가해 보자. SCI 기준으로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 논문 실적이 그렇게 낮지도 않지만 설사 이것이 낮다고 해당 대학교의 학생들의 질적 수준을 평하는 것은 부모들의 무능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서울대 교수들의 무능이 서울대생들의 무능이 아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서울대에서도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주로 세계 유수 대학의 석·박사 과정에서 길러진다.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 적고 무능하다면 사실은 이들에게 석·박사 학위를 준 세계 유명 대학들이 무능하고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고등학교가 길러내는 것은 00 대학교 신입생들이지 00 대학교 교수들이 아니다. 이런 교수들의 무능과 나태에는 한국의 입시제도가 책임질 이유가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 등의 유명 대학에서 석사나 박사라는 학위 인정서를 잘못 발급했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이런 얼간이들에게 엉터리 자격증을 발급한 미국 영국 등의 유명 대학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이 모든 화살이 느닷없이 한국의 일선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자질문제나 입시위주의 교육문제로 날아와 꽂힌다. 이게 도대체 이치에나 맞는 일인가? 이게 거대한 국민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로 국립 서울대생들의 창의력이나 질적 수준이 낮아서 그것을 빌미로 한국의 입시제도의 개혁을 위한 데이터로 삼을 양이면 오히려 세계 대학생 수학 올림피아드에서의 입상 실적 등으로 평가해야만 정당하다. 그런데 중고생 올림피아드는 있는데 왜 세계 대학생 수학 올림피아드는 없는가? 여기에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유명대학들의 지식 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영원히 유지하려는 지식 카르텔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올림피아드는 세계적인 랭킹이 매겨질 때 그 수상자의 출신 고등학교로 매겨지지 않고 국가로 발표되지만 대학교는 국가 뒤에 숨을 수 없고 그 대학 자체의 브랜드를 거는 모험을 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세계의 유명대학들도 전 세계의 교육 시장을 상대로 치열한 마케팅을 해야 하는 이익단체이기도 하다.

하버드, 케임브리지, 예일, MIT 이런 대학교 학생들이 전 세계 대학생과 함께 올림피아드에 출전해서 세계 수위권의 성적을 거두어 봐야 별 실익이 없다. 즉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세계 최고라는 대학 이미지에 막대한 손실만 초래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지식의 학술적인 교류와 공유가 중요하지 올림피아드 대회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것이라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되묻고 싶다. "그러면 매년 대학의 등급을 매겨서 발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 분야별 등급을 발표할 양이면 세계 수학(또는 과학) 올림피아드를 통해서 참다운 지식을 겨뤄보는 것이 왜 의미가 없냐고 묻고 싶다"

대학교의 순위와 그 학교 대학생들의 창의력 순위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부모 세대에 가까운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나 정부의 대학지원에 대한 무성의(無誠意)나 무능(無能)을 기준으로 선정된 세계 대학 랭킹을 기준으로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창의력을 말살시키고 있으며 그러므로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가져가는 것은 과연 정당하고 타당한가?

이런 사기극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에는 해외 유학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울대 출신 해외 유학파들의 지적(知的) 카르텔도 도사리고 있다. 해외 유학 석·박사들의 침묵의 카르텔로 얻는 독점적 이익(Privilege)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첨예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 비 유학파 서울대생들에 대한 우월적 지위의 확보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의 독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자신들은 세계 100위권의 대학에서 수학한 것이 아니라 세계 10 위권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우리가 너희들보다 질적으로 훨씬 우수하다. 그러므로 서울대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교수(Professors) 자리와 각종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 요직에 들어가서 권력을 획득하고 발휘할 수 있는 무언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보아라, 우리는 주입식 암기교육 방식이 아닌 창의성을 발현시켜주는 세계의 유명 대학교에서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아니 창의력이 왕성하다는 공인 인증서를 받아 왔다. 우리는 너희들보다 우수할 수밖에 없다" 한데 이렇게 창의성이 왕성한 대학교에서 지적 인정서를 받아온 사람들이 장악한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연구 실적이 너무 적게 나오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는다. 혹시 그 유명 대학교에서 창의성을 다 길러 주지 못한 채 가짜 인정서만 발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야 정상이다.

