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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여성과 군대와 혐오에 대해.
게시물ID : phil_16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ung.K
추천 : 0
조회수 : 88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0/01 17:26:37

얼마 전, 여성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소리를 들었다.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별 의미 없이 지나가듯 한 말이었지만 나는 거기서 그녀의 군대에 대한 경험적 무지와 거부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을 말하려던 나는 가벼운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겪는 고통과 부당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는 의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아니, 설명한다 하더라도 대체 그것이 그녀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경험적 인식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그녀의 관점에서, 군대란 남자들을 병들고 다치게 하는 부정적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남자들이 군대 가서 병들고 다쳐서 나오는 것을 부정할 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곧이어 작금의 일련의 갈등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야기는 군대란 좋지 않은 것이라는 '공통' 인식에서 시작한다.
이른바 혐오시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내가 가고 싶지는 않은 곳.
조금 SF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것을 전 국가를 커버하는 도시 규모의 거대 발전소라고 가정하자.
이 거대 발전소는 근무조건도 열악하고 월급은 최저시급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교도소보다도 못한 강제수용소이다.
그런 발전소를 어느 '특정 도시'의 주민들만이 강제적으로 약 2년 동안 근무해야만 한다.
그 지역 주민들은 전 국토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 주민들은 발전소 근무자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들을 좋아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근본적으로 혐오시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른 지역 주민들은 발전소와 발전소와 관련된 경험들을 자신의 눈과 귀에서 치워두고 싶어한다.
발전소 근무자들이 발전소에서 일한 수료증을 가지고 발전소도 아닌 사회에서 우대받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다녀온 게 뭐가 자랑이라고."

다른 지역 주민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발전소와 관련된 것들이 자신들의 삶 속으로 흘러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똥은 똥통에 있기를 바란다. 똥 푸던 사람이 자신의 옆에 올 때는 깨끗이 씻고 오기를 바란다.
식사 자리에서 똥의 훌륭함과 의의에 대해 떠드는 식의, 밥맛 떨어지는 얘기는 제발 좀 다물어주었으면 한다.
똥통에 빠져 사투를 벌였던 이야기를 즐겁게 떠드는 정신머리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그들은 남성이 군대의 짬내를 깨끗이 씻어내고 오기를 바란다
그들은 남성이 군대를 나쁘고 하찮은 것이라고 동의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군대 경험은 사라지는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다.
인정 받아야 하는 봉사이며, 존중 받아야 하는 희생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것을 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어쩌면 작금의 난장판의 시작이지 않을까.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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