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부관.근흡.주설열전(傅寬.靳歙.周緤列傳)
한고조가 한중에서 나와 삼진을 평정하고 항우와의 싸움을 벌일때 고조는 항상 악전고투 하며
승패를 거듭하는 악전고투를 끊임없이 벌였다.
한신과 조참등의 명장들이 여러 제후들을 정벌할때에도 항상 어려움은 있었고
나중에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는경포나 위표.팽월등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대장군들에 비해 명성의 크기는 뒤떨어지지만
항상 싸움에 나가면 승리하는 몇몇 장수가 있었다.
이들은 고조의 명을 받들어 진나라를 무찌르고 항우를 깨뜨리는데에도 큰 공이 있었지만
묘하게도 큰 패배 없이 매번 승리하여 그 공로가 지극했으며
그러면서도 한번도 고조를 배신하지 않고 종신토록 의심 받지 않았으니
이또한 하늘이 준 복이 아닐까 한다.
진과 초 의 사정을 상세히 알고자 하면 오직 고조가 제후를 평정할때 항상 그 곁에 있었던 괴성후 에게
의존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이 세사람의 장수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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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곤욕 차역천수야(未嘗困辱 此亦天授也.)
양릉후 부관(傅寬)은 위(魏)나라의 오대부인 기장 출신이었다.
패공을 따라 그의 가신이 되었다.
횡양에서 봉기하여 패공을 따라 여러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그로인해 경 의 작위를 받았다.
패공을 따라 패상에 이르러 패공이 한왕에 오르자 부관은 봉지를 받고 공덕군에 봉해졌다.
한왕을 따라 한중에 들어가 우기장이 되었고 삼진을 평정할때 세운 공으로 조음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한왕을 따라 항우를 치고 회땅에서 한왕을 기다린 때문에 통덕후 에 봉해졌다.
회음후 한신의 휘하에 소속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전해의 군대를 추격했다.
상국 조참에게 소속 되어 박 땅을 공략하고 식읍이 증봉 되었다.
제나라를 평정하는데 공이 높았기때문에 부절을 나누어 받고 봉을 받아 그 작위를 세습할수 있게 되었다.
부관은 제나라의 우승상이 되어 아직 항복하지 않은 전횡의 역습에 대비 했다.
진희가 모반 했을때 태위 주발에 소속 되어 상국의 자격으로 번쾌를 대신해서 진희를 쳤다.
부관은 대나라의 승상이 되어 변방의 수비를 튼튼히 했다.
부관은 효혜제 5년에 죽었다.
시호를 경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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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후 근흡(靳歙)은 시종의 자격으로 패공을 따라 완구에서 봉기했다.
제양을 공격하고 이유의 군사를 격파했다.
진나라군사를 공격하여 기병1천을 사살하고 장수한명을 베었으며 수급57개를 베고 포로73인을 잡아서
그 공으로 작위와 봉읍을 받아 임평후라 하였다.
근흡이 패상으로 돌아온후 패공이 한왕이 되어 근흡에게 건무후 의 작위를 주었다.
기도위가 되어 한왕의 군사를 이끌고 삼진을 평정하는데 공이 높았다.
한왕을 따라 동진하여 초를 쳤으나 오히려 패해서 옹구로 물러나서 농성 했다.
한왕이 조나라를 평정할때 적장을 베고 여러 성을 항복시켰다.
한고조를 따라 진 땅에 이르러 초왕 한신을 사로잡았다.
이로인해 할부를 갈라 작위가 대대로 세습되고 식읍 4천6백호를 받고 신무후로 봉해졌다.
한왕 신 의 모반을 평정할때 공을 세워 거기장군이 되어 양.조.제.연.초 의 모든 거기를 통솔 했다.
진희를 치고 경포의 모반을 정벌할때 공을 세워 5천4백호의 식읍을 증봉 받았다.
근흡은 여태후 5년에 죽고 시호를 숙후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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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성후 주설(周緤)은 패 땅 사람이다.
패공을 따라 봉기하여 유방의 참승이 되었다.
주설은 패공을 따라 패상으로 들어갔고 촉한에도 따라갔으며 삼진을 평정 할때도 한왕의 곁에 있었다.
지양을 식읍으로 받았다.
주설은 모든 전투에서 한왕의 옆에 붙어 있으면서 전세가 유동적이어서 한군이 불리할때도
한왕을 절대 이반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왕은 주설에게 3천3백호의 식읍을 주고 신무후로 봉했다.
한12년에 고조가 주설을 괴성후에 봉했다.
노쇠한 고조가 몸소 진희를 정벌 하려 친정 하려하자 주설은 울면서 간했다.
"일찌기 진나라가 천하를 병탄할때는 황제가 친정을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아직까지도 친히 출정 하려 하시니
수하에 부릴만한 장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고조가 주설이 자기를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주설에게말했다.
"주설은 짐을 이리도 사랑하는구나.
앞으로 그대는 궁에 들어설때 종종걸음으로 달리지 않아도 되고
살인을 한다해도 사형당하지 않는 특전을 주겠다."
주설은 효문제 5년에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시호를 정후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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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이렇게 말하였다.
양무후 부관과 신무후 근흡은 모두 고관의 자리에 있었다.
고조를 따라 산동에서 봉기하여 항우를 치고 적장을 주살하고 군사를 격파하고 성읍을 함락시킨것이
수십건이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궁지에 빠지거나 치욕을 당한일이 없으니
이것은 하늘이 준 행운일 것이다.
괴성후 주설은 마음가짐이 굳고 바른 탓으로 한번도 의심을 산적이 없다.
고조가 친정할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때가 없이 마치 상심한 사람처럼 하였다.
돈독하고 후덕한 군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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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부관.근흡.주설등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 보았다.
다른 열전에 비해 내용이 매우 부족하고 설명이 간략하여 그저 ㅡ언제 어디에서 어떤 공을 세웠다ㅡ
하는 내용 뿐이다.
사실 필자또한 이들의 이야기를 이 사기열전 말고는 듣고 본적이 없어 추가하여 설명할 내용도 없다.
다만 이 세 장수가 일찌기 몸을 일으켜 고조를 따라 천하를 평정할때 공이 매우 높았고
단 한번도 두마음을 먹은 일이 없으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곤궁에 빠지거나 치욕을 당한일이 없다고 하는점이
매우 인상적이라 생각한다.
급박한 전쟁터를 횡행 하다보면 때로 위기와 곤경에 빠지는것이 당연지사 이거늘
어찌 단한번도 그러한 위기를 겪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마천이 말한대로 그것이 하늘이 준 행운이라면 이또한 대단한 행운이라 아니할수 없을듯 하다.
무릇 왕후장상과 필부를 막론하고 실력이 가장 중요한것은 분명하지만
하늘이 주는 행운이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