둘째 해외 유학파들이 서울대 교수직의 대부분을 장악한 후 이런 어처구니없는 랭킹을 개선하여야 한다는 빌미로 정부 예산을 배정 받는 구실로 삼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사실 일본 도쿄대의 경우는 도쿄대를 나오고도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교수로 채용하고 해외 유학파들은 오히려 그 실력을 미심쩍게 보면서 동경대 교수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자국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서구 사회에 대한 지적(知的)인 자신감이 갖추어져 있다. 한데 서울대는 서울대 출신의 토종 석·박사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석·박사들을 중용하고 있다.

이것은 좋게 평가하자면 동경대보다는 서울대학교가 덜 관료주의화 되어 있고 훨씬 개방적인 체제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이는 서구 사회에 대한 지적인 열등감에서 오는 지식 사대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지식 사대주의가 얼마나 만연해져 있는가는 과학 분야나 사회과학 분야가 아닌 인문학 분야에 까지 깊숙히 뿌리 박혀 있음을 발견할 때다. 심지어 동양학을 한다는 김용옥이 동양학의 본 고장도 아닌 서구에서 학위를 따와서는 노장 사상을 말하면서 심심찮게 헤겔을 들먹이거나 한때 지식인 사회에서 듣기에도 이상한 똘레랑스란 말이 순식간에 유행했던 현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만약 서울대가 세계 5위-10위권 안으로 평가받는다면 해외파들이 서울대 교수직을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과거처럼 손쉽게 권력(Power)을 획득하기는 힘들 것은 자명하다. 

돌이켜 보면 서울대학교의 문호는 한국에서 학벌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금력의 표상인 재벌들이나 무소불위의 권력가들에게도 특별입학이라는 예외를 열어 준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칭 재벌가라는 삼성이나 현대 또는 대우 패밀리들에게도 거액의 기부를 빌미로 특별 입학을 예외로 인정했다거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의 여러 최고 권력가들의 자제들에게도 권력을 이유로 특별입학을 허용한 흔적은 안 보인다. 위에 열거한 패밀리들의 자제들만 해도 대학 응시자들이 30명은 족히 넘게 추산되지만 현대의 정몽준이나 노태우 아들 중 단 한 명만이 국립서울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했을 뿐이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제 1의 기업인 삼성의 창립자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못한 일이 3 개 있으니 그 중 하나가 조미료 미풍 사업으로 미원(味元)을 이기지 못한 것과 "천하의 이병철 회장도 자식 농사만은 마음대로 안되더라"는 말로 대변되는 교육문제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이 땅의 수많은 돈 없고 권력에 연줄이 없는 가난한 학부모들의 작은 위안거리로 회자되었을 정도였을까를 생각해 보라. 이 정도로 서울대학교는 금력과 권력의 세찬 바람 앞에서도 꿋꿋이 학생 선발과정에서의 공정성을 기하는 데에는 충실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공정성이 오늘날의 과도한 사교육비로 인하여 형식적인 공정성을 담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것이 서구 사회의 재력가들의 합법적인 통로인 기부입학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부정입학의 수준은 아니었다.

한국같이 돈과 권력 만능의 사회에서 제 1 국립대학교입학에서 그 공정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잘 지켜왔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반세기 이상 서울대를 이끌어 온 교수진들의 양심의 표상이며 큰 노력의 성과로서 진정으로 칭찬 받을만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의 한국의 정책담당자들이 국립 서울대학교를 얼마나 푸대접해왔느냐는 서울대 학부과정에 국립대학교에서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행정학과"가 없다는 점에서도 잘 확인된다.

