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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와 판타지
게시물ID : history_16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29
조회수 : 1704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4/07/08 13:35:01

기원전 8천년 경 중석기 시대~ 기원전 4천년 경 신석기 시대 한민족의 대환국은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서로는 수메르문명이라 불리워 지는 수밀이국이 조공을 바치며 충성을 다하였고 
동으로는 한민족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죠. 중국의 황제헌원은 충성을 다하며 복속했습니다. 

기원전 4천년경 ~ 기원 전 3세기 한민족의 단군조선은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였습니다.
북으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시베리아를 통치하였고 은왕조와 주왕조는 단군조선의 번국이었습니다. 

기원 전 후~ 기원후 7세기 한민족의 고구려와 백제는 동아시아를 지배하였습니다.
대고구려는 북으로는 몽골에서 서로는 지금의 북경 지역인 난하까지 지배하였고 
대백제는 서로는 요서백제와(문득 백제의 요서와 고구려의 난하가 겹치는듯 하지만 디테일은 생략합니다)
산동지방, 양자강 하구지역을 남으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동으로는 일본열도를 지배하였습니다.

기원 후 8세기~ 기원 후 10세기 한민족은 만주전부와 한반도를 지배하였습니다.
대발해국은 북으로는 흑룡강에서 부터 서로는 요동지방을 지배하였으며
신라는 해상왕국을 건설하여 대중국 무역로를 장악하였습니다.

기원 후 10세기~ 15세기 한민족은 한반도와 만주 일부를 지배하였습니다.
고려국은 대황제국으로 송나라와 요나라 모두 두려워하였으며 
윤관은 북벌을 통해 만주지역을 휩쓸었습니다. 고려의 자비심이 없었다면
금나라는 애초 존재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하며 한민족은 몰락했습니다.
혹자는 위화도 회군이 고려시대까지 중국을 지배한 한민족이 (전촉의 왕건이 사실 고려의 왕건이고
중국의 개봉부가 고려의 개성이라고도 하고..) 한반도로 이주한 사건이라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은
잠시 잊더라도 분명한 것은 조선시대는 굴욕적인 사대를 하며 500년을 보냈고 
요망한 김부식의 망령에 사로잡힌 유교가 찬란한 역사를 사대와 굴종의 역사로 체계적으로 조작했습니다.
심지어 조선은 야만족에 팬티만 입고 다니는 해적에 불과한 왜구에게 
결국 나라가 망했습니다.....

20세기 한민족은 한반도 조차 분단되어 버리고 
해방되었음에도 왜구에게 정신적으로 정복당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2세대 3세대 전 아버지에 할아버지 시절에 유행하던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뭔 놈의 학자들이 약을 먹었는지 21세기가 되었음에도 
당연히 얼굴도 모르고 만나 봤을 턱도 없는 이들의 학문을 단체로 추종? 하며 
불굴의 정신으로 꿋꿋히 식민사학의 명맥을 이어가는 미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정체의 역사가 아니라 
퇴보와 몰락의 역사를 걸어 왔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동아시아에 또 현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쿵푸의 역사가 그러하죠 

한민족의 역사와 같이 중국 쿵푸의 역사 역시 
고대에서 현대로 올수록 영광된 과거에서 점차 퇴보하며 몰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 유투브를 보면 쿵푸 고수라는 것들이 킥봉식 선수에게 쳐 발리기나 하고
케이원에 출전 조차 못하는 보여주기 무술이란 조롱을 받는 비참한 처지지만 
예전에는 찬란한 역사를 간직하습니다 

가깝게 청나라 시절 쿵푸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최고의 무술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황비홍과 엽문은 현란한 발놀림과 정권으로 
서양오랑케와 일본군인이 제 아무리 그들 권투니 레스링이니 
유도니 가라데를 가져와 덤벼도 가볍게 박살내던 시절아었죠

좀더 과거인 명나라 말기에는 황비홍과는 쨉도 안되는 
동방불패가 있었습니다.  
맨손으로 조총 총알을 잡고 바늘로 경맥을 뚫는 기술에 비하면 
힘겹게 투닥거리며 손발을 놀리는 황비홍의 쿵푸는 퇴보한 것이죠. 

좀더 과거인 명나라 초기로 가면
동방불패 역시 구양진경을 익혀 일당백으로 8대문파를 평정한 장무기에 비하면. 
고작 고수 몇명에게 디지는 동방불패도 퇴보한 수준이었으며 

명초의 장무기도 그의 스승인 장삼풍조차
원나라시절의 고수였지만 
원나라 초기에는 장삼품도 양과나 곽양에게 어린애 취급을 당했습니다.  

