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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안하무인 면접관에게 탄산수 기부하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soda_16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라내인생
추천 : 36
조회수 : 7063회
댓글수 : 110개
등록시간 : 2015/10/07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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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4. - 1.jpg

죄송합니다. 스압이 상당합니다.
글 마지막에 세줄 요약하겠습니다.


1. 발단

지난 주 어떤 회사 인사팀이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잡코리아 이력서를 봤는데 마음에 든다, 면접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이직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견업체나 헤드헌팅업체가 아닌
일반기업이 입사지원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면접제의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거든요.

저의 커리어를 좋게 봐주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해서,
금주 수요일, 즉 오늘 오전에 면접을 보는 것으로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2. 전개

면접 볼 회사까지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길래,
여유 있게 가는 게 좋겠다 싶어 1시간 30분 전에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하고 10분쯤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면접 전까지 포트폴리오를 아래 메일주소로 제출해주세요.'

메일주소를 보니 오늘 면접 보는 회사에서 보낸 문자 같기는 한데.. 나니?
당장 1시간 20분 후에 면접인데.. 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지금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라고?

'안녕하세요 금일 면접보기로 한 OOO입니다. 이미 면접장소로 이동 중이어서 포트폴리오 제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문자를 보내고 10여분이 지나도록 답이 없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면접 보기로 한 OOO입니다. 보내주신 문자 봤는데, 제가 이미 출발해서 포트폴리오 전달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냥 오시고, 면접 후에 보내세요."

"네 그럼 일단 면접장소로 이동하겠습.."

'뚝.'

아직 내 말 다 안 끝났는데.. 나니?
이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이미 준비 다하고 나와서 지하철까지 탔는데,
일단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3. 위기

회사 앞에 도착해서 최초에 면접을 제의했던 인사팀 번호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인사담당 여성분께서 면접장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마음이 좀 풀리더군요.
면접관이 오실 때까지 각 잡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2~3분 후 40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면접관께서 오시더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OOO.."

"(건성으로 답하며) 예예.. 근데 면접인데 굉장히 후리하게 입고 오셨네?"

참고로 면접 복장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화이트계열-!.jpg
(여기서 몸매만 아저씨로 바꾸면, 완벽합니다.)

IT기업 면접보러 다니면서 대놓고 복장 지적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면접에 적합한 복장이 아닌 건 맞겠다 싶어 바로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무난하게 입고 온다는 게 그만.."

"아니 정장까지는 아니어도 청바지는 좀 그렇지 않나? 면접 많이 안 보셨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 점수 많이 까이겠다..' 생각하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3. 위기

"82년생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몇이죠?"

"네, 서른 넷 됩니다."

"응~ 그래.. 졸업 전에 다닌 △△△(유명 IT대기업)은 정규직이었나?"

"아, 아닙니다. 당시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계약직 개념으로 다녔습니다."

"응, 그렇지. 정규직 일리가 없지.."

"..."

"자소서 보니까 기획 말고 html이나 포토샵도 할 수 있다고 적어뒀던데, 그럼 일 맡기면 혼자 기획하고 개발하고 디자인까지 다 할 수 있어요?"

"아 네, 가능은 합니다만 전문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직업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최신 기술이나 트렌드에 맞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럼 여기 적어두면 안되지."

"..."

"총 경력이 5년 좀 넘는데, 벌써 차장까지 달았네? 그럼 전 회사 팀장은 부장이었나?"

"이전 회사의 직급년한이 좀 짧은데다 좋게 봐주신 덕에 빨리 진급한 것 같습니다. 명목 상 팀장직책은 사장님께서 맡고 계셨고, 실질적인 관리 업무는 제가 했습니다."

"그래 뭐, 전 회사에서 워낙 잘~하셨으니까 차장까지 다셨겠지만, 우리는 체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OOO씨는 입사하면 대리 이상은 못 달아요. 내가 지금 경력 17년차에 부장인데, 5년하고 과장 차장 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그치? 그리고 내가 여기 기획팀 관리자인데, 우리 팀에 부장 차장급들이 많기 때문에 OOO씨가 입사하면 허드렛일이 많을 거야, 그런 건 괜찮아요?"

