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서는 궁월군을 백제계로 표현하면서 120현(과장을 고려하더라도)을 데려왔다고 나온 것과 중국계를 나타내는 진씨를 굳이 따로 표현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진씨르 신라계or가야계로 나타낼려면 기교적인 방식이 필요하긴 하겠지요...) 일본서기의 기년조작이야 워낙 유명하므로 논외로 치더라도 일본서기의 기년조작과 천황들의 인위적인 재위기간 조정까지 감안할 경우에 삼국사기 아신왕조에 나오는 백제의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하여 호구가 줄어들었다고 표현한 것을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신라를 가야와 통합되기 전의 신라로 인식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삼국사기에서 가야의 역사를 신라의 역사로 속하기 위해 신라라는 -일본서기에선 신라의 방해로 가야지역에 머물고 있다면서 백제에서 도망친 유민들이 전하지요.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낙랑대방에서 건너온 중국계 백제인들일 것입니다.- 의도적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봅니다. 긴메이 천황시기에 보이는 기지부도 백제계였고, 진씨로 나타나므로 하타=진=하다씨를 오히려 백제에서 건너온 백성들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120현이라고 적을 만큼 엄청난 숫자들의 백성들이 건너왔으니 말이지요. 이 정도 규모라면 백제계라는 일본서기의 표현과 백제의 호구가 감소했다는 삼국사기 백제편과 위지 한전 진한조 -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중략) 옛날에 진나라의 요역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하여 왔을 때,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나누어주었다. (중략) 낙랑사람을 아잔이라고 하는데, 동방인은 나를 말할 때 아라고 하므로 낙랑사람들이 본래 그들의 잔여사람임을 말한다. 라고 하므로 진한의 중국계는 처음부터 진한으로 온 것이 아니고, 낙랑군에서 일부 진나라 유민들이 진한으로 내려와 살게 된 것입니다. - 그리고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4년 조(고구려의 낙랑 습격으로 낙랑사람들이 신라의 6부에 흘러들어갔다는 기사)까지 고려해본다면 궁월군과 인부들까지 싸잡아서 신라계 가야계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령 신라 가야의 백성들이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하더라도 기록에서 드러나듯이 주류는 백제계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