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른 동물은 정보를 축적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은 어떻게 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나? 무엇이 인간을 정보축적이 가능하게 하였는가? 앞에 이미 수없이 암시되긴 했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문자구사능력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문자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보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문자가 아닌 발성 언어(또는, 좁은 의미에서의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라면 그것은 산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중 일부는 의미 있게 정리되어 다른 사람의 머리를 통해 전달되고 보존되겠지만 그 정보는 양이나 정확성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나마도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또다시 전달이 되지 않거나 새롭게 조명 받지 않으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언어라는 청각 형태의 정보는 쉽게 저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정보 저장을 순전히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능력만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정보량이나 정보의 정확도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평생을 걸쳐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들 거의 대부분은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함께 이 땅에서 몽땅 사라지게 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보았을 때 (발성)언어능력만으로는 정보를 재대로 축적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또는, 기록 언어)는 다르다. 문자는 정보를 온전하고 고정된 형태로 외부에 기록하여 저장할 수 있게 끔 한 기호 체계로 정의해 본다. 그리고 기호는 특정 정보를 시각적인 형태로 변환한 것이다. 시각 형태의 정보는 청각이나 촉각이나 후각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또한 시각 형태의 정보는 명확하며 정교화 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도 쉽다. 따라서 문자는 정보를 좀더 온전한 형태로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으며 그 정보를 공유하거나 후대에 까지 전하는 데에도 용이하다. 문자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는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문자를 통해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도 거의 상당히 한계가 없다. 그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흐릿해지는 기억과는 달리 온전하게 말이다. 결론적으로 문자는 기억을 외부에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이다. 그리고 인류는 이 문자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문자를 통해 인류에게는 순식간에 무한에 가까운 정보축적능력이 생긴 것이다. 새로 발생되는 정보가 아무리 적거나 사소한 것이더라도, 문자를 통한 이런 정보축적능력은 장대한 시간을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엄청난 정보의 진보가 보장된다. 더욱이 진보의 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 된다.
그럼 정보 축적을 할 수 없다고 한 다른 동물에게는 문자 능력이 없나? 그렇다. 지구상에 오직 인간만이 문자를 생성시키고 활용할 줄 안다. (발성, 화학물질 등의) 다른 언어능력이라면 말했듯이 인간 이외에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이 제법 있다. 정교한 언어능력이 인간만의 특정한 능력일지언정, 언어 그 자체는 인간만의 특정한 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문자는 다르다. 언어능력이 있는 동물 조차도 문자를 생성하거나 활용하는 능력이라면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제한적이다. 동물도 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다. 동물은 또한 간혹 다른 개체에게 언어 등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가르쳐 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보를 임의의 다른 존재가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게끔 외부에 간접적인 형태로 축적하지는 못한다. 정보를 축적하려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 문자구사능력이 동물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도구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에게도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좀더 진보한 형태의 정교한 도구들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새로운 도구를 생성시킬 의지도 있고 그 방법을 다른 개체에게 전파할 동기가 있더라도 문자없이 전달할 수 있는 도구에 대한 정보에는 복잡성에 한계가 있다.
문자를 넘어서 인류는 한발 더 나아가 컴퓨터를 개발하였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인터넷을 개발하였다. 문자가 정보의 축적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이라 한다면, 인터넷은 정보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인터넷을 통해 기술적으로 우리는 모든 정보를 모든 공간에서 모든 순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 접근에 대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졌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도 한계가 없어졌다. 인터넷이 아닌 한권의 책이나 도서관의 출판물들을 통해 정보를 접근하는 경우, 정보는 도서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접근 할 수 있으며, 해당되는 정보를 검색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며 검색결과는 완전하지도 않다. 또한 도서관이 품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도서관의 크기에 의해 한계지어진다.
도서관 보다는 한단계 더 발전한 형태인 컴퓨터 데이터조차도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보면 도서관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물론 컴퓨터가 정보의 공간적 접근성에 대한 문제와 정보의 검색 시간에 대한 문제를 상당히 해소하기는 했다. 그러니까 정보가 저장된 하드디스크와 컴퓨터 장치만 있으면 도서관까지 가지 않고도 정보에 접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놓으면 정확한 검색 결과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품을 수 있는 정보 양 역시 해당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에 한계 지어진다. 그리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정보만으로는 시시각각 새로이 발생되는 실시간 정보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그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얻어서 하드디스크로 옮기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제약들을 한꺼번에 없애 버린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컴퓨터가 있는 어디에서든 순식간에 그것도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은 정보 접근성 뿐만 아니라 정보 생산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당장이라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당장에라도 순식간에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기존의 도서관이나 컴퓨터 방식으로는 꿈도 꿀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의 정보검색 능력이 충분히 향상되어 그 수많은 정보들 중에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좀더 정확히 찾아낼 수 있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접근성에서의 혁명은 가히 문자를 통한 정보 축적성에서의 혁명에 버금간다 할 수 있다.
인간이 정보를 통제하는 능력의 발전과정은 어떤 면에서 첫 장에서 언급한 생명체가 DNA를 이용해서 진화된 자기형태정보를 축적하는 과정과 일면 비견해 볼 만 하다. 즉,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에 따라 물질(동물)에서 시시때때로 질서상태정보(언어)가 생겨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질서상태정보를 보존, 축적 시킬 수 있는 도구인 DNA(문자)가 생겼다. 문자(DNA)가 장대한 시간을 만나면서 인류(생명체, DNA를 가진 물질)에게 엄청난 진보(진화)를 가져다 주었듯이, 이 DNA(문자) 역시 장대한 시간을 만나서 생명체(인류, 문자능력이 있는 동물)에게 엄청난 진화(진보)를 가져다 주었다. 즉, “동물(언어) -> 문자(인간) -> 진보”는 “물질(질서화) -> DNA(생명체) -> 진화”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정보가 축적되는 진보 과정의 끝에 정보 접근성에 한계가 사라진 인터넷 기술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듯이, DNA가 축적되는 진화 과정의 끝에는 DNA 축적의 수동성에서 벗어난 인간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인간은 시험관 시술이나 유전자 편집 기술 같은 인위적인 존속 기술을 터득하면서 탈진화적인 생명체가 되었다. 시험관 시술법으로 인간은 자연선택을 통해서 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DNA정보까지 존속 정보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인간은 진화의 속도나 방향을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즉, “동물(언어) -> 문자(인간) -> 진보 -> 인터넷(문자 접근성)”는 “물질(질서화) -> DNA(생명체) -> 진화 -> 인간(DNA 존속성)”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기호: 특정 정보를 임의의 형태로 변환하여 구성한 시각정보
문자: 정보를 고정된 형태로 기록할 수 있게 끔 한 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