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원소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세요?
삼국지 게임을 자주하신 분이라면 하북쟁란 시나리오가 떠오를 수도 있겠고, 안량과 문추가 떠오를 수도 있겠고, 오소의 군량고가 떠오를 수도 있겠죠?
원소가문에 대해서 파헤쳐 봅시다!
1. 원소의 가문
원소 가문은 명문가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 알아두셔야할 것은 헌제보다 아득히 전부터 한나라는 막장의 끝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유랑하고, 도적떼가 기승하며, 부임하러가는 주목이나 주자사는 도적떼나 호족들에게 주살당하기가 일쑤였죠.
게다가 영제이전에는 내시들을 통해서 매관매직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내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고서는 고관대작이 될 수 없다는 점이지요.[일부 내시들에게 도움이 되는 청백리 제외. ex)황보숭]
바로 이 원소가문이 내시들과 유착되어있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소가문은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거지요!
2. 원소의 어린시절
원소는 어린시절 내시들을 굉장히 증오했습니다. 사석에서 공연히 내시들을 쳐죽여야한다는 말을 하자, 친척들 중 일부는 '저놈이 우리 가문을 망하게 할 것이야.'라는 말을 할 정도였죠.
원소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은 원소가 서자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원소는 본디 종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이나, 장성하여 양자로 입적해 가문의 후계자가 된 케이스입니다.
덕분에 원술은 원소를 항상 '종년의 자식'이라고 취급하며 상종을 안하려고 했지요.(원술에 대해선 다른편에서 따로 기술합니다.)
원소는 어렸을 때부터 조조를 비롯하여 낙양의 힘좀 쓰는 자들과 다니다보니 인맥이 꽤 탁월했습니다.
3. 십상시의 난
십상시의 난 이전부터 원소는 하진을 꼬셔서 십상시를 모두 주살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십상시가 먼저 선수를 쳐서 하진을 주살하자 원소는 이를 빌미로 전국 각지의 군벌들에게 공문을 보내 십상시를 주살할 것을 부추깁니다. 이로 인해 동탁이 나타나고 하늘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여튼 한나라가 망테크 부스터를 쓰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원소지요.
4. 반동탁연맹
반동탁연맹때 원소가 맹주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동탁연맹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있었습니다. 북부군은 '원소짱짱맨!'이라고 외치며 원소를 맹주로 초대했고, 남부는 원술이 '이런 X같은!'이러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왔죠. 그러다가 손견이 본격적으로 원술에게 합류하면서 남부 호족들이 '원술짱짱맨!'을 외치며 남부와 북부간의 대립이 일어납니다.
그와중에 손견 혼자서 화웅을 죽이고 호로관을 박살내면서 실상 반동탁연맹이라기 보다는 손문대와 아이들.mp3를 찍으면서 할 일 다한 셈이죠.
5. 반동탁연맹도 끝나고 원소는 한복의 통수를 쳐서 업을 먹으면서 하북의 곡창지대를 장악하게 됩니다.
6. 공손찬과의 전쟁
공손찬과의 전쟁도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던 게 공손찬이 워낙 백성들을 가학하게 징발하고, 또 '부하장수가 위험하다고 구원해주다보면 무능하게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부하들을 구원하지 않다보니 하북일대의 호족들이 공손찬에게서 등을 돌려 결국 공손찬은 고립된 성 안에서 방어 하다가 결국 가족들을 전부 죽이고 자신도 자살합니다.[후에 공손찬편에서 서술하겠습니다.]
7. 하북을 평정한 후 ~ 관도대전
하북을 평정한 후 원소 휘하에는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모였습니다. 전주, 봉기, 심배, 곽도, 전풍, 안량, 문추 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인 것이지요.
하지만 원소의 가장 큰 문제는 영토가 넓어질 수록 원소의 그릇이 금이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원소는 자신의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인 원상을 좋아했습니다. 원상은 원소를 닮아 풍채가 담대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풀줄 알면서 뒤로는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군주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장자인 원담은 그 꼴을 보니 미치죠. 원소의 서자 콤플렉스가 발현된건지 원소는 역대 왕조 중 적자에게 후계 안 줘서 망한 케이스를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원담을 지방 주자사로 파견해버립니다. 덤으로 원희도 파견해버립니다.
한 마디로 지방한직으로 첫째와 둘째를 좌천시키고, 셋째를 자신의 옆에 두면서 후계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해버린 것이지요.
