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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은 "근대화"에 대한 이해 차이 때문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63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河伯之後◀
추천 : 13
조회수 : 920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4/06/14 07:53:43
기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시혜론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은 맞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처음 불거졌을 때 식민지 시혜론의 포장된 형태가 아니냐고 의심했던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이제는 이 둘을 별개로 취급합니다.
다만 식민지 근대화론이 주류 학계에서도 하나의 일리 있는 학설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자
뉴라이트 같은 식민지 시혜론자들도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코스프레를 시작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건 코스프레를 하는 놈들이 문제인거지 기존의 가치 중립적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학자들 잘못은 아니죠.)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은 다름아닌 "근대화"의 정의 문제에서 나옵니다.
 
일단 논의에 앞서 전제하자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처음 대두된 곳은 역사학계가 아니라 경제학계였으며, 여기선 어디까지나 "경제적 근대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데이터가 입증해 주듯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경제 지표 상의 변화가 명백하고,
일제는 (비록 식민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였긴 하지만) 여러 경제적 지표를 정확하고 꼼꼼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지표가 허위일 가능성도 적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경제학적 근대화"가 역사학에서 이야기하는 "일반론적 근대화"와 일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대에 경제가 워낙 큰 의미를 지니다보니 일반적으로 "근대화"라고 하면 경제적인 측면의 근대화를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대화"는 사실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근대화"는 경제 뿐 아니라 문화, 사상, 정치 등의 여러 분야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 헤겔은 "근대"라는 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종교개혁에 의한 사상적 자유.
2. 시민사회의 성립에 의한 사회적 자유.
3. 이를 통해 개인들이 각자의 목적을 마땅히 자유롭게 추구.
4. 1, 2, 3의 것들을 상호간에 조정하면서 권리로서 보증하기 위한 계몽.
5. 합리적으로 하나의 관계 = 국가를 형성하며 운영해가는 시대와 세계.
 
 
사실 역사적으로 근대의 중요한 의미는 다름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에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지배 아래, 정치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의 비호, 즉 왕권 신수설에 기반한 강력한 절대왕정 아래 억압되어 있던 "개인성"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 계몽주의 등을 계기로 조금씩 재발견되기 시작하다가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통해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근대의 중요한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황권과 왕권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약화되어 이를 대체하는 민족주의가 새로운 정치 이념으로 등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민주주의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며,
그리스도교라는 사상적/학문적 금제가 풀리면서 각종 실용 학문, 특히 자연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죠.
결국 이것은 중세의 "종교적 인간"에서 근대의 "합리적 인간"이라는 인간관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근대의 핵심은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이라는 정신적 변화에 있는 것이며,
경제 구조의 변화, 자연 과학의 발전,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 형성, 민주주의의 태동 등은 이러한 정신적 변화에 따른 연쇄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양 차례의 세계 대전을 "근대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체주의와 식민 지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등장하여 근대의 정신인 "자유로운 개인"이 또다시 억압되기 시작하였고,
세계 대전이라는 광기를 직면하면서 근대의 인간관인 "합리적 인간"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죠.
 
 
자, 이러면 이제 문제는 간단해집니다.
단순히 경제적 지표를 따졌을 때 "경제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경제적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상당히 유력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의미에서 뿐 아니라 문화적, 사상적으로도 일제 강점기의 조선을 "근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제 강점기의 조선에 "자유로운 개인"이 있었을까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시민 국가"였을까요?
일제 강점기의 조선에서 "민주주의의 태동"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주류 역사학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근대라는 시대, 그리고 근대화라는 개념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죠.
 
"기술 발전으로 인한 경제 구조, 사회 구조가 핵심이며 문화적, 사상적 변화는 이에 뒤따르는 것이다"라고 본다면 일제 강점기는 근대화의 시기가 맞겠죠.
하지만 "문화적, 사상적 변화가 선행하며, 경제적, 사회적 구조 변화는 이것의 현상적 발현이다."라고 본다면 일제 강점기는 근대화의 시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
근대의 진정한 가치, 근대의 정신과 근대적 인간관은 오히려 억압받고
단지 인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구조만 변형된 기이한 사회였을 뿐, 결코 근대 사회라곤 볼 수 없는 겁니다.
(물론 저는 후자의 견해이고요.)
 
결론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은 결국 다음의 질문으로 환원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과거보다 더욱 철저하게 억압받고, 민족주의는 커녕 민족 문화 자체가 말살되고, 민주주의는 싹조차 틔우지 못한 시대를
단지 경제적 지표상 근대화되었다고 해서 근대라고 불러야 하는가?"
 
 
 
저는 단언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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