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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근론에 대한 짧은 생각
게시물ID : history_16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pmc3
추천 : 3
조회수 : 757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4/06/13 00:02:00
개인의 의견이므로 역사적 진실과는 다를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 식근론에 대한 정의
 
식근론= 식민지 시혜론과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식민지 시대 근대화가 이뤄졌지만 일본 덕분이 아니며 당시 다른 열강의  식민지들도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혜론 = 조선은 일본의 훌륭한 정책 때문에 조선이 근대화되었다. 그 덕분에 인구도 늘고 경제적 발전도 가속화되었고 봉건적 잔재를 벗어날수 있었다.
 
2.식민지 시혜론은 인정받지 못한다.
 
식민지 시혜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병직 이었고 안병직의 뒤를 이은 사람은 이영훈이었다. 이영훈의 주장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으나 그 주장들은 역사학계 또는 개념있는 경제사가들은 인정하지 않는 논리이다. 게다가 대 다수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 전혀 들어맞지 않으며 학계의 사가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냥 미친 소리로 여긴다.
 
3. 식민지 근대화론 - 개인적 의견
 
식민지 근대화론은 여러 자료를 취합하여 근대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더 깊어져야 완벽한 결론이 나올수 있다 왜냐하면 한개의 통설을 세우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봤을때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본인의 입장은 매우 비관적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이라는 것이 시대의 발전 때문에 일어난 것 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그 당시 조선사람들의 기준에서 생각해보자. 역사는 때로는 지금이 아닌 과거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물질적 문명의 속도는 분명 가속화된 것이 맞다. 철도가 부설되고 전화가 만들어지며 병원이 개설되고 외국인이 한반도에 자유로이 왕래하였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의 개화의식은 과연 그러했을까 ? 물질적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적 문명이 서양문명에 비해 발달하였는가 ?
 
근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물질적 문명 경제적 번영 기술의 진보라고 명확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근대화의 과정이란 경제적 번영이외에도 시민의 성숙 민주주의로 이행 등 다양한 정신문명의 발달로 설명되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민주정치를 경험할수가 없었다. 신민이 시민이 되는 과정은 광복이후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일제도 민주정의 정치를 하고 있지 않았다. 1920년 대까지는 흉내라도 냈던 의회의 기능이 30년 대 말 40년대 초가 되면 완전히 기능이 마비되고 전체주의 사회화 되었다.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민권에 대한 개념 시민으로의 교육 시민으로서의 권리행사는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는 진화가 가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정치적 시민적 역량은 매우 일천하거나 신민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표적 기관인 임정조차도 시민으로서의 역량육성을 못하고 있었다. (김구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임정은 폭망했을것 ) 이러한 사례는 많다. 나는 다른 식민지에서도 진정한 근대는 없었다고 본다. 왜냐면 다른 식민지에서도 신민이 시민으로 되는 과정은 거의 없었다. 일단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하기 바빴다. 독립운동진영에서도 시민의 학습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되기 보다는 나라 찾자. 나라 찾고 보자. 이게 먼저 였고 이게 동양의 근대의 시작이다.
 
불행하게도 동양의 어디에서도 시민의 권리를 말하는 곳은 없었다. 시민의 권리를 말하는 지도자는 있었으나 시민의 권리를 말하는 시민은 없었다. 당시의 대 다수의 사람은 봉건적 잔재에 찌들어 있었고 독립 이후에 봉건적 잔재들은 남아 있고 그 잔재들은 독재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동양의 근대화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독립국가를 세우기 시작할때 부터 라고 생각된다 간단히 말해서 독립국가가 세워지고 국민의 권리가 무엇이다고 교육되고 권리를 위한 투쟁이 시작될 때 우리의 근대는 출발한 것이라고 본다.
 
결말 .
이것이 객관적 진실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왜냐면 3번째는 개인의견이니까 팩트나 디테일한 사실과 사료에 바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근대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나 인구의 증가등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다른 민주적인 정치체계의 학습 과거와 다른 생각들은 과연 그 당시에 대중들이 생각하였는가 ?  이것을 말하고 싶었다. 과연 당시의 대중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고 시민에 대한 권리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진정한 근대의 출발을 1945 해방이라고 못박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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