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주체체이다. 생명체가 주체체라는 것은 그 전에 생명체는 목적체라는 것을 뜻하며, 생명체가 목적체라는 것은 생명체에게 어떤 존재적 목적을 가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생명체가 목적체라는 것은 생명체라는 결합체에는 자체적인 고유규칙이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생명체라는 결합체 덩어리 전체에 작용하고 있는 자체적인 고유규칙은 무엇인가? 생명체가 가지는 수 많은 목적행위들이 향하는 목적이자, 또다른 목적이 없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스스로가 가지는 방향성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목적체의 고유규칙을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목적체에게서의 본질적인 고유규칙은 곧 목적체의 존재적 목적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목적체의 존재적 목적, 또는 목적체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상태는 그 목적체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 목적체의 존재적 목적을 파악함으로써 그 목적체가 왜 시작되었고, 왜 그렇게 작용하며,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그리고 그 목적체는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어 어떻게 끝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항 상당부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면, 자동차의 목적에 대한 설명을 빼 놓고는 우리가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동차를 재대로 이해 시킬 수가 없다. 자동차의 작동 원리나 구조 등을 다 알아도 정작 이 자동차가 뭐 하는 것인지를 모른다면 그 사람은 자동차를 거의 모르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인류에게서의 피라미드처럼 말이다. 피라미드가 불가사의중에 하나라면 그것은 피라미드가 언제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를 잘 몰라서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도대체 왜 지었는지 그 목적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처럼 목적체의 상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체의 존재적 목적을 파악하여야만 한다. 반면, 비 목적체의 상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 비 목적체에 작용하는 자연원리를 파악해야만 한다.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을 파악함으로써 그로부터 태양계의 괘도를 이해하여 지구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듯이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생명체의 자체적인 고유규칙, 또는 생명체라는 목적체의 목적성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상태, 또는 생명체라는 목적체의 존재적 목적은 무엇인가? “1단계적” 결론을 말하면 그것은 생존과 번식을 통한 “자기형태정보존속”인 것처럼 보인다. 진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슨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에 대한 수 많은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즉, 생명체라는 목적체의 모든 주체적 활동은 “자신의 형태정보가 담겨져 있는 자신의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게 유지하고 보호한다” 라는 자체적인 고유규칙에 따라 작용한다. 실로 생명체의 형태나 상태나 행동이나 성질들 대부분은 생존을 통해 세상과 엮이려 하고, 번식을 통해서 자신의 형태와 상태를 정의하는 정보를 유지하고 전파시켜서 존속 시키기 위함으로 설명이 된다. 또한, 생명체의 상태나 활동양식은 그렇게 되게끔 최적화 되어 있는 듯도 하다. 만약 생명체의 고유규칙이 존속지향성에 소홀하거나 또는 다른데 에너지를 쓰게끔 작용한다면 (또는, 존속에 불가항력적인 현상이 발생한다면) 생명체는 존속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생명체라는 존재의 소멸, 즉 멸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형태정보존속이라는 목적성은 생명체와 같은 영속(永續)적인 목적체에게는 최소한의 필수 전제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생명체라는 주체체에 내재되어 있는 “존속 지향성”은 첫 생명체가 발생한 지 수 억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체가 영속할 수 있었던 핵심원인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고 생명체라는 주체체가 존속 지향성이 아닌 다른 목적을 추구 했었다면 생명체는 영속하기는 커녕 발생한지 얼마 가지도 않아 사라졌을 것이다. 반대로 영속적인 어떤 주체체가 있다면 그것은 곧 그 주체체에는 존속이라는 지향성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 쯤에서 몇가지 정리할 사항이 있는데, 우선 의미상 존속지향성은 주체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니까 영속성과 관련된 이 존속지향성이, 자체적 작용성과 관련된 성질인 주체성이 있는 주체체에게의 필수 지향성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존속지향성이 있는 수동적인 목적체를 가정할 수 있으며, 반대로 존속지향성이 없는 주체적인 목적체 역시 가정할 수 있다. 또한, 목적체의 지향성에 반드시 존속지향성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존속지향성뿐만 아니라 또다른 종류의 추가적인 지향 대상도 가지고 있는 목적체를 가정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그러하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존속지향성과 함께, 추가적인 다른 종류의 지향 대상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을 생존과 번식 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생명체로 가정한다면 인간의 행동들 중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번에 다룬다.). 또한 이 인간에게 있는, 존속지향성과 별개의 추가적인 지향성 만을 모델로 해서 주체 기계(즉, 번식할 생각이 없는 비생명체 주체체)를 만드는 것 역시 불가능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다음 번에 다룬다.). 앞서 주체성은 생명체의 고유특성이기 때문에 주체성이 있으면 곧 생명체라고 했었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주체 기계가 없는 지금의 상태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 인공적으로 주체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애초에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위 명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참인 것이 되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체적인 비생명체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체2: 자기형태정보를 존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체체
자기형태정보존속지향성: 생존과 번식 같은 것을 통해서 자신의 형태와 형질에 대한 정보를 유지하고 전파시켜 존속시키려는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