"네, 당연히 회사 체계에 따르는 것이 맞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장 때문에 심사가 튀틀리셔서 그런 건지, 어째 말투가 계속 비아냥이시더라고요.

포커페이스 유지하면서 무난하게 답변을 해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속에서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4. 절정

"OOO씨, 전 회사에서 연봉은 정확히 얼마 받았어요?"

"아, 죄송합니다만.. 연봉은 개인비밀이라 인사담당자하고만 논의 할 내용이 아닌지요..? 대략적인 희망연봉은 이력서에 기재해두었습니다만.."

"(피식 웃으며) 아니 입사하면 내가 관리자가 될 거니까 당연히 내가 정확히 알아야지, 면접 많이 안 다녀봤어요?"

이때였습니다. 제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낸 게..

"인사팀을 통해서 각 팀장급들이 팀원들 연봉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어떤 회사에서도 구체적인 연봉을 관리자에게 얘기한 적이 없는데요. 그리고 죄송한데, 저 이 면접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에? 왜요? 지금 연봉 물어봐서 이러는 겁니까?"

"아침에 포트폴리오 보내라고 연락하신 것, 팀장님 본인이십니까?"

"네, 전데요."

"제가 먼저 이 회사에 입사지원을 한 것도 아니고, 만약 기획직무를 잘 모르는 인사팀이 무작위로 구직자에게 면접제의를 했다손 치더라도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제 이력서를 검토하실 여유는 충분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력서에 뻔히 있는 내용을 묻는 것도 모자라서, 면접 당일, 그것도 면접 시작 1시간 20분 전에 요청도 아닌 통보 식으로 포트폴리오 제출하라고 하지를 않나, 면접자리에 앉기도 전에 복장을 지적하지를 않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팀장님 본인께서는 지금 그 복장이 면접관에게 적합한 복장이라 생각하십니까?"

참고로, 면접관의 복장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아저씨.jpg
(여기서 남방만 알록달록 체크무늬로 바꾸면, 완벽합니다.)


5. 결말

"아니, 나야 면접관이고! 본인은 면접을 보러 온 건데.."

"제 청바지를 지적하시려면 최소한 본인도 청바지를 입지 않으셨어야죠. 저는 취업이 아쉬운 면접자라서 팀장님께 깍듯이 예의를 갖춰야 하고, 팀장님은 선발권을 가진 갑이기 때문에 제게 막무가내로 대해도 된다는 겁니까? 이 업계에서 5년 넘게 일해왔고, 면접도 많이 다녀봤고요. 협력사 입장으로 이런저런 고객사 분들과 미팅도 많이 해봤는데 오늘 같은 모욕감은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 같은 관리자 밑에서 일할 의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면접을 더 이상 보기가 싫다는 겁니다."

"... 하 참 나.. 그래요 그럼 그러세요."

"네, 피차 시간 낭비만 된 것 같아 유감이네요. 그리고 가지고 계신 이력서, 그거 제거니까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

이러고 면접관 앞에 놓여있던 제 이력서를 한 손으로 확 낚아채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습니다.
뒤통수에다 대고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그냥 개소리다 생각하고 직진했어요.


6. OUTRO

'갑질'이라는 건, 날 때부터 재벌인 땅콩여사 같은 분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 새삼 느꼈습니다.

본인도 하루하루 벌어 먹는 월급쟁이일 뿐이면서..
직급이니 직책이니 갈라서 자기보다 연차 적은 사람들에게 갑질을 해대는 꼴이라니..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더니, 참..


※ 세줄 요약

1) 입사지원도 하지 않은 회사에서 먼저 면접을 제의 함.
2) 면접관이 면접 한 시간 전부터 무리한 요구. 면접 내내 복장 지적 및 커리어 개무시.
3) 열 받아서 면접관 쏘아붙이고 면접관이 가지고 있던 내 이력서 낚아채서 가지고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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