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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양심
게시물ID : phil_16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ishCutlet
추천 : 4
조회수 : 1153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8/07/22 01:52:38
양심적 병역거부가 곧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
사실 현역병들에게 박탈감을 안기지 않으면서, 합리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자기 목숨만 소중한 주제에 종교를 내세워 양심을 운운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미움받고 혐오 당해 왔다.
그들이 자신의 양심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도 의무를 다하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고려하는 것 자체가 무가치하고 혐오스러운 일로 취급 당해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혐오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하는 이들에게 지나친 억압일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낭비와 손실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 대체복무제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효용성이 있는지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받아왔던 혐오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해보자.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덮어놓고 싫어한다. 혐오한다.
그 논리는 너무나 명료할 정도로 단순하다.
'너네가 양심적이라서 군대를 가기 싫은 거면, 우리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가서 뺑이치면서 사람 죽이는 연습하는 줄 아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즉 사상, 가치관, 신념 등을 형성하고 결사, 표현할 자유를 뜻한다.

나는 병역거부, 정치불참, 수혈거부 등을 교리로 삼는 종교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양심에 따라 내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한편으론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이들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심적이란, 누가 착한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이냐 하는 수준낮은 이야기가 아니다.
양심은 각자가 가진 신념과 사상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며, 각자가 가진 양심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받아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양심을 지키기 위해 꽤 많은 것을 희생한다. 설명하자니 구구절절 너무 길어서 생략하지만,
간략히 말하면 적어도 군대가기 싫어서 그 종교로 개종하겠다는 멍청이는 단 한명도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가혹한 조건이다.
그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이는 것 또한, 군대가는 대신으로 대체복무를 택할 멍청이가 없을 정도의 진입장벽을 갖춘다면 사회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서 그들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어떤 혐오를 받아왔는지,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 있는지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누구도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쉽게 매도하고, 쉽게 혐오함으로서 자신이 가진 박탈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이들을 설득해서 실리적이고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양심'이라는 표현을 포기하고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등 적당한 대체단어를 만드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남의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이 글의 제목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군인의 양심이다.
국방의 의무를 지닌 시민이자 법질서에 의해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는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는,
과연 국가의 이익과 질서라는 명분 앞에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보호받고 지킬수 있는가.


추상적이고 현실감 없는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다.
국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린 것이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패한 정권이 친위 쿠테타를 계획해 그 국민들을 진압하려 했다는 사실이
증거를 통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부패한 정권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야 하는 군인들은
인격 없는 정권의 도구가 아니라,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인 또 다른 국민들이다.
불과 1,2년 전이라면, 또는 1,2년 후라면 그들도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왔을지 모르는 이들이다.
이들은 어쩌면 자신의 친구를 향해, 가족을 향해, 이웃을 향해 총을 쏘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실제로 여러번 반복되었던 일이다.
그들이 친구나 가족을 쏘기를 주저할까봐 다른 지역 출신으로만 구성된 부대로 진압했던 역사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과연 이들이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양심에 따랐다면
그러한 참상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일원화된 명령체계, 지휘의 효율성이라는 명분에 따라 명령권자가 내리는 명령 앞에서,
국가의 이익이라는, 때로는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대의 앞에서
개개인의 양심은 무력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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