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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르VrLr님에 대한 비판입니다:)
게시물ID : phil_168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elloWorld7
추천 : 0
조회수 : 87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9/01/15 23:13:04


이 게시물은 해당 링크에 있는 LI르VrLr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http://todayhumor.com/?phil_16835



 우선 LI르VrL님의 댓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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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르VrLr(2019-01-15 17:32:55)(가입:2015-07-17 방문:450)121.189.***.124추천 0
19세기에 시작된 실용주의는 20세기에도 다른 철학 사조와 더불어 계속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과학 지식의 발전은 철학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은 미국에서도 널리 전파되었다.
한편, 유럽에서 실존주의와 현상학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이들 사조가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관념론에 대한 거부  20세기에도 실용주의는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스페인 출신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티야나는 이 시기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관념론을 철저하게 반대하였고, 모두가 자명하다고 인정하는 가치관으로서의 상식을 거부하였다.
그는 어떤 것이든 지식으로서 질서가 확고해 진다면, 어떤 지식도 가능해 보이지 않게되며,
결론적으로 회의주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에 믿는 것을 "동물적인 믿음"이라고 불렀다.
산타야나는 《회의주의와 동물적 믿음》에서 지식은 이성의 결과가 아니라
행동하라는 명령이 요구되고 세계에 성공적인 개입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주의에 입각하여 토대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설명은 과학의 몫이며 행동의 의미와 가치가 철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과정 철학
과정 철학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찰스 하츠혼과 같은 사람들이 주창한 것으로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을 수용하였다.
과정 철학의 핵심 신념은 사건과 과정이 존재론의 주된 범주라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그간의 철학에서 상정하였던 고정 불변하는 세계는 실재가 아니며 "존재의 실상은 활동하는 동안에만 있고,
활동이 끝나면 소멸한다"는 생성론을 주장했다.
그는《관념의 모험》에서 결정론에 근간한 법칙주의적 역사관을 거부하고
역사 역시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는 "합생"(concresences)의 결과라고 보았다.

미국철학
20세기 중반에 들어 미국 철학은 분석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분석 철학은 유럽의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란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진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데이비드 흄과 에른스트 마흐를 계승하였다고 여겼다.[
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동조하였고
과학적 언어 분석이나 기호논리학은 단지 지식을 얻는 하나의 통로가 아니라
철학적 명제의 진위나 의미의 유무를 밝히는 주요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1930년대 나치의 대두로 논리실증주의를 주장하던 빈학파 대부분이 국외로 망명하게 되면서 빈학파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때 미국으로 이민한 루돌프 카르나프가 분석 철학을 미국에 소개하였다.
[57]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논리실증주의를 배격하면서도 명징한 지식을 추구하고
세계를 이해하는데 철학과 과학이 어깨를 맞대고 나갈 수 있다는 관점을 공유하였다.
콰인은 〈경험주의의 두 교리〉에서 논리실증주의를 공격하였다.
그는 의미 있는 명제란 종합명제와 분석명제 뿐이라는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을
경험주의에 대한 교조적 태도라고 비판하고 이들이 환원론에 빠져있다고 비판하였다.
콰인은 또한 번역의 불확정성을 주장하며 "gavagai"의 예를 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 관찰할 수 있는 언어 성향의 총화와 일치하는 여러 가지 다른 번역을 할 수 있는데,
이 때 어느 번역이 올바른 번역이냐고 묻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콰인의 제자인 솔 크립키는 분석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크립키는 양상 논리와 직관 논리를 구분하는 크립키 의미론을 주장하였고,
1970년대에 행해진 언어 철학 강의를 모아 《이름과 필연을 발간하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언어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크립키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은 정석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머스 쿤은 과학 철학과 과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로 그의 대표작 《과학 혁명의 구조》는
패러다임의 개념을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은 지식 사회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지고 있다.
댓글 2개 ▲
LI르VrLr(2019-01-15 17:37:50)(가입:2015-07-17 방문:450)121.189.***.124추천 0
20세기 말에는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힐러리 퍼트넘과 리처드 로티가 주도하였다.
로티는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철학, 그리고 사회적 희망》의 저자로 유명하다. 힐러리 퍼트넘은
수학에서의 유사 경험론(quasi-empiricism in mathematics), 통 속의 뇌 사고 실험에 대한 도전,
그리고 심리 철학, 언어 철학, 과학 철학에 대한 저술로 잘 알려져 있다.
LI르VrLr(2019-01-15 17:54:36)(가입:2015-07-17 방문:450)121.189.***.12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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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부터는 저의 답변입니다.






