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양국간 논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고 비역사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2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2천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얘기이지요. 가장 비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논리를 역사학자들이 전개하고 있다는 코믹한 상황이랄까요."
- 근대국민국가의 개념틀로 고구려사에 접근하면 안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겁니다. 한반도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건 20세기 초였거든요. 북한의 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마음대로 의역을 해서 '민족'이라는 말을 뽑아내곤 하지만(웃음),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에야 생긴 개념을 고대사에 대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 고구려사에 국사의 틀로 접근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세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변경사(border history)입니다. 연구 대상이 어느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국가의 단위에 포섭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으로 보는 관점이죠. 그 안에서 문화적 긴장이 생기고 거기서 역동성도 생겨나는. 그러나 사실 200년 동안 근대역사학이란 게 국사의 틀로 짜여져 온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완벽한 대안이 나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은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법한 것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지요.
임지현 교수. 서강대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유학했다. <당대비평>, <역사와 문화> 편집위원. 대표작으로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이념의 속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공저)가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 스누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