원초 남송 말기 시절 강룡십팔장으로 몽골군을 쳐부순 위대한 곽정은 
북송 시절 산을 부수는 경지에 이르렀던 교봉의 강룡십팔장과 비교하면
완전한 강룡십팔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여타 무공이 모두 그러한데 동방불패 시절 위력적인 
흡성대법이 고작 북송 초기 시절 북명신공에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지끄러기만 남아 전해진게 그정도라는 점이 그러하죠.  
 
오대십국 시절 독고구패라는 인물은 
검이 곧 대량살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그가 가지고 놀다 버린 현철검은 후대에 
절세 명검인 의천검과 도룡도가 되었습니다. 
 
무공은 자고로 고대로 갈수도록 점점 더 고강했고
후대로 갈수록 점차 퇴보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는 다른 기록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당나라 시절  당나라 삼장의 서역여행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은 이미 하늘도 날고 분신술을 사용하며 

더 나아가 주나라 시대를 기록한 봉신방에 따르면 
당시 무공 익힌 이들의 일상은 사실상 신의 경지입니다.


정리하여 보면 

중국 쿵푸의 역사는 먼 옛날 신선 또는 신의 경지에 이르는
가공한 위력을 가진 위대한 무술이었으나 

시대를 지날 수록 점차 퇴보하여 현대에 이르면
킥복싱에도 지고, 태권도에도 발리며

보여주기 무술이란 비아냥을 듣는 안타까운 처지가 된 것이죠.


왜? 쿵푸가 고대로 갈 수록 신의 경지에 가깝게 되고 
현대에 가까워 질 수록 인간에 가깝게 되는지에 대한 미스테리는 

일반인들이 무식하여 단순하게  

[먼 과거 일 수록 기록이 적어 대충 애매한 기록에 끼워맞춰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고 
최근의 사건일 수록 기록도 많고 체감하기도 쉬우니 구라치기 어려워서] 

그런것은 결코! 아니고

진짜 이유는  단 한가지 때문입니다.

바로 고대부터 전해진 무공 비급이 소실되었기 때문이죠 

구음진경, 구양진경, 역근경, 북명신공, 규화보전 등등 

만주족이 한인을 탄압하기 위해 청나라 시절 체계적으로 말살한 서적들이고 
청나라가 무림종사인 소림사를 불태우며 결정적으로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악랄한 일제가 무려 근대시기에 한 국가의 역사서를 모두 불태우고 
말살하여 역사 전체를 송두리채 바꾼 어마어마한 사건과 동일하죠
(고작 죽간으로 책을 만들던 진시황 시절 진시황도 분서갱유로 
유교서적을 말살하고자 하였지만 성공 못하였는데. 
출판기술이 발달하고 종이도 넘치는 무려 근대에 책을 모두 소각했다니
일제의 엄청난 능력이 가늠조차 안되지만 역시 디테일은 생략합니다. )

한민족의 역사나 중국 쿵푸의 역사 모두 
고대에 찬란하고 위대한 시절이 있었지만 
시대를 지날 수록 몰락하고 퇴보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사례로 

모두 악의적인 조작과 말살정책으로  
현대를 비참하게 보내게 된 불행한 사례가 아닌가합니다.

행여 위에 언급한 쿵푸의 역사에 대해 읽어보시고 

장난하냐 인용한 내용은 역사가 아니라  

죄다 소설 작가인 김용이 현대에 만든 창작물에 불과한게 아니냐 
반문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세뇌되어 찌들어 버린 그놈의 더러운 식민사관부터 
우선 고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PS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것을 상실하고 심적으로 혼란 스러웠던 유럽과 
국공내전과 양안 갈등으로 불안했던 중국에서 
1950년대를 전후로 유럽은 북유럽 신화와 중세기사도 문학을 모티브로 한 판타지 장르가 
동아시아에는 역사와 쿵푸와 의협물을 모티브로 한 무협이란 장르가 탄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라는 격동의 시절을 거치며 
반일과 음모론,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유사역사학 장르가 탄생했죠

중심에 있는 에드워드 돌킨의 소설, 김용의 소설, 한단고기 등은 
지금도 다양한 유사장르를 꾸준히 양산하며 많은 이들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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