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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개화 - 3. 문은 열리고
게시물ID : history_168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irCafé
추천 : 3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04 20:18:39
시리즈 이전편들

프롤로그 - 토쿠가와 막부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6002&s_no=16002&page=8

1편 - 전조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6223&s_no=8182696&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538525

2편 - 서쪽에서 떠오르는 태양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6816&s_no=16816&page=1



1853년 7월, 미국 동인도함대에 소속되어 있는 4척의 흑선(쿠로후네)이 막부의 수도인 에도 지척의 우라가(浦賀) 항에 출몰하였다. 

matthew-c-perry-arriving-in-japan-everett.jpg

당시 이를 목격한 한 청년은 훗날에 쓴 편지에 이런글을 남겼다:

크기변환_Yoshida Shoin.jpg
청년 : 배 크기에 지리고 함포에 지리겄소.

 하지만 흑선의 내항에 가장 쇼크를 받은집단은 민간인들이 아니라 막부였다.
 
 당시 막부는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상인의 정보망을 통하여 미국의 동인도함대가 동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수한 상태였으나 정작 미국 함대가 일본의 심장부 인근에 출몰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찌됬든 이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최고위층 가신단 로쥬(老中)의 수장인 아베 마사히로가 우라가로 향하여 함대의 사령관인 매튜 페리로부터 일본과의 우호관계와 통상을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 필모어의 국서를 수령하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동인도함대에게 일본을 개항시킬것을 명한 상태였으나 이와 동시에 무력사용을 금지할것 또한 명한 상태였고, 일본은 이국선타불령을 해제한 상태라 무력충돌은 빚어지지 않았으며 대신 아베 마사히로는 이국선을 들이진 않으나 국서는 수령할 것을 표하였으며, 페리는 이듬해 봄에 다시올것을 약속하고 물러갔다.

 당시 에도막부의 쇼군이었던 토쿠가와 이에요시는 중병에 들어서 어제오늘하고있던 처지였기 때문에 아베 마사히로는 이 사안의 논의를 위하여 모든 다이묘(영주)와 직참(막부의 직속가신단)들에게 국서를 공개하고 대책의 자문을 요청하였는데, 이의 대부분의 답변은 전쟁회피였다.


 이에 당시 일본 지배층의 여론은 전쟁회피여론으로 굳어졌으나 이와는 별개로 막부는 흑선의 내항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에도의 해안인 시나가와에 인공섬 11개를 건설하고, 이에 포대를 구축하여 에도의 해상을 방어하기 위한 계획이 그것인데, 이렇게 건설된 해상인공섬 포대를 다이바(大場)라고 부른다. 다만 계획과는 달리 시간의 부족으로 6개의 인공섬을 완공하는데 그치며 그것조차도 제4다이바 공사는 인공섬 형성단계에서 중단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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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막부 말기에 건설된 다이바. 다른 5개의 다이바는 건물의 토대로 매립됨.)

 이듬해인 1854년 2월, 페리의 함대는 다시 일본을 방문했다. 페리는 원래는 시나가와에 상륙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작년 페리의 함대가 에도만을 측량하였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해상포대가 새로이 형성된것을 발견하고는 방향을 약간 틀어 요코하마에 상륙하였다. 막부측은 당시 일본의 주여론이 반전을 택하였다는 점, 그리고 신임쇼군의 취임이 얼마되지 않아 내부정치가 불안정했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흑선의 파괴력에 대한 공포에 의하여 화친을 선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200여년간 이어진 일본의 쇄국은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하였고, 오다이바의 포대가 불을 뿜는 일도 없게 되었다.
 에도막부는 미합중국과의 미일화친조약에 의하여 시모다(현 시즈오카현 동남부의 항구)와 하코다테(홋카이도 섬의 최남단항)을 미국에 개항하게 되었으며 식량과 석탄의 공급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무역조항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불평등조약의 요소는 없는 조약이었다. 막부는 러시아와 영국과도 같은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으며 이와같은 서양 오랑캐들과의 교섭결과를 쿄토의 코메이 천황에게 보고하였다. 양이주의자인 코메이 천황이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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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이 천황 : 마음에 흡족하여 우선 안심이 가는구려.

