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너무 싫어요.
벌레가 기어간 곳은 물론이고 벽이나 물체에 가깝게 날아다니면 괜스레 그 벽과 물체들이 그렇게 만지기 싫더라구요.
아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너무 찝찝해서 손을 닦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왠 날벌레 한 마리가 변기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제 초점에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더라구요.
그렇게 바라본 녀석은 변기와 세면대에서 제일 닦기 힘든 부분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어요.
사실 제 눈이 또 다시 놓친 것이겠지만 제겐 왠지 그렇게 느껴지더라구요.
화장실 몇 번 더 왔다갔다하면서 결국 닦기를 결심했어요.
전 돈슨의 노예라서 주말 이벤트를 챙길 것을 생각하고 부모님 잠드신 새벽에 닦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적 갈등을 겪었어요.
"따스한 물로도 충분하지 않나? 차가운 물로도 충분하지 않나? 아냐, 둘 다 물일 뿐이지 세척을 위한 비누나 세제나 락스를 가진 건 아니야."
사실 물로만 해결하고 싶었는데 결국 저의 내적 갈등은 비누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짧게는 두 시간 반 가량을 비누칠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비누칠하느라 생겨버린 후폭풍들을 해결하는데 30분을 더 소비한 것 같구요.
정말 저 같은건 왜 사는가 싶었어요.
'고작 벌레가 뭔데 나는 이런 븅신 짓을 자초하는 걸까 ㅎㅎ'하면서 계속 저는 숨쉬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생각했어요.
강박장애를 핑계로 외출조차 못한다고 주장하는 은둔형 폐인이기도 해서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거든요.
청소를 마친 보상인지 벌레가 아직까지 눈에 제대로 보인 것이 없어서 기뻐해야될텐데 지금과 같이 화장실을 또 다시 고생해가며 스스로 청소하려는 자신을 떠올려보니 눈 떠있는 것 자체가 괴롭게 느껴지네요.
원래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점차 길어지네요.
청소하느라 지친 것도 있어서 여기서 마무리 하고 자고 싶어요.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