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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자존감과 염치
게시물ID : phil_166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1
조회수 : 90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8/28 14:21:32
우리는 수치심은 크게 두가지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수치심은 자존감과 관련된 맥락에서 나온다. 열등감, 모욕감, 자괴감, 쪽팔림 등이 같은 맥락이다.
둘째로 수치심은 염치와 관련된 맥락에서 나온다. 양심의 가책, 부끄러움 등이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자기존재의 가치를 뜻하는 "자존감"은 의미상 염치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치심의 사전적 의미인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만으로는 이런 맥락들을 설명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 
본인은 수치심을 "자신의 약점정보를 접한 다른 존재에 의해 자신의 능동성이 억압될 가능성을 인식하는 마음"으로 재해석 해본다. 

누구나에게는 자신이 "다른존재"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으면 하는 것과 관련해서 원초적 기대사항 같은 것이 있다.
실제 있는 그대로라도 보여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보다 더 신중하고 확실한 사람으로, 또는 더 양심적이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약점정보"는 그런 "인간에게 있는 자신의 기대사항과 관련된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불리하게 하는 정보"이다.
정의상 누구라도 약점정보라면 누구에게라도 노출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예컨데 누군가가 미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앞에서 방구를 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존재에게 이 방구행위는 자신의 약점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방구를 낀다면
이것은 그 존재가 간단한 자기통제나 조심성등도 떨어지는 허술한 사람일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가능성 정보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기대사항과도 대치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치심은 자신의 이런 약점정보가 다른 존재에게 노출된 상황에서의 마음이다.
구체적으로 그 마음이 어떤것인지는 위 상황을 가져와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경우 방구때문에 허술하거나 기본적인 조심성도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상황에 놓인
그 방구쟁이는 처음보는 상대방에게 위축될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타인에게 자신의 깔끔함이나 확실함을 내세워야 하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상대방과의 교감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고, 자기 주도식의 능동적 교감에 불리한 상황이 되버렸다.
즉, 어떤 존재와 교감 상에서의 약점정보 노출은 교감에서의 자기능동성 억압으로 연결이 된다. 

다만, 방구 그 자체가 약점정보는 아니다.
예컨데 같은 방구라도 매일 보는 가족앞이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가족은 자신을 충분히 파악한 존재이고, 또한 파악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을 불리한 상황으로 몰고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즉, 가족에게라면 방구는 기대사항과 관련된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불리하게 하는 정보는 아니기 때문에 방구는 약점정보가 될수 없다. 
방구는 전혀 자신을 가족과의 교감에서 불리하게 하는 것이 아닌 상황인 것이다. 
반려동물이나, 한없이 만만하게 보는 타인(예컨데 과거의 노예)에게도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은 자신의 약점정보를 파악할 능력이 않되기 때문에 방구는 약점정보가 될수 없다.
노예의 경우 기대사항 자체가 없는 미천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들에게는 기대사항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방구는 약점정보가 될수 없다. 

지금까지는 수치심을 헛점정보 노출로 인한 낭패성 쪽팔림과 같은 상황에서의 수치심으로 한정된 예를 들었다.
즉, 지금까지는 수치심은 곧 쪽팔림과 같거나 비슷한 의미이다.
그러나 수치심 상황에서 나올수 있는 감정이 쪽팔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으로 모욕감으로 연결될수도 있다. 
앞서 쪽팔림 상황에는 본의든 아니든 자신의 처신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신의 처신, 자신의 의지, 의도와도 무관하게 자신의 약점정보가 노출되는 상황도 가능하다.
예컨데, 앞서 방구소리를 들은 상대방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퍼뜨린다거나
또는 누군가가 자신이 방구끼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서 주변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경우이다.
이 경우, 인간은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이정도는 낮다. 방구야 어차피 다 뀌는 것이니까.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자기만 알고 싶은 자기만의 개인정보란 것이 있다. 
예컨데, 드러나지 않는 신체적 결함이나 불행한 가족사, 가난.등등..
이런 류의 자기 의지와 무관한 태생적 특성이 노출이 되는 상황은 타인에게 자신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열등성을 인식시키며,
이는 자신 존재에 대한 가치, 즉 자존감에 대한 확신을 떨어뜨리며 자신의 능동성을 자신있게 발휘하는 것을 억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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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서야 본론으로 넘어가서 염치나 양심은 수치심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는 "수치심을 모르면,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또는 "인간에게라면 수치심, 부끄러움을 알알야 한다." 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할수 있다.
이는 수치심에서의 "다른 존재"에 가상의 절대자 또는 자기신념을 놓으면 된다. 
즉, 수치심을 "자신의 약점정보를 접한 "다른 존재"에 의해 자신의 능동성이 억압될 가능성을 인식하는 마음"으로 정의했는데
그 "다른 존재"가 타인이나 반려동물이 아닌 절대자, 또는 자기 자신인 상황이라면
여기에서 오는 수치심은 염치나 양심과 연결이 될수 있다. 
예컨데 어떤 절대자에 귀의한 믿음에서, 또는 자기 스스로의 깨닳음으로 부터 
자신은 절대자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어하는 기대사항을 가정할 수 있다.

이런 절대자 또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사람이 뜻하지 않은 착각이든, 우발적인 실수든, 마음이 흔들려서간 그런 기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을 했다고 치자. 
이 경우 설사 그 어떤 다른 사람도 자신의 부조리를 목격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자신은 수치심을 느낄수 있다.
여기서의 기대사항이 타인에 대한 기대사항이 아닌 절대자나 자기 스스로의 믿음에 대한 기대사항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절대자라면 이 경우 절대자가 무서울것이다.
절대자는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절대자의 뜻을 거역한 것에 대한 처벌?이 무서운 것이다.
즉, 절대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하늘 무서운 상황이며, 하늘 무서운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또는 기대사항이 자기믿음에서 온 것이라면, 자기부조리로 인해 그동안에 누렸던 완결함에서 오는 평안함과 편안함은 위협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이전처럼의 떳떳했던 자신의 행보를 억압하며 불편하게 할 것이다.

문제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도, 그런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는 사람은
양심없는 행동을 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 처벌만 피할수 있다면 편법이든 불법이든 동원해서 거리낌 없이 파렴치한 행동을 하게 되고
선량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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