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성립한 조선왕조는 명나라에 옥새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옥새를 하사 받아 일종의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것.
이때부터 조선왕조의 옥새는 중국으로부터 하사 받는게 관행이 됐다.
조선 왕조는 이 옥새를 중국과의 외교문서 등에 사용했다.
당시 옥새에 들어있는 영물은 거북이다.
중국의 변방의 제후들에게 내리던 상징물에 들어있는 영물이 거북이로 이는 '복종'을 뜻한다.
세종 조에 들어와 한때 '우리 옥새를 만들자' 라는 애기가 있기도 했었다.
조선왕조가 나름대로 만들어(옥새는 중국에서 내려준 것 외에도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제작돼 사용됐다.) 사용했던 옥새에 들어있는 거북이 모양을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도 눈에 띈다.
중국과의 관계에 따라 거북이가 머리를 치켜드는 것에 차이가 있는것.
중국의 세력이 약화되고 조선왕조가 주체성을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머리가 올라갔다.
고종은 "(옥새의)거북이만 보면 신물난다."며 상징물을 바꿨다.
중국과 관계없이 우리 국새로는 처음으로 제대로 만든 것이 1887년 옥새다.
고종은 조선왕조가 독립국임을 만방에 선포하며 용을 상징물로 해 옥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해방이후와 1963년 국새가 제작된 데 이어 1999년에 들어서야 국가적 차원에서 국새를 만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