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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 그 영광의 순간
게시물ID : history_168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ble6
추천 : 16
조회수 : 1342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4/07/03 16:03:58
전장에서 무기가 발달해나갈 수록 기병들의 역할 역시 축소되어나가나 그래도 여전히 기병은 군대의 주축을 이루고, 많은 지휘관들이 이 기병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세의 판도가 뒤바뀌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만 하더라도 가장 큰 규모의 기병돌격이 이루어졌습니다.
 
1807년 2월 8일, 나폴레옹은 그의 프랑스 대육군을 이끌고 러시아 장군 베니히센의 군대와 아일라우 평원에서 맞붙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군대는 베니히센의 군대보다 규모가 작았고, 또한 혹독한 눈보라로 인해 시야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공격을 담당했던 나폴레옹의 부하 오쥬로는 눈보라로 인한 아군 포병대의 오폭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오쥬로 장군은 근성으로? 그리고 간신히 위험을 무릅쓰고 적을 향해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것은 대기하고 있던 러시아 군 포대였으며 러시아군은 오쥬로의 부대에게 화려한 산탄을 퍼부어주며 환영했습니다.
 
결국 막대한 피해를 입은 오쥬로 부대는 거진 궤멸된데다 연거푸 또다른 프랑스 군 부대의 공격이 좌절되어 나폴레옹 군은 타격이 컸지요. 그랑 다르메, 그리고 나폴레옹답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 펼쳐지는 살육전을 보다못한 나폴레옹은 그가 가장 신임하는 기병 원수 뮈라를 호출합니다.
 
잠시 후 뮈라는 1만명이 넘는 기병대를 모은 뒤 선두에 서서 일제히 기병돌격을 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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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만명이 넘는 프랑스 기병대는 러시아군을 돌파하여 그 대열을 짓밟습니다. 한바탕 러시아 군을 휘저은 프랑스 기병대는 러시아 군이 미처 대열을 수습하여 방진을 짜기 전에 재차 돌격하여 마구 유린하지요.
 
1만 기병대의 돌진은 러시아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러시아 군이 혼란에 빠진 것을 기회로 나폴레옹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증원군의 지원을 받아 전투에 돌입합니다.
 
이 장엄한 기병 돌격은 전쟁사에서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였지요. 물론 이 기병돌격은 그 규모와 장엄함에 비해 러시아군에게 큰 치명타를 주지 못했고 오히려 1천 5백여명의 기병들이 희생당합니다.
 
여담으로 나폴레옹은 아일라우 전투를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다고 합니다. 늘 전장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해온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통제하지 못한 전장상황을 가져온 것이 바로 이 아일라우 전투였기 때문이지요.
 
그 후 수십년이 지나서 또다른 기병 격돌이 일어납니다.
 
신생 공화국 폴란드는 그들의 오랜 숙적 러시아와의 전쟁에 돌입하였는데, 온갖 현대무기가 날뛰는 전장에서 기병도와 랜스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기병 공격이 다시 등장한 것이지요.
 
1920년 폴란드 군 창기병대는 코마로프란 곳에서 러시아 군 울란 기병대와 격돌합니다.
 
러시아 울란 기병대 1만 7천명 (거진 아일라우에서 동원된 프랑스 기병대와 동급 규모!) vs 폴란드 군 창기병대 5천명
 
승자는?!
 
 
 
 
 
 
역시나 유구한 캐사기 기병 전통을 지닌 폴란드 군의 승리였습니다. 폴란드 군은 이 코마로프 전투에서 불과 5백여명의 전사자를 낸데 비해, 러시아군은 그 8배에 달하는 4천여명을 잃고 패주합니다. 오오 승리의 윙드 훗사르 오오!!!
 
(코마로프 전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방문해 보세요. http://blog.daum.net/uesgi2003/464)
 
 
이렇게 기병대 영광의 순간이 있는 한편, 안습하다 못해 부끄러움은 보는 이들의 몫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바로 크림 전쟁 당시 발라클라바 전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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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정말 병신미를 보여주는 전투였죠. 하달된 명령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여서 비롯된 참극이기도 한데, 당시 영국군의 중핵을 맡은 귀족층들의 멍청함이 돋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명령서대로라면 보병대 지원하에 기병대 진격할 것이라는 명령을 기병 단독 진격, 보병대가 후속으로 전장상황 정리라고 이해해버리는 바람에 영국군 경기병 여단은 러시아군 포대로 그대로 돌격합니다. 더군다나 전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진격을 망설이는 지휘관에게 연락 장교는 방어가 잘 이루어진 러시아군 포대를 가리키며  "저기에 작전 목표가 있습니다." 라고 일갈하는....이 병신같지만 멋있는;;;; 말을 하며 공격을 촉구하지요.
 
결국 영국군은 러시아군 포대로 그대로 진격해들어갔고 러시아군은 침착하게 대포로 응사하며 영국군 기병들을 학살합니다..... 이것을 보다못한 동맹군인 프랑스 군이 러시아군 포대 측면을 공격해주기전까지 영국군들은 계속 학살당하죠;
 
계속된 학살에도 영국군 지휘관들은 고집스럽게 공격을 주장하였으며, 웃기게도 지휘관들은 이 공격 후 별 문책없이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간거죠.
 
 
물론 이러한 대규모 기병돌격들은 이제 역사속에서나마 화자될 뿐이지만, 기병의 전통을 승계했다고 볼수 있는 전차들의 대격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쿠르스크 전투에서 말이지요. 이 전투에서는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 합해 6천여대의 전차들이 동원되어 격돌했으며, 전투 후 강철의 무덤을 이룰만큼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소련군만 하더라도 이 전투에 가진 기갑전력의 3분의 2 이상을 쏟아부었으니 말 다한 셈이죠....
 
화기가 최고조로 발달한 지금은 뭐..... 이런 대격돌은 보기가 힘들죠. 단지 화력의 집중만이 있을 뿐.
 
하기사 어찌보면 당시의 대격돌들도 가진 화력들의 총합을 어떻게 쏟아부었느냐, 그 힘의 단위가 얼마나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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