본인의 말은 없고 다른 글 복붙만 하셨네요. 피곤하신가 봅니다. 자료만 몇개 툭툭 던지고 자신이 무엇에 대한 어떤 주장을 하고자 하는것인지는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중에 가서 제가 니르바나님의 생각을 일부러 제게 유리하게 곡해했다고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하신 것들은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와 산타야나, 과정철학, 콰인과 크립키, 과학철학 등인데요. 저는 니르바나님이 하신 말 "금시대의 주류 철학은 오히려 양자 역학의 등장이후 활발하게 탐구되는 자연과학과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융합론입니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하며 예시나 사례를 들어달라 하였지요. 그리고 소개해주신 자료는 전부 그에 대한 답변이구요.우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산타야나'와 '과정철학'말고는 니르바나님께서 말씀하신 철학자 및 분야 중에 '자연과학과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융합을 시도했다'고 할만한 사례가 전혀 없습니다(산타야나의 경우 제가 잘 모르는 철학자라 예외로 한 것이지만, 소개해주신 내용만 보면 딱히 적절한 사례라고 볼 수 없으며 사례로 적절할 만큼 산타야나가 현대 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는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입장에 가까우며 과학철학은 과학(특히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입니다. 철학에 과학이란 단어가 붙으니 과학적 지식으로 형이상학을 정당화하는 분야인 줄 아셨나요?

쿤의 패러다임론 역시 과학과 존재론 및 형이상학의 융합에 관해 말하려던 것이 전혀 아니었고 과학이라는 학문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히려 한 것 뿐입니다. 또한 크립키, 퍼트넘은 분석적 형이상학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인데, 분석적 형이상학이라는 이 분야는 분석철학 내에서 꽤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과학적 지식보다는 논리학적인 지식 및 훈련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과학적 지식을 비중있게 참고하며 형이상학 이론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으로는 과학적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자는 분석적 형이상학에 비하면 무척 소수입니다. 참고로 이들 모두 분석철학 계통이지요.

그나마 괜찮은 예시다 싶은 게 과정철학과 올려주신 블로그 글 링크인데, 도대체 과정철학(화이트헤드)이 언제부터 '주류'였는지요? 심지어 분석철학과 대비시켜 말씀하신만큼 꽤나 대단한 대접을 받고 있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과정철학은 코끼리 발의 원자 하나만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링크 건 블로그의 글을 쓴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주류라고 할 정도면 충분히 더 잘 알려진 사람을 예시로 들 수 있었을 텐데요? 제가 동양철학을 깊이 아는 건 아닙니다만 올리신 링크도 '동양철학의 결론은 현대물리학과 이러이러한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정도여서 학문적인 의의도 없습니다. 동양사상이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면 굳이 과학과의 유사성을 부각할 필요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식이란 단순히 우연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올려주신 많은 사례 중에 단 두가지만이 그나마 괜찮지만, 저는 과정철학과 블로그의 글을 쓴 사람(철학자인지는 둘째치고)에 관한 논문을 다 합쳐도 요즘의 전체 논문의 5%의 비중도 차지하지 못할거라고 장담합니다.

무엇보다 '분석철학은 주류가 아니라 한 분파일 뿐'이고 현대철학의 주류는 '과학과 형이상학, 존재론의 융합'이라고 하셔놓고선, 그에 대한 사례의 절대다수가 분석철학 계통인 이유는 무엇인지요? 갑자기 적당한 사례가 잘 생각이 안 나셨나요?



