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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의 마음이 너무 궁금해요. 혹시 제 착각일까요?
게시물ID : gomin_16423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Ghua
추천 : 0
조회수 : 918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7/07 22: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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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오유님들?
살다 보니 이런 글을 다 남기게 되네요.
연애 안 한 지 오래된 데다가 엄청나게 소심한 중생이 쓰는
연애는 아직 하지도 않았으면서 연애와 관련된 고민글입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하다가 혼자로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익명의 힘을 빌려 글 남깁니다.
오유님들의 도움을 요청해요 ㅠㅠ



저는 현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직장에 다니고 있고,
이 직장에 출근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해오던 일이 아닌 새로운 직종의 일이라 아직 많이 서툴러,
제 선임에게 정말 많은 지도와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선임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선임이 저를 참 잘 챙겨줍니다.
가끔씩 정말 생불이 아닐까, 아니면 어디서 친절친절 열매를 먹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친절하고 때때로 깜짝 놀랄 정도로 세심하게 저를 돌봐줍니다.

갑자기 기억나는 일화가 있네요.
한번은 선임이 본인 책상으로 절 부른 후 제가 작성한 문건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줬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제가 안경을 안 가져왔습니다.
제가 평소에는 안경을 안 쓰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의 사물 또는 글씨를 보거나
글자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을 때는 안경을 쓰고 보는 편입니다.
그때도 안경이 필요한 상황인데 제 손에 없다보니
저는 선임 근처로 몸을 좀 더 붙이고 눈도 약간 찌푸린 채 모니터를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선임 눈에는 제가 불편한 것이 보였는지 '잘 안 보여? 안경 안 가져온 거야?' 라고 물은 후
모니터 화면을 확대하고서 제게 '이제 잘 보이니?'라고 다시 확인하더군요.
이때는 선임에게 특별한 감정을 아직 품지 않을 때라
그저 '아, 이 선임은 정말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다'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배려심 넘치는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이외에도 같은 실수를 몇 번 반복했을 때나,
아는 게 너무 일천해 선임이 봤을 때는 무척 하찮고 사소한 것조차 하지 못 해 끙끙대고 있을 때,
제 실수로 한두 번 선임도 혼나게 됐을 때
단 한 번도 속된 말로 저를 '닦달'한 적이 없습니다.
짜증을 낸다거나, 핏대를 세운다거나, 인신공격을 한 적도 없습니다.

사실 이쪽 계통이 문화나 업무 방식이 매우 험하고
심지어 종사자 대부분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거칠어지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그래서 후임이나 신입이 뭔가를 잘못하면
쌍욕이나 인신공격을 먹고, 때때로 손찌검을 당해도 당연시되는 관행이 있습니다.
(물론 이게 옳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 시작 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를 했지만,
선임이 워낙 잘해주니 초반에는 신기할 따름이었죠.

제가 사는 집과 직장이 멀어 출퇴근 왕복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되고,
비가 오거나 외근하는 날이면 3시간을 넘기도 하는데
가끔 선임이랑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신 날에는
제게 꼭 집에 잘 도착했는지 카톡을 보내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선임은 제게 주말마다 일과 관련된 지식이나 교양 강의를 해주기도 합니다.
제가 강의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갈 때면 역시나 도착 연락을 보내라고 합니다. 

제가 일 할 때 쓸 노트북을 사려고 할 때,
본인이 안 쓰는 좋은 노트북을 싼 값에 팔겠다고 한 후
정말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일할 때 필요한 온갖 프로그램과
선임 본인이 일할 때 참고하는 즐겨찾기 정보도 다 깔아줬습니다.
이쪽 계통 사람들은 정보가 곧 능력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 정보처를 알려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선임이 참 고마웠습니다.
여기에 선임은 같은 회사 다닐 때까지는 필요하면 무상으로 노트북 A/S를 해주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제가 비위가 약해 가리는 음식이 좀 많은데
그걸 알고는 제게 밥을 사줄 때마다 '이 음식은 먹을 줄 아냐'고 확인하고 사줍니다.



이런 일들이 자꾸 쌓여가니까
저도 모르게 선임에게 참 많이 의지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렇게 오유 고민게시판에 글을 남길 정도로 마음이 가게 됐습니다.



아마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글쓴이는 "둔한 거냐, 눈치가 없는 거냐, 아니면 진짜 멍청한 거냐"라거나
"'선임이 글쓴이 좋아함. 어서 사귀자고 말해라' 같은 반응 바라는 답정너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도통 이 선임의 속이 잡히지 않습니다.ㅠㅠ

선임은 다른 신입들에게도 친절합니다.
물론 제가 제일 늦게 들어와 손이 많이 가고,
이제는 직속 후임이다 보니 상황적으로 더 신경써주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신입 직원들도 닦달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그들에게 크게 화를 낸 적도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다른 신입들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떤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보이면 역시 친절하게 도와줍니다.

