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이동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이 시대에 유일한 동아줄? 사다리? 쯤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용 가치는 제로에 수렴하는 무가치한 코드 무더기 따위가 단지 희소성만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거래되니 이것이야말로 신종 다단계 사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라는 테마는 철학게시판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가상화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욕망과 불평등 구조에 관해 한번쯤 돌아보게 만듭니다.
욕망에 휘둘린다는 게 이런 걸까요?
좀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좀더 크고 멋진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고 잠을 자며,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갈 때 좀더 빠르고 편하게 이동하고, 좀더 멋진 이성과 사귀고 섹스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존경과 선망의 눈길을 받고 싶고...
우리가 욕망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별로 비싸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맛있는 음식, 그닥 돈이 많거나 예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사귀고, 만지고 섹스도 할 수 있는 접근성 뛰어난(?) 이성 적어도 비는 새지 않고 화장실, 욕실 정도는 갖추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집 중대형차, 고급차는 아니어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할 때 대중교통만으로 불편할 경우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소형 중고차
뭐 이 정도만 있으면, 그냥저냥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정도 아닐까요? 대중적인? 욕망은 이정도로 만족시켜 두고, 그렇게 해서 절약한 나의 시간과 정력을 좀더 여유롭고 뭔가 가치 있는 나만의 삶을 영위하는 데 투자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그 시간에 그냥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는 것도 좋고요. 뭐 어때요? 누가 청구서 들고 달려오기 전까진, 내 삶은 온전히 내 꺼니까요. ^^
요즘 세상만 그런 건지 원래 인간이라는 종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욕망조차도 뭔가 건강하지가 않은 것 같단 느낌이 들어요. 단순하고도 순수한, 건강한 욕망보다는 불안과 고독, 공허감으로부터의 끝없는 회피와 정신적 도주를 '욕망'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면, 삶은 참 공허하고도 또 공허하게 느껴지네요. 감기 걸려서 열이 나고 몸이 아픈데 감기약 살 돈이 없다면 그건 참 비참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나는 그 정도로 가난해 본 적은 없었네요. 그런데도 나는 항상 불안하고 자꾸 뭔가를 모으고 쌓아놓고 싶어합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시간이라는 건 인간의 거대한 착각일 수 있어요. 하루, 이틀, 10년 뒤에도 내가 존재할지 않을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끊임 없이 그 올 지 안 올지도 불확실한 미래의 내가 궁핍하고 비참해지지는 않을지 걱정합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천사 미하일이 미리 만들어둔, 시체에 신길 슬리퍼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자신이 그날도 멀쩡하게 살아 있을 줄로 알고 값비싼 구두를 주문했던 어느 부자와 같은 어리석음이겠죠.
비트코인으로 한탕 거하게 벌어서 미래를 보장받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 오는 건...
작년 이전에 비트코인 100만원 할 때 미리 사두지 못해서만은 아닐 거라고...믿고 싶습니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ㅠ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