덕분에 원소의 부하들은 원담파, 원희파, 원상파로 갈리면서 원소의 세력권이 3갈래로 갈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시기 조조는 정말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장수를 비롯하여 남부 호족들이 조조의 비위를 박박 긁는 상황인지라, 조조는 이 때 원소를 두려워하면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원소는 이 시기를 자식이 아프다는 핑계로 유야무야 넘겨버립니다.
덕분에 조조는 이 시기를 잘 넘긴 뒤에, 드디어 원소와의 대전을 준비합니다.
여기서 또 원소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데, 당시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전풍 가라사대 '우리는 어차피 대국이니까 우리가 이왕 기다린 거 몇 년만 더 국력을 비축하고, 조조후방을 이간질하면 조조따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몇 년 더 참자.'라고 좋은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소는 지금까지 기다린거 좀 더 기다리면 될 걸, 병력을 일으켜서 기분좋게 관도로 진군합니다.
원래 관도대전은 원소가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병력에서도, 군량에서도, 후방안정에서도 밀리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하늘은 원소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허유가 조조에게 오소의 군량고 방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리고, 군량고가 습격되는 와중에 군량고 구원을 대충 보내고 조조를 공략하는 병크를 터트립니다. 덕분에 순우경은 코가베이고, 군량고는 함락당하고, 병사는 배가고프고, 하늘이 노래지고, 지휘관들은 서로 책임 묻기에 바쁘죠~.
사실 관도대전을 급하게 안 했으면 유벽&유비, 유유브라더스가 조조의 후방을 잘 교란시키고 그 동안 국력키우면 됐을 텐데, 그냥 꼴리는 대로 전쟁시작했다가 여기에서 대패를 해버립니다.
*관도대전에서 조조의 병력수가 되게 적다고 기술되어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조조의 병력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남 역시 곡창지대를 일부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병력수가 그리 작지는 않았지요. 만약 이게 아니라면 관도대전 때 원소의 군대 숫자가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180년 당시 한나라 인구가 약 5천만 이었고, 황건적들이 2차 봉기를 일으킨 이후로 조조에게 속속들이 항복하고 있었으므로 머릿수 자체는 사실 조조가 심각하게 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8. 관도대전 이후
관도대전 이후 시간이 흐르자, 마음의 병을 얻은 원소는 8:45 to heaven를 해버리고 원담 VS 원상, 원희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원담은 자신이 적장자라 후계자라고 주장했고, 원상은 Fuck↗You↘라고 답변했죠. 원희는 원상에게 반Ang하지 않고 따릅니다.
곽도를 필두로 한 원담은 업과 남피를 필두로 원상에게 대항하고, 원상 역시 원담과 전쟁을 준비하며 자신의 후계자 위치 확립에 방해되는 나머지 형제들을 싸그리 죽여버리죠.
이것은 조조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로 다가옵니다. 원담과의 동맹을 맺으면서 천천히 후방도 다시 안정시킨 그는 원담과 동맹하면서 원상과 원희를 북방으로 밀어버리고, 원담도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서 원상과 원희가 없을 때 원담도 냠냠합니다. 여기서 원담이 죽죠.
9. 원희와 원상의 게릴라전.
원희와 원상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오환족 답둔에게 찾아가 병력을 빌려서 끊임없이 유주지역에 게릴라전을 펼칩니다.
덕분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끌려가고, 태수들이 죽자 조조는 결국 오환족을 쓸어버립니다.
원상과 원희는 또 도망갑니다.
10. 원희와 원상의 최후.
이들은 공손강에게 도망칩니다. 요동의 왕이라 칭하고 있었던 공손강의 밑에 있다가 반란을 일으켜 세력을 뺐을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공손강은 이미 그들을 앞질렀습니다. 조조가 유주에서 회군하자 공손강은 쾌재를 부르며 회담장소에서 원상과 원희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게에 지친 그들의 몸을 위해 그들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시켜줍니다.
*솔직히 말해서 삼국시대의 명문가라고 해봤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인물이라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공손찬도, 도겸도 실상 보면 탐관오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녀석인데 삼국지 연의덕에 인자하고 도덕적인 군주로 나와요.
원씨가문도 자기들끼리나 명문가지 실제 백성입장에서 보면 십상시와 붙어서 고혈 빨아먹는 놈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