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서 이런 낭설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선엽의 초기 전투라면 개성-문산지구의 전투인데, 전혀 졸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1사단은 T-34를 앞세운 압도적인 전력의 상대가 고지대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94km에 달하는 넓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배후에는 바다가 있었고(;;), 그 사이엔 방어선으로 삼을 지형이 전무했죠. 이런 곳에서 1사단을 이끌고 백선엽은 3일동안 버팁니다.
그러나 인접한 7사단이 붕괴되면서 1사단의 우측방이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이에 1사단은 방어선을 포기하고 후퇴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때 백선엽은 지휘부에게 후퇴를 건의했지만(6월 27일), 채병덕 소장은 '미국이 개입하면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방어선을 사수하라 지시합니다. 결국 백선엽은 지휘부가 서울방어선을 사수하려 한다는 판단하에 대대적인 야습을 감행, 북한군을 패퇴시키고 최후방어선을 확보합니다.
참고로 1사단이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역습을 감행하던 당시에(정확히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그 유명한 한강대교 폭파사건이 일어납니다. 참고로 이 명령을 내린 사람도 채병덕 소장.채병덕 개갞끼!(한강대교 폭파 죄목을 뒤집어 쓰고 사형당한 최창식 대령의 증언. 뭐, 다른 증거가 있는 건 아니라 확실하다고 할것은 아닙니다만.) 물론 당시 1사단에게 아무런 통보가 가지 않았죠.(;;) 거기다 전쟁 초기 1사단과 6사단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단이 붕괴하여 후퇴하던 중이라 1사단은 퇴로가 끊긴채 고립되어 남겨지게 됩니다. 아마, 적전도주나 졸전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타난 듯 싶은데....
주변에 다른 사단들은 죄다 패퇴하여 포위공격당할 지경에 놓이질 않나, 멍청한 상부는 사수명령을 내리고 갑자기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퇴로를 끊어버린 이 상황에서 1사단에게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건지 전 모르겠습니다. 진삼국무쌍 찍으면서 역습을 감행해서 개성이라도 함락시켜야 하는건가요?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이었는지, 당시 작전주임 최대명 소령은 "사면초가인데 별수 있겠는가. 부하들은 각자 행동하게 하고, 우리는 자결을 하자." 라고 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꽤 놀랄만한 일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제1사단은 뗏목과 배를 통해 어느정도 철수에 성공했고,(중장비와 보급품은 거의 전부 버려야 했지만.) 한국전쟁 초기 유이하게(다른 하나는 제6사단) 사단 편제를 갖추고 후퇴한 사단이었습니다. 사실 다부동 전투에 제1사단이 투입된건, 당시 그나마 멀쩡한 몇 안되는 사단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병사들이 상대적으로 전투경험도 많았고.
사실 춘천지구 전투와 함께 6.25초기 분투한 것으로 유명한 개성지구 전투가 어째서 졸전이라는 말도 안되는 누명을 듣고 있는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자료는 황금알에서 출판된 '6.25 60대 전투' 참조. 전투를 하나하나 다루면서도, 비전문가도 이해할수 있게 쉽게 써진 책이라 전쟁사 덕후라면 한번쯤 읽어볼만 합니다.