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생명체를 목적이 있는 목적체라고 규정하였는데, 세상에서 생명체만이 목적체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생명체 말고도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다른 존재가 엄연히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도구이다. 생명체의 경우 그 향하는 장기적인 지향성 상태가 불명확해 보이는 반면, 도구에서라면 우리는 그 목적을 대단히 명확하고 상세하게 규정할 수 있다. 도구에게서의 목적이라면 사실 단지 규정할 수 있다 정도의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도구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염두한 후에 그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도구에게 목적은 그 존재의 발생을 우선하는 더 큰 개념이다. 그래서 도구의 목적을 도구의 속성 중 하나로 보는 것 보다는 도구를 목적의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 어찌되었건 중요한 점은 도구에게도 생명체에서처럼 목적, 즉,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지향하는 상태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말이 곧 도구가 생명체와 동등한 개념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구는 생명체와 존재적으로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 도구는 생명체와 같이 목적이 있는 목적체이기는 하지만, 주체적인 목적체인 생명체와는 달리 도구는 수단적인 목적체이다.
예컨대 로봇이라는 도구는, (인간의, 인간을 위한) 수단적인 목적체이다. 도구는 인간에 의해 인간으로부터 파생된 존재이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작용하는 수단체이다. 다시 말하면, 로봇이라는 도구는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의 수단적 존재이다. 목적체인 로봇의 목적은 인간으로부터 부여 받은 명시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봇의 모든 움직임, 나아가 로봇이라는 존재의 목적은 로봇 그 자체의 상태에 대한 것이 아닌 인간의 어떤 필요 충족을 위한 것이다. 이렇듯 도구는 수단적인 목적체이기 때문에 도구의 목적은 그것을 만들고 작동시키는 인간에게 분명하며 분명해야만 한다. 인간이 없어지거나 도구가 인간으로부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순간 도구는 그냥 여느 (목적이 없는 존재인)물체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마치 생명체현상이 종료된 생명체처럼 말이다.
반면, 생명체는 주체적인 목적체, 즉 주체체이다. 주체성은 목적체의 목적성, 또는 고유규칙이 다른 목적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성질이다. 도구가 목적체인 인간으로부터 파생된 존재라면, 생명체는 비목적체인 자연으로부터 스스로의 성질에 의해 발생된 존재이다. 도구와는 달리 생명체는 비목적체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에, 생명체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결정하는데 관여하는 그 어떤 외적 존재가 없다. 따라서 생명체의 목적성은 생명체 자체 안에서 직접적으로 결정되며, 그 목적은 생명체 자체를 향하고 있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했을 때 생명체에게의 고유규칙이나 목적은 자신(?)이외의 다른 존재에 의해 직접 결정되거나 간섭 받거나 바뀌거나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한, 생명체에게는 그 목적이 오롯이 직접적으로 향하는 특별한 외부의 다른 대상이 관찰되지 않는다. 도구에게서의 인간과 같은, 자체적인 목적성을 오롯이 착취하여 자신의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그 어떤 존재가 생명체에게는 특별히 관찰되지 않는다(적어도 자연과학은 그렇게 이야기 한다.). 따라서, 둘다 목적체 이긴 하지만 수단체인 도구와 달리, 생명체는 주체체이다.
생명체에게의 이 주체성은 생명체를 물질 등의 다른 존재들과 구분 짖게 하는 생명체만의 본질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생명체에만이 자연원리를 거스르면서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된 고유규칙에 따라 장기적으로 작용하려는 성질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풀이 스스로의 광합성을 통해 빛 에너지를 모으거나, 누가 조종하지 않아도 연어가 스스로에 의해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 가듯이 말이다. 반면에 아는 바로는 생명체를 제외하고 이렇게 스스로 만으로 빛 에너지를 모으거나 스스로 만으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결합체는 없다. 만약 그런 결합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존재는 생명체로 간주할 수 있을 듯 하다.
때로는 물질대사 능력을 기준으로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구분하려는 관점도 있다. 물론 생명체는 물질대사를 통해 성장을 하고 생식을 하고 외부 와도 반응하면서 주변의 에너지 계를 통제하고 교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중요하기는 하지만 부차적인 속성 정도로 해석해야 할 듯 하다. 왜냐하면 비-생명체 결합체 중에도 생명체에서처럼 물질대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 물질들 중에는 주변의 에너지 계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생명체 결합체에 단순 물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생명체 결합체에는 도구도 있다. 그리고 도구 중에는 자동차처럼 주변의 에너지 계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성장하고 외부와 반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질 중에서는 생명체처럼 성장하고 외부와 반응하는 것 역시 없겠지만, 그런 (물질만으로 만든)장치 역시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비-생명체의 범위를 단순 물질에서 도구까지 확장한다면 생명체가 가질 수도 있는 물질대사능력은 생명체가 아닌 것들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대사능력은 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지 않고 물질대사를 생명체의 필수조건 중의 하나로 생각하여, 물질대사능력이 없는 바이러스를 생명체가 아니거나 또는, 불완전한 생명체로 간주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의 가치를 사소하게 평가해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이동과 수송 기능을 수행하는 운송수단의 본질을 바퀴의 유무로 간주하여, 이동은 하지만 바퀴가 없는 자기부상열차를 운송수단이 아니거나 또는 불완전한 운송수단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즉, 주체성은 생명체만이 가지고 있고, 동시에 모든 생명체는 가지고 있는 생명체의 필요충분조건이며, 따라서 현재까지로써는 생명체를 정의하는 데에는 이것만으로 족하다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생명체들의 모든 작용들이 모두 오롯이 전적으로 주체적이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서 생명체의 목적성에는 다른 주체체의 수단적인 부분도 있다. 예컨대 기생충의 숙주는 생명체 임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의 수단적 목적체인 면이 있다. 또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양식되거나 사육되는 동식물 역시 생명체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수단적 목적체인 면이 있다. 심지어 인간조차도 마찬가지다. 주체적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이나 행동이 외부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조종당해서 다른 누군가의 목적에 이용당하는 경우는 사실 대단히 흔하다.
도구: 인간에 의한 수단체
사물: 도구 +자연물
생명체1: 자연으로부터 발생된 주체체
수단성: 목적성이 다른 특정 목적체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성질
수단체: 수단성이 있는 목적체
자연물: 목적체 였었던 적이 없는 비목적체
주체성: 목적성이 다른 목적체의 개입없이 별개로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성질
주체체: 주체성이 있는 목적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