사실 이 조약이 쇄국을 부순 사건이라는 평은 후대인들의 평이며, 적어도 당시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치 않은듯하다. 이미 10년전 쇼군은 네덜란드 국왕이 보낸 친서를 수령하였을때 네덜란드 측의 요구를 거부함과 동시에 그간 관습적으로 형성해온 대외관계를 공식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에도시대 일본은 대외통신은 조선과 류큐, 대외교역은 중국과 네덜란드로 제한하는 4개국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대외정책은 천황에게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체를 그 근거로 한 황국(皇國) 일본과 이적(夷狄)과의 관계의 정립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그러한 관계를 옹호하고 있던 천황이 이 조약에 만족했다는 것은 이가 쇄국적인 에도시대 일본의 황국질서에 어긋나지 않는것으로 받아들인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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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타운젠트 : 그건 니 생각이고!

미일화친조약의 영사주재조항을 통하여 주일 미국영사로 파견된 해리스는 통상조약의 체결을 막부측에 강력하게 요구해오기 시작하였다. 이적(夷狄)이 황국의 질서에 도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말의 일본 사상가였던 와타나베 카잔은 자신의 저서인 '신기론'을 통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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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카잔 : 오늘날 천하의 5대주 가운데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3대주는 이미 유럽의 소유가 되었다. 아시아 대륙에서도 겨우 우리나라(일본), 중국, 페르시아 세 나라뿐. 이 세 나라 가운데 서양인과 교류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대단히 송구스럽게도 실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인의 눈에 우리나라는 길가에 버려진 고기와 같다. 굶주린 호랑이나 목마른 늑대가 노리지 않을 리 있겠는가.


 미일화친조약 체결을 위해 흑선은 요코하마 항에 1개월동안 정박해 있었으며, 이 흑선내항으로 인하여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막기위해 에도막부는 기이한 법령을 선포하는데, 바로 견물금지령(見物禁止令)이 그것이다. 즉 흑선을 보지 말라는 법령이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다.
크기변환_Miruna.jpg
와타나베 카잔의 표현을 빌리면 대단히 송구스러운 행위를 당시의 막부가 하고 있었다.


똑같은 흑선에 대하여 다른 행동을 한 이도 있었다. 흑선함대의 위용, 그리고 이와 같은 엄청난 무력의 뒤에 가려져 있는 이국의 신비한 문명을 목도하기 위하여 어느 청년이 동료와 함께 결심을 한 것이다.
 이 두명의 청년은 미일화친조약으로 인하여 개항된 시모다 항에서 심야에 작은 보트를 타고 파도를 뚫고 시모다 연안에 정박해 있는 미국 흑선 가까이 접근하였고 밀입선을 위하여 은밀히 배를 타고 올라가 잠입을 시도하였으나, 야간보초에게 적발되었으며 이 둘은 페리제독 앞으로 호송되어 간다.

Yoshida_Shoin_headed_to_the_Black_Ships.jpg


그 두명의 청년 중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크기변환_Yoshida Shoin.jpg
청년 : 미국에 가서 서구의 학문을 배우고 싶소. 우리를 동행시켜 주시오!

 하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에 발생할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페리제독은 이를 거절하였고 청년들은 실망하여 돌아가고 만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페리 제독은 일본인 청년들의 용감한 행동에 감명을 받고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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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페리 : 이 나라가 깨어난다면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서양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일본은 유사이래 최대의 위험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두 개의 갈림길 중 한 방향을 택하도록 강요받게 되었다. 첫번째 갈림길은 굶주린 호랑이와 목마른 늑대의 눈앞에 놓인 고기가 될 방향이며, 두번째 갈림길은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될 방향이었다.

 과연 일본은 어느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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