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생략 -
즉, 결론은 간단하다.
아이를 낳는 것은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이 되고 있다.
농경사회처럼 아이를 낳아 시킬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교육비 명목으로 막대한 재산을 소모해야 한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더 이상 점유할 자원이 없다. 낳은 아이가 성장한다 하더라도 일가의 총 재산이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낳으면 낳을 수록 부모는 점점 더 가난해져 갈 뿐이다.
하물며 애정과 사랑으로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 독립시킨 헌신적인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쓸쓸한 죽음 뿐이다.
그렇게 키워낸 아이들 또한 각별한 관심과 인내가 필요한 자신의 부모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롭게 죽을 거라면,
돈이라도 쓰다가 죽겠다는 선택은 이상하지 않다.
이제는 결혼 또한 매력적이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뿐더러, 우리가 결혼을 위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손실 또한 가볍지 않다.
1억 2천이라는 결혼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재미있는 것들을 하며 삶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누군가가 "결혼을 포기하면 10년 동안 매달 100만원을 주겠다." 라고 속삭이는 셈이다.
심지어 우리는 삶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를 위해 살아간 아이들에게 "가정은 행복한 것이다." 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에서 살아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결혼해서 가정을 만들어야지." 라는 요구가 짐덩이 이외에 무엇일까?
입시와 사교육과 취업의 연옥을 지나, 회사와 국가의 가축이 되어 젊음을 바치는 삶을 대대로 계속하라는 것인가?
"아니, 그것은 부당하다."
그렇게 외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아이를 낳아 키워 일가의 재산을 늘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아이를 낳이 키워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결혼하여 살림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보다 여유로운 삶을 약속한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 행복을 다시 한 번 만들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겨울을 맞이하는 수펄처럼,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유전자를 근절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