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이게 무슨 X소리냐고 하겠지만 한때 은나라가 정복왕조라는 썰이 나돈적이 있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가 하니 바로 은나라의 청동기 문화에서 비롯된 썰이었는데요,

 

 

 

 

보시다시피 은대의 청동기들은 이렇듯 장식도 많고 기교도 넣어 화려합니다. 은대의 청동기 문화가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는것도 출토된 청동기들이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그런 의문이 들더라는거죠. 자고로 어떤 문화가 꽃을 피우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차차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유물들이 출토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은나라의 청동기들은 위 사진과 같이 똭! 하고 최종테크(?)의 유물들만 출토되더라는 겁니다.

 

어떤 공예품이든 흡사 빗살무늬 토기마냥 밍숭맹숭한 초급단계에서 시작하여 이리저리 기교를 넣는 개량기를 거치며 기술이 향상되고 최종적으로 최종테크의 공예품을 내놓기 마련인데 은나라는 그 이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지 않으니 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게 바로 은대의 청동기 문화가 저 멀리 서쪽의 스키타이인들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이른바 '은나라 정복왕조 설' 입니다. 은 왕조의 고수준 청동기 문화 형성과정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이런 썰이 나돈 것이겠지요. 스키타이의 청동기-철기 문명이야 워낙 유명하니 자세한 설명은 않겠습니다. 화려한 청동기 문명의 소유자 스키타이가 중국으로 건너와 지배층을 형성하고 청동기 문화를 전파했다는 이 썰은 한때 중국 학계에서 나돌았는데 하지만 딱봐도 터무니 없는게 보이지요.

 

뭣보다 중국의 반대편에 위치해있던 스키타이가 무슨 수로 그 먼길을 건너와 중국에 청동기 문화를 선사해주었는가하는 반론부터 스키타이 고유의 청동문화와 은의 청동문화 간에 그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기 힘들다는 주장, 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적 유물도 없다라는 주장 등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었고 이 '정복왕조 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어디서 많이 봐온 익숙한 레퍼토리인 "아직 출토되지 않았을 뿐이다" , "곧 밝혀질 것이다" 식으로 일관합니다.

 

그러던 중 이런 반론이 제기됩니다. 우리가 문제시 하는 은의 청동기들은 단지 은 왕조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반경(盤庚)시대의 것들이고 은허(殷墟)에서만 출토된 유물들이라는 것이었죠. 무슨 말인가 하니 여기서 반경이란 은의 19대 군주로 은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왕입니다. 그리고 흔히 은의 수도로 알려진 은허로 천도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국력이 정점을 찍던 시기에 그 국력에 비례하듯 문화측면에서도 역시 눈부신 발전을 보여 화려한 청동기 문화를 이룩했고 현재 출토된 은대의 청동기 유물들은 바로 은의 은허시대, 즉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것들이라 그런 썰이 나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도 여전히 허점은 존재하여 그럼 그 이전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있어야 얘기가 성립하는 것인데 아직까진 이를 입증할만한 유물들이 출토되지 않고 있었기에 그다지 신빙성은 없는 걸로 여겨졌습니다만..

 

나중에 이를 입증해주기라도 하듯 은 왕조가 은허로 천도하기 이전 시대의 유물들이 곳곳에서 출토되었고 이 유물들은 은의 청동문화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한때 나돌던 '정복왕조 설' 은 묻히게 되었고 은 왕조는 정복왕조가 아닌 중국 한족 고유의 왕조이며 화려한 청동문화 역시 중국 본연의 것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냥 이런 얘기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