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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간호사들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긴글주의)
게시물ID : freeboard_1676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보잠보
추천 : 11
조회수 : 460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7/12/13 10: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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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간호학과에 입학해 국가고시를 위한 기계가 되어 성적에만 매달려 면허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졸업하기 전 교수님들께서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후배들을 위해 절대 노조가입해서는 안된다 너희들이 병원에서 밑거름이 되어
 후배들의 앞길을 막으면 안된다 병원이 망하면 간호사들이 일 할 곳이 없어진다.
그러니 쥐죽은 듯.. 부당함도 참고 견디고 신규만 지나가면 되니 참아라.. ”
사회초년생 간호사들 앞에두고 다 참으라 할 때 그것이 정답인줄만 알았습니다.
 
간신히 들어간 병원.. 파릇한 23, 24살 어린 친구들 스케쥴까지 고쳐가며 회식에 나가도록 했을때에는..
저희를 환영해 주는 자리라 생각하며 참가했지요.
 
마시지도 못하는 술 정신력으로 버티라며 채근에 꾸역꾸역 입속에 밀어 넣고
 몸도 가누지 못할만큼 힘들던 그 시간 뒤에 끌려간 자리에서
취한 어린 간호사들 끌어안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못 들어가겠다고 버텼지요..
어딜 감히.. 매너 좋은 분들이니 함께 춤도 춰드리고 기분 좀 맞춰드리라는 말에
약방기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부모님과도 상의할 수 없는 참담함을 감추고 출근을 했었습니다.
 
쏟아지는 술기운에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2시간 전에 출근해 물품을 체크하고
없어진 물건을 사비로 채워넣거나 찾으러 온 병원을 뛰어다니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그 모든 일과를 해낼 수 없으니 당연히 초과근무를 해야지요..
 
하지만 월급날 나온 건 법정 초과근무시간에 해당하는 수당뿐..
어찌된 일인지 묻자 남은 시간은 대체휴무로 빼줄테니 그리 알랍니다.
사람 모자라 매번 초과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이 무슨 수로 그 대체휴무 씁니까?
혹여 하루쯤 쓰겠다 해도 날아오는 칼 같은 시선과 질책..
가족의 부고를 듣고서 제일먼저 걱정했던건.. 내 시간을 누가 채우지..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말끝에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를 나와 생각하니 부당하고도 억울했지만
 다시 생각하기도 싫던 일이기에 눈도 귀도 닫고 떠올리지 않았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회식자리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후배를 밀어넣을 수 밖에 없고,
한정된 소모품을 사용하다 사라지곤 하는 물품을 사비를 털어 채워넣고,
근로시간에 대해 정당히 보상받을 수 없던일이 과연 누구 한사람만의 일일까요?
 
현장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의료인으로서의 헌신을 바라며 조용히 그저 참고만 살라 가르치던
그분들은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떠나는 자리를 채워 넣기 위해 간호대학의 정원이 늘어났지요..
 지금의 학생들은 더욱 가혹해 졌다고 들었습니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성적이 되지 않으면 국가고시에 응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쯤은 애교라더군요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다 보니 그만두어야 하겠더군요..
 다섯 살 큰애에게 어린이집 들러 동생 데리고 집에 가서 밥 챙겨먹으라 해놓고
병원에서 근무 때문에 시간내기 어려운데 아픈 작은 녀석 큰애가 데려가 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제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밖에는 들지않아 그만두었지요.
 
그나마 출퇴근과 주말이 있는 지역사회로 나와 들어간 보건소 기간제 자리...
처음 몇 달은 "그래, 적은 월급이지만 애들 재우고, 어린이집 데려갈 수 있는것에 만족하자" 하며 다녔지만
10개월 뒤에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똑같은 월급이지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다른 보건소에 취업하며 돌아다니기를 몇 년,
계속고용을 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해 말했더니
동네 널린것이 간호사고 그런 말 안하고 조용히 시키는대로 실적 쌓을 수 있는 간호사들 많으니
다른데 가서 일하고 싶으면 그런 소리는 안 하는게 좋을 거라는 충고가 돌아왔지요
 
지긋지긋한 임상 못견디겠어서 나왔더니 어딜가도 똑같더군요
간호사들을 위한 정책과 교육, 이제 간호사들은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버텨내는것만으로도 버거우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본인의 권리와 근로자로서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교육에 반영하고,
 임상에서 권력과 지위에 눌려 희롱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위해 병원환경을 개선하고,
간호수가를 높이고 부족한 대체인력을 충원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주겠지.. 누군가는 이루어지겠지 라며 바라기만했습니다
 
우리 후배들.. 정말 미안합니다. 선배들은 그것이 당연한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낼 줄도, 행동할 줄도 몰라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일이 있게 만들어서 너무나 미안합니다.
지금의 이 시간이 아프지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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