이렇다 보니 제게 도착 연락을 하라고 하는 것도
직속 선후임 관계로서 제가 늦게 들어가는 것을 신경써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트북 건이나 음식 취향 묻는 것도 원체 친절한 사람이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임이 제게 강의해주는 것도 선임 본래 성격으로 여겨집니다.
선임은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가르치는 행위를 무척 좋아해,
회사 일과는 별개로 스스로 사람들을 모아 가르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선임과 단 둘이 처음으로 술자리를 갖게 됐을 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날도 제가 모르는 게 많아 혼란스러워 할 때
선임이 옆에서 일일이 가르쳐주다가 회사에 단 둘만 남게 돼
선임이 저녁 겸 맥주를 사준 날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 아는 게 없어 스트레스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는데,
선임이 자기자랑 비슷한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풀어줬습니다.
그러다가 본인이 강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네가 원하면 네 공부도 시켜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필사적인 상황이라 바로 하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한 달에 2~3번 정도 제 주말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선임 말로는 다른 신입들한테도 비슷한 제안을 했는데 저만 하겠다고 했다더군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선임은 정말 남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친절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밖에도 저는 제가 도움 받는 입장인 만큼 선임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선임이 움직이기 편한 곳으로 1시간 30분 이상 이동해 강의를 듣습니다.
강의실로 쓰이는 스터디룸 비용도 많지는 않지만 제가 지불합니다.
(물론 사람 좋은 선임은 제가 강의 들으러 올 때마다 매번 미안해하고,
그래서 저녁은 항상 맛있는 것이나 제가 좋아하는 걸로 사줍니다.)

즉 약간 냉정히 보면 착한 선임 입장에서는 원래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데,
어떻게든 배워보겠다는 모자라지만 열정 넘치는 후임이 있으니
어차피 교육시킬 겸 주말 중 하루의 5시간 정도 시간 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 말로는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한테는 절대 시간이나 배려를 안 쓴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선임은 좀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제 머리를 스치고 갑니다.

다른 팀 선임과 제 선임, 저 셋이서 저녁 겸 술을 먹었을 때,
다른 팀 선임이 제게 "네 선임 이상형이 말 잘 통하는 여자다. 집안도 괜찮다"라며 만나보라는 식의 농을 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제 선임에 대한 기분이 잡히지 않았고,
본래 장난을 능숙하게 받아칠 줄 아는 성격이 아니라 어벙한 상태로 넘어갔습니다.
이제와서 떠올려보면 선임 이상형이 뭔지 알게 된 건 본의 아닌 수확이지만,
제가 그렇게 똑똑한 선임 입장에서 말 통하는 여자로 비춰질지 자신이 없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는 강의 자체가 워낙 재밌어서 선임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선임도 신이 났는지 두어 번 스터디룸 시간을 연장한 적도 있지만,
이 역시 '선후임 간 학구열'이 빚어낸 상황이지 '말이 잘 통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 진전 신호'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외근이 잦은 요즘에도 선임은 카톡을 이용해 친절을 발휘합니다.
오늘은 어디로 출장가는지, 일은 다 했는지 묻고, 가끔 장난도 치고,
온라인에 올린 제 문건을 틈틈이 확인한 후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고 수정 방향도 알려줍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 한 편은 '선임이 혹시 나에게 어느 정도는 호감이 있는 걸까' 싶다가도,
다른 한 편은 '아니야, 당연히 친철한 선임이니까 보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어'라고 착잡한 결론을 내립니다.

선임이 제게 보이고, 취하는 태도에 대체 어떤 의도나 마음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착각한 거라면, 이대로 제 마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덮고 가려고 갑니다.
이쪽 계통 세계가 생각보다 좁고, 좋은 선후임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직장의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도 않고,
또 예전과는 다른 관계 속에서 소심하고 생각만 쓸데없이 많은 제가 버틸 자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선임이 제게 마음이 있고-당연히 이런 방향을 바라지만-어느 정도 그런 마음을 담아 제게 잘 해준 것이 맞다면,
제가 좀더 용기내서 선임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오유님들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이 선임이 본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인 만큼 그저 제게 친절함을 발휘하는 것 걸까요?
아니면 제게 기회가 온 걸까요?
못난 중생은 답을 내리지 못 해 이렇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오유님들, 도와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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