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오래 전, 제가 멋도 모를 실습생 시절에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편찮아지셨더랬죠...
외가쪽에서도 작은 이모님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아오셨고, 또 제일 각별하게 모셨기에
치료도 작은 이모님께서 전적으로 도맡으셨답니다.
작은 이모님은 한방 맹신론자였어요.
그때 호흡기내과 실습 돌 무렵이었나..
실습 돌고 친구들과 거하게 술마시던 참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얼른 병원으로 오라고! 외할아버지 안좋아지셨다고!
그래도 꼴에 집에서는 의학이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저라서 급하게 호출을 한 것 같았지만
실습생 주제에 뭘 알겠습니까. 그냥 삐악거리는 병아리였죠 뭐.
당시 외할아버지께서는 모 지역 대학교 한방병원 (참고로 여기는 양/한방 협진 없었습니다. 의대 없는 단독 한의대) 에 계셨는데
가서 본 X-ray 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양쪽 폐가 전부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폐 음영이 보이지 않았어요.
산소 포화도는 85%?
제가 뭘 압니까. 그냥 하얀가 보다. 안좋은가 보다.
이러고 저도 어이쿠 부모님 이거 진짜 안 좋은 거에요 ㅠㅠ 폐가 안보여요 ㅠㅠ
원래 여기 폐가 까맣게 보여야 하는데 양쪽 다 안보여요 ㅠㅠ
이러고 술먹고 와서 막 울었고
결국 2일 정도 후에 외할아버지는 호흡 곤란으로 돌아가셨어요.
나중에
1년차 레지던트를 돌면서 화가 나더군요. 저 자신한테요.
그 때 외할아버지 양쪽 폐에서 물만 빼냈어도 - 바늘을 꽂던 튜브를 박던 -
호흡곤란은 확 사라졌을 텐데...
그리고 2년차 올라가면서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드렸더랬죠.
그 때 제대로 된 처치 받았으면 외할아버지 더 사셨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모님께는 한 번도 말씀드린 적 없어요. 죄책감 받으실까봐.
뭐 어쨌건, 그 당시 연세가 86세 이셨고, 설사 양쪽 폐에서 물을 빼내 호흡곤란을 해결한다 해서 얼마나 더 사셨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마 심장이 좋지 않아서 물이 고였던 것이라고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납니다..)
그래도 항상 그 때 기억이 뇌리에 남아있네요.
무식해지지 말자.
내가 무식하면 누군가 죽는다.
더불어,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는 것도 굉장한 죄악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 무지로 인해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