다른 대학교들보다 국가로부터 세금 등의 지원을 많이 받는 국립대학교의 1 차적 목표는 조국에 봉사할 직업공무원을 많이 양성해 내는 것도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국립 서울대학교에 행정학과가 없다는 것은 한국 교육계의 아이러니 중의 하나다. 서구 유럽에서 우수한 대학 제도를 갖고 있다는 프랑스조차도 국립대는 고급 공무원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1 차적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대한민국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아니었다. 이를 탐문해보니 한국 사회에서 대학 설립 초기에 육군 사관학교 출신의 인사들이 정권을 오랫동안 잡았던 역사 때문이라 한다. 육군 사관생도 400 명이 졸업 할 때에 그 절반에 해당하는 200 명에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야만 부여되었던 고급 공무원 자격을 주었던 것과 맞물려 그 소임을 거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육군사관생도 행정관 임관제도는 노태우 대통령 때 폐지되었다.

이 이외에도 한국 정부가 서울 대학교에 지원한 정도와 열성은 비슷한 경제 규모의 외국에 비교해서 턱없이 작다고 평가된다. 아니 이것은 유독 국립 서울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독재정권과 대항하며 그 역사를 형성해 왔던 한국 내의 모든 대학들이 감당해야 했던 비극적인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유수 대학들이 119위(서울대) 160위(KAIST) 163 위(포항공대) 등의 창피한 순위에 머무르고 사학명문이라는 연고대는 더 비참한 순위에 자리매김 당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서울대에 지원되는 예산은 대학교 평가에서 세계 1위라고 떵떵대는 하버드 대학교의 1/100 수준밖에 안 된다. 즉 이런 식의 물리적인 예산으로만 따져보자면 서울대의 세계 100위권 평가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하다. 어쩌면 전 세계의 지식 시장이 대부분 영어를 매개축(軸)으로 하여 자전(自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언어의 섬인 대한민국의 국립대학교 중 하나가 세계에서 100위권이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대단히 선전하고 있다고 봐야 더 냉정한 분석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울대가 세계 153위 또는 119위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울대의 경쟁력을 50 위권 안으로 올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반지성주의적인 논리를 펴는 데 사용하는 것을 목도하게 될 때 우리는 또 한번 거대한 국민 사기극에 전율할 수밖에 없다.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분개하는 서울대학교의 세계 경쟁력 119위를 50위 권으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어이없게도 세계 50위권으로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도 쉽다.

첫째, 외형적으로 학부생 수를 절반 가까이 줄여 보자. 그러면 교수 1 인당 학생 수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질 것이다. 물론 학생 수를 그대로 두고 반대방향으로 교수를 2 배로 늘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 방안은 국가 재정의 획기적인 지원이 있지 않은 한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학생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 또한 이론상으로는 쉽게 보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녹녹치 않다. 국립 서울대학교의 정원이 이렇게 늘어난 것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과도한 평등주의 이념이 한국의 교육현실과 타협하여 뿌리 깊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의 119 위가 진정으로 못마땅하다면 학부생 수부터 확연히 줄이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진정으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향해가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도 크다.

둘째, 재정 자립도 부분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못 받는다면 정부에서 더 많은 재정지원이 따라야만 한다. 사실 한국 정부가 국립대학교에 지원하는 재정은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의 나라들이 그 나라의 국립대학교에 지원하는 규모에 비하면 너무나 열악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내에서 서울대에 대한 재정 지원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만 말할 뿐 실제로 세계의 대학들과 무한경쟁을 하면서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다른 나라의 비슷한 대학들과의 비교 평가를 하지 않는다. 이러면서 한국에서 1 위이니 세계에 나가서도 당연히 가령 30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해서 서울대에 대한 재정지원이 얼마나 열악한가는 대만의 국립대학교에 있는 장서(藏書)의 수가 1990년대 초기 기준으로 서울대의 2배가 아니라 무려 4배 이상이라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동시에 서울대 졸업생들의 협조를 구해 기부금을 거두는 등의 자체적 기금 마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故 김택수 회장이 기부한 국산(菊山) 도서관 같은 시설물도 충원하고 대학 발전기금을 충분히 마련해서 교수들의 연구기금도 마련하고 경제력이 약한 집안의 학생들에게 장학혜택도 더 늘여 가야 한다. 국립대를 제대로 육성해야 할 사상이나 철학도 안 가진 정부를 두고 재정지원이 안 된다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연세대의 송자 총장처럼 서울대 대학 발전기금을 마련하는 식의 기금 마케팅 노력을 해야 한다. 

