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더욱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측이 고구려 유적지에 고구려 선조가 중원민족에 복속돼있었다는 설명을 붙이거나 광개토대왕을 중국 민족 모습으로 그린 상징물을 설치하는 식이다. 올해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고구려 유적지 푯돌에 "고구려, 중원민족에 복속됐었다"
3일 조법종 우석대 교수(역사교육)에 따르면, 고구려의 첫 도읍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환인현 오녀산성(졸본성의 당나라 지명)의 고구려유지 박물관 앞에 최근 커다란 산양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 옆 푯돌에는 "산양은 네 개의 뿔을 달고 있는 고대 북방의 양으로 기원전 1035년 주성왕의 성주대회시 고이가 공헌품으로 중원에 바친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고구려가 중국 고이족의 후손이자 북방민족으로서 주나라 때부터 중원민족에 복속돼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문구다. 조 교수는 "산양은 고구려와는 관계없는 동물"이라며 "고구려를 중국의 한 민족으로 보는 전형적인 동북공정식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오녀산성(졸본성)의 고구려유지 박물관 앞에 세워진 산양 조형물과 표지석. "산양은 네 개의 뿔을 달고 있는 고대 북방의 양으로 기원전 1035년 주성왕의 성주대회시 고이가 공헌품으로 중원에 바친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제공
세계문화유산인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안시 시청과 광장 사이의 태양조(삼족오)상과 여기에 새겨놓은 설명 내용도 문제다. 설명에는 "삼족오(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를 고구려와 중원민족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민족은 중화민족이며,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 태양 신앙이 나타나고 있다"고 돼있다. 일방적인 억지 논리다.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안시 시청 인근 삼족오(태양조)상에는 "삼족오를 고구려와 중원민족이 공유하고 있으므로 고구려민족이 중화민족"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제공
광개토대왕을 전형적인 중국 무사로 조각
주몽의 탄생 등 고구려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새겨놓은 인근의 열주문에는 광개토대왕을 전형적인 중국의 무사로 조각해 놓았다. 조 교수는 "지안박물관 제1전시실의 이름을 고구려가 중국의 옛 나라라는 의미의 '한당고국'으로 달아 개관 때부터 논란이 됐지만 이것도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中 "동북공정 2007년 중단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2007년 동북공정을 중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인식시키려는 전략이 계속되고 있다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더구나 중국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문화관광시설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어 전세계 관광객들에게 중국의 논리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 조 교수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 차례 중국의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해 이런 사실을 기록했다.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 지속적 실태조사 펼쳐야
조 교수는 "고구려 유적지가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을 대상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 민족이나 중국에 귀속된 역사로 인식, 전파시키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런 식의 교묘한 동북공정 시도를 막으려면 한국 정부가 중국과 상시 협의기구를 만들어 대응하고 중국 내 고구려나 발해 유적지 실태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 고구려발해학회가 4일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인 '고구려 유산의 현황과 활용 그리고 전망'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중국의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 교수가 참석해 19세기 광개토왕릉비의 원석 탁본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