또 제가 니르바나님께 한 질문 및 지적은 하나 뿐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답변주신 건 고작 하나이네요. 자료만 툭툭 던진 것도 그렇고 성의가 지나치게 없으시군요^^ 제가 답변받지 못한 질문 및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런 접근이 과연 동양철학을 철학으로서 인정해주는 관점인지 의문입니다. 진리 탐구라는 철학의 목적을 사상적 정체성 찾기에 억지로 종속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인용한 부분에 덧붙이자면, '(동양철학을)학문적 개념으로 함께 탐구해야할 이유는 사상적 정체성 찾기라는 문제와 관련'있다고 하셨으나, 학문적 개념으로 탐구하는 것과 사상적 정체성 찾기라는 문제는 양립해서 가기 어렵습니다. 전자는 철학을 철학 안에서 보는 것이며 후자는 문화현상의 관점으로 철학을 보는 것입니다.)


* "한반도라는 이땅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탐구되는 방식은 기존에 있어왔던 것과 외래에서 수입된 것의 종합입니다 대부분 한국의 철학자들 역시 그런 태도를 가지기도 하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이지요. 외래 사상을 기존의 것과 종합시키고 변형시키는 것은 일본 학계의 특징입니다. 한국은 오리지널 그대로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때문에 서구 사대주의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분석철학이 철학의 주류라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 어느 부분에서 발견하신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또한 유학파들의 수입 번역형 철학이란 게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여기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저는 미국철학의 주류가 분석철학이라고 했지 철학의 주류가 분석철학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봄코님의 질문글에 대한 답변이라 하셨는데 동문서답을 하신 것 같습니다. 선불교를 공부하러 한국에 오는 것은 당연히 한국의 선불교에 관심있는 철학자, 아마도 그쪽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철학자이겠지요. 그렇다면 봄코님의 궁금증, 동양철학이 철학계 전체에서 얼마나 비중이 있느냐에 대한 답은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저의 말 중에 단 하나에만 반응해주시니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만만해보이는 하나만 취하신 건지요? 그마저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셨는데, 제가 니르바나님께서는 적절한 예시를 들지 못할거라고 확신한 것이 역시나 맞았군요.

 니르바나님께서는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이 알고 생각도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너무나 많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악의는 없다고 할 지라도 다른 분들이 니르바나님의 말을 그대로 믿을까봐 걱정스럽네요. 인터넷이 원래 조심해야 하는 곳이지만 잘못된 말로 다른 분들께 피해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니르바나님의 글이 언뜻 보면 굉장한 깊이와 학식이 있는 분이 쓴 글처럼 보여지기 십상이기에 특히 드리는 말입니다. 아마 '동양철학은 주류가 아니다' 라는 제 말이 동양철학에 대한 저의 가치판단이라고 느끼곤 발끈해서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만 다음부턴 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원글의 봄코님에 대한 첫댓글에도 저는 "고전을 중시하며 현대철학을 깔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최근의 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저로서도 조금 의문입니다."라고 하였고요. 애초에 저는 니르바나님과 달리 철학에 있어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이 그렇게 의미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우고 익히는게 그 방식이라면 그냥 학업 중인 학부생의 당연한 태도이므로 그 문제는 더 논하고 싶지않습니다" 이런 식의 우물에 독타기 함부로 하지 말고 말조심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원래 학부생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한데다 입학 전부터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니르바나님보다 열정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습니다^^ 제가 철학과라서 오만하고 권위적으로 나온다고 생각하지도 마시고요. 소속을 떠나서 니르바나님의 글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으실지 모르겠지만 더 진행해봐야 얻을 것도 없을 것 같고 아쉽지만 여기까지 하지요.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니르바나님과 저의 (수준낮은) 논의가 전공생과 아마추어의 대립으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대학 다니기 전부터 저 역시 혼자서 공부했었고, 철학과에도 다양한 성격과 능력의 사람들이 있는데다 저같이 철학에 관심이 큰 사람이 오히려 소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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