세째, 국문학과와 국사학과 등 몇몇 과를 제외하고 정치외교학과나 의과, 그외 학과 강의에 영어수업을 도입해보자.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도 이미 행해지고 있으므로 서울대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아니 이 방안은 서울대만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대학에서 시도해야 할 방안으로 보인다. 
시행 초기 몇 년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교수들만 제대로 한다면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녹음기를 사용해서라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서울대가 영어로만 교육하고 평가받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지금의 현 상태로도 세계의 대학 랭킹의 급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11월 5일 영국의 더 타임즈에서 발표한 순위에서 아시아권의 "도쿄대 12위, 중국의 베이징대(17위), 인도공대(39위), 칭화대(62위), 홍콩대 39위, 인도 공대 41위, 싱가포르 난양대 50위, 대만대 102위"를 분석해 보면 100위권에 드는 대학 중에서 일본의 도쿄대나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를 제외하면 홍콩, 인도, 싱가포르, 대만 등 그 나라의 일반 국민들조차도 영어를 능수 능란하게 구사하는 문화권 속에 있는 대학교들인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실(fact)이 아니다. 이 중 일본의 동경대는 한국의 서울대와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재정지원이 이루어지는 나라임과 동시에 서구에서 영어로 출판된 책이 단 하루만에 일본에서 번역되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역출판이 강한 나라다. 

게다가 국제 무대에 나가서 국익을 대변해야 하는 한국의 장차관급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국제 회의나 협상 테이블에서 그 협상력 자체도 약하거니와 커뮤니케이션조차 제대로 안 되는 수준이라서 국익이 심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혹평이 난무해 온 것은 결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할 때 대학교에서 세계어에 능숙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은 한국의 지식 사회나 기업이나 총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보통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영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서울대 교수들이 불편하다는 속마음은 감쳐두고 다른 명분을 대면서 영어 전용 강의 방식을 반대할 것으로 보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런 불편은 교수들이 기꺼이 양보해야 할 문제로 본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실시된다면 영어로 된 논문도 훨씬 많이 나올 것이고 장기적으로 외국의 유명 학회지나 잡지에 실릴 한국 논문들도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논문의 양과 질적인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기타 여태까지 나와있는 대학교의 특성화나 대학원 중심의 대학 등도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필자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방안도 반드시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대학들이 수요자인 학생들로부터 외면 받아 유학생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2004 년 8월까지 유학 및 연수생이 28만 여명으로 지난 해에 비해 20여%나 늘었다. 그에 따른 외화 송금 규모도 2001년도의 두 배인 3억 달러를 넘어서 심각한 국부유출 문제로까지 점화되고 있다.

사실 몇몇 특수한 연구 기관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외국에서 배워오는 전공의 특수성이나 창의력 등이 아니라 그들이 국내의 대학교 졸업생들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이런 실태의 정부당성 논의는 제껴두고라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 수준을 올릴 생각은 않고 오히려 서울대 폐지론을 성급하게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반지성주의 문화가 판치는 상황에서 나온 엉뚱하고도 비정상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과도한 유학열풍에서 오는 심각한 국부유출을 줄이고 한국 대학교의 세계 경쟁력도 키우려면 오히려 서울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의 많은 대학들을 세계 유수의 랭킹에 들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주장은 학벌주의자라고 몰아 부치면서 성급하게 국공립대학교의 통폐합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서울대를 양적으로 확장시켜 거대한 공룡으로 만들 위험성이 다분하기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또한 극단적인 서울대 폐지론의 현실화는 오히려 200위권에도 못드는 대학을 만들어 놓고 자족하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으니 이것 